몇 년 전 동네에서 명동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토요일 이른 아침의 버스는 한산했다.
조용한 버스에 어떤 청년이 탔다. 두리번거리다 2인 좌석에 혼자 앉아 있는 여성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도 몇 번 이리저리 둘러보다 멈추는가 싶더니 갑자기 옆자리 아가씨의 머리를 퉁 때렸다. 이어폰을 꽂은 채 창밖을 보고 있다 갑자기 맞은 그 여성은 “어머!" 하고 옆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멍한 표정으로 딴청을 하는 남자를 보더니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 문 열리는 위치에 가서 섰다가 그다음 정류장에서 내렸다.
햇살이 비추는 승객이 적은 버스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달렸다. 놀란 내 눈은 그 남자를 내내 보고 있었다.
다음 정거장에서 탄 한 아주머니가 비어있는 2인석에 앉았다. 그 남자의 앞 좌석이었다. 가만히 있던 그 청년은 불안한 듯 갑자기 두리번거렸다. 그리고는 또 순식간에 앞자리 승객의 정수리를 손주먹으로 쿵 때렸다.
“어맛!” 놀란 아주머니가 머리를 감싸며 뒤를 돌아봤고 그 청년은 또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멀뚱멀뚱 창밖을 쳐다봤다.
시비할만한 상황이 아니구나 싶었는지 아주머니는 자리를 옮겨 앉을 뿐이었다.
그다음 정류장에서 서른 쯤 돼 보이는 남자가 오르고 방금 아주머니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내내 지켜보던 나는 다음 상황을 상상하며 그 승객과 폭행 청년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남자의 뒤통수도 가격하겠지’
‘저 남자는 좀 모자라 보이는 저 청년을 보고 어떻게 할까? 시비가 붙으려나?‘
은근한 호기심으로 주시하며 상황을 기다리고 있었다.
뒷 좌석의 그 청년은 뭔가 불편한 듯 콧김을 몇 번 들이쉬고 내쉬더니 풀 죽은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아무 행위도 하지 않았다.
얌전히 앉아 몇 정거장을 더 가더니 명동 시내에서 멀쩡히 하차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갑자기 화가 났다.
버스 승객들을 폭행하는 모습을 보며 ‘ 저 사람 아픈 사람이구나 상대하면 안 되지 똑같이 화내면 안 되지 그럼…’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건장한 남자에게는 손 한번 안 올리고 얌전히 앉아 가는 그 청년의 모순된 행동이 엄청 비열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더니 다 아네. 눈치도 다 있었어! 약해 보이는 여자들만 공격하고 너무 비열해!‘ 하며 부글부글했다.
그날의 일은 내게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해 줬다.
“너무 비열해. 알건 다 알더라고!" 하며 수차례 욕을 했다.
7-8년이 지나는 동안 인간의 비열함을 생각하면 그 남자가 떠올랐다. 그런데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다.
사람들이 시비 상황에서 소리 높여 싸우다가도 본인보다 덩치 큰 사람이 나타나면 갑자기 얌전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의 발동이라는 글을 봤다.
“위기 회피 본능"이 작용해 실제로 화가 없어지는 거라고 한다.
그 글을 보는데 오래전 버스에서의 그 폭행 청년이 떠올랐다.
눈치 다 있고 사람 가려서 못된 짓 하던 사람이라고 숱하게 욕하고 다닌 것이 슬쩍 미안해진다.
내가 본 것을 내가 아는 만큼의 잣대로 판단하고
내가 말하고 싶은 방향으로 수없이 재생산한 일들을
반성한다.
앞으로 또 그러겠지만 덜 그러자고 다짐한다.
아빠가 내게 늘 “네가 다 옳다고 절대 생각하지 마래이~”하실 때마다 그렇게 듣기가 싫었는데 오늘 내 귀에맴도는 아빠의 목소리에 혼잣말로 대답한다.
“맞아 아빠 말이 맞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