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함을 배웠지만 꽁함을 겨우 감춘

by 헤리나

동네에 미옥이라는 서른 넘은 처녀가 있었다.

서른이 훌쩍 넘었는데 열 살 정도의 정신이라 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여자였다.

속없는 소리도 잘하고 상황에 안 맞는 소리도 픽픽하고 다녔다.


그런 사람이 어울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그녀는 본인 어머니를 따라 성당에 나와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과 인사 나누며 지내는 게 유일한 사회생활이었다.

아무래도 종교단체가 조금은 관대한 사회일 테니 열심히 나왔다.


그녀는 큰 몸집을 뒤뚱거리며 걸었지만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할 때는 소녀의 표정이었다.

몸과 나이는 서른 후반이어도 마음은 사춘기 소녀인 듯했다.


그녀는 상냥하게 인사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내 짝사랑의 대상으로 삼았고 한동안 그 사람을 쫓아다녔다.

매일 전화를 걸어

“아저씨 나 아저씨 하고 결혼하고 싶어요”

하였는데 주로 맘씨 좋은 유부남이 그 대상이었다.

그녀의 눈에 한번 들면 그 유부남과 가족들은 매일 걸려오는 전화에 지쳐 나중에는 ‘전화하지 말라’ 고 정색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성당에서 마주쳐도 인사를 받아주지 않고 못 본 척 지나쳤다.

영문을 모르는 그녀는 한동안 상심했다가 이내 다른 대상을 발견하고는 또 “아저씨가 좋아요”하며 전화 공세를 하는 것이 패턴이었다.


그렇게 타깃이 된 사람들은 다들 지쳤고 소문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그녀를 슬슬 피했다.


그러다 우리 아빠가 타깃이 되었다. 50대 후반인 아빠까지 넘어온 것이다.

몇 번 받아 주시다가 아빠를 대신해 엄마가 미옥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퇴근 한 아빠가 저녁식사를 막 하려는 때에 꼭 전화가 왔기에 아빠 온전히 식사하시라고 엄마가 나선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곁에서 듣던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가 불편한 기색 없이 통화를 하길래 지인 전화인 줄 알았는데 끊고 나서는 미옥이라고 하셨다.

어떻게 엄마는 귀찮은 내색 없이 받는지 신기했다.


안 바쁠 때는 그녀의 말에 모두 대꾸해 주고 바쁠 때는 “어 미옥아 내 지금 나가야 하는데 네가 전화 왔네. 오늘은 바쁘니까 안 바쁠 때 다시 해래애~?”

하면 미옥도 밝게

“네~ 아줌마!” 하고 끊었다.


어느 날은

“아줌마, 아줌마네 아저씨가 너무 좋아요., 나 아저씨 같은 사람한테 시집가고 싶어요.”

“그래 미옥아 니 시집가고 싶재에? 그라믄 쪼매 덜 묵고 운동해가 살도 좀 빼고 그래라아~”

“네 알았어요 히히”


그리고 다음 날 엄마가 다니는 단전호흡 수업에 그녀가 등록을 했다.

친구처럼 대해주는 엄마한테 홀딱 빠진 그녀는 운동시간마다 일찍 와서 자리를 맡아 두고는 엄마가 오면

"아줌마! 여기예요 내가 자리 맡아 놨어요!”

하며 손을 휘저어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렇게 나란히 요가매트를 깔고 운동을 하다 보면 릴랙스 된 그녀의 몸은 조절 없이 방귀를 붕붕붕붕 뀌어댔다.

점잖은 다른 회원들은 못 들은 척하느라 애쓸 때 엄마는 푸후후 웃음을 터트리시며

“미옥아 니 방귀 좀 대강 끼라~”

하면 미옥은 또 히히 따라 웃었다.

그녀는 이제 엄마를 베프로 여겨서

“아줌마 난 처음에는 아저씨가 좋았는데 이젠 아줌마가 더 좋아요!” 고백을 하고는 짧은 여행에서 산 기념품이나 맛있는 간식 등을 엄마에게 갖다 주곤 하였다.

나는 그런 상황이 재밌어서 한 번씩 “ 엄마 미옥이 절친이잖아” 하면 엄마도 “ㅎㅎ 그래 내를 그리 좋아하네? 바쁠 때 전화 와가 안 끊으믄 귀찮아 죽겠어.” 하셨지만 미옥이를 대할 때 쌀쌀맞은 적은 없었다.


엄마의 이런 푸근함을 닮고 싶었다.

난 그런 척만 겨우 하고 살았던 것 같다.


무례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밉게 말하는 사람이라 골라내고 '당신은 아웃’이라고 혼자 속으로 찍어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심성일까봐 조급해진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2화옛 말 틀린 게 없어 참 슬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