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이 있어야 해
셋째 낳아야지?
남자아이 둘을 데리고 다니면 자주 듣던 말이다.
그때는 그저 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그 말들은 거슬리지도 않고 "그러게요"하며 웃기만 했다.
속으로는 ‘모르는 소리들을 하시네. 얘네는 딸 같은 아들이라 귀엽기만 해 나 같은 딸보다 열 배 낫구먼' 했다.
형제들은 크며 싸우기 시작하면 무섭다 들었는데 몸싸움은커녕 말싸움도 거의 없었다.
까칠한 형과 순한 동생 조합이었다.
잔소리하는 형 말에 대충 따라주면 잘 데리고 놀아주니 동생은 기꺼이 을이 되었다.
입이 방정이지
"둘째는 거저 키웠어 너-무 착해" 했었다.
며칠 전
가을생인 아이들은 늘 생일이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가족이 다 같이 외식을 못 한지 몇 년째인데 이번 연휴에 마침 첫째의 생일이 있어 오랜만에 근처 호텔 뷔페를 예약했다.
좋은 시간을 기대하였다.
그런데
밥 먹다 둘째가 화를 벌컥 내고 집에 가버렸다.
늘 순하기만 하던 아이였다.
집 나설 때, 통화 마무리할 때 늘 사랑해요를 붙이는 아이.
엄마 점심으로 뭐 드셨냐고 물어봐주는 아이였다.
형이 잔소리에 욕설을 섞어해서 기분 나빴는데 엄마가 자기한테만 뭐라 해서 화가 났다고 한다.
내가 눈으로 나무라며 "표정 관리해"라고 말했었다.
맞은편에 있던 우리 부부는 '형이 욕 하는 건 못 들었다. 네가 너무 얼굴 굳어서 화나 있길래 모처럼 외식에 분위기 깨지 말라고 그리 말한 거다 ‘ 했더니 더욱 화를 냈다.
형한테 뭐라 해야지 왜 자기한테 뭐라고 하냐며 언성을 높이고 나가버렸다.
집에 가면 아이가 늘 하던 대로
죄송해요하며 안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잘못한 걸 모르겠다고 한다.
형만 편애한다 셋이 잘 살아라 내가 없어져 준다며 마구 쏟아낸다.
나도 화가 났다.
어른처럼 품어야 하는 순간 같은데 말이 그렇게 안 나간다.
찰떡같던 둘째는 연휴 내내 썰렁하게 굴었다.
믿었던 아이가 그러니 속상한 만큼 화도 난다.
나도 저 나이 때 그런 날이 있었다.
씩씩대며 대들어서 엄마도 저때의 나처럼 화가 끝까지 나셨나 보다.
말싸움이 안 끝나자 엄마가 '한마디도 안 질라하네" 하며 거실 테이블의 전화번호부-두껍기로 유명한 인명 전화번호부-를 던지셨다.
열다섯이던 내가 쓴 그날의 일기
엄마가 화가 나서 눈을 마귀처럼 뜨고 내게 엄청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던졌다.
그것도 세로로 모서리를 내게 조준해서 던졌다.
살짝 빗나갔다.
맞았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나를 정말 미워한다.
그리고 샤프로 꾹꾹 눌러 1과 8을 적어두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사랑스러웠다고 기억했는데 말이다.
30년도 더 흘러 일기를 읽으니 실소가 나온다.
기억도 안 나지만 안 봐도 훤하다.
내가 한마디도 안 지고 따져대니 엄마가 몇 번 대꾸해주시다 못 참고 눈에 보이는 걸 던지셨겠지.
맞으라고는 아니고 말싸움을 끝내려는 행동이셨을 거다.
그런데 일기 속 나는 억울함 가득이다.
자식 키우기 힘들다는 말, 자식은 어릴 때 효도 다 한다는 말을 이제 실감한다.
" 내가 무슨 복이 있어서 승연이 같은 아들을 낳았을까~" 했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나다.
둘째는 나중에 오늘을 어떻게 기억할까.
역시 엄마가 나빴다고 회상할까 봐 벌써 허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