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지 않기

by 헤리나


며칠 전 엄마와의 통화

추석에 먹고 싶은 메뉴를 묻고 짧게 끊으셨다.

추석 당일 오후 친정으로 들어서며 보니 엄마의 윗입술에 파란 멍이 퍼져있다.

입술 왜 그래요 물으니 주민센터 가셨다가 앞사람과 속도와 스텝이 꼬여 넘어지셨단다.

부기가 가라앉더니 멍이 파랗게 번졌다고.


속이 상한 마음에 잔소리가 나간다.

어유 조심하지 큰일 날 뻔했네. 엄마 또 급하게 서둘렀어요? 생각만큼 몸이 따르지 않으니 더 노인이다 생각하고 천천히 걸어요 쫌 어유 …. 까딱 잘못해서 임플란트 한 거 부러졌음 어쩔뻔했어요 아유….


아주 미운말만 다다다 쏟았다.


아이들 어릴 때 넘어진 모습을 보던 순간보다 지금이 더 아픈 것 같다 이상하다.

명치가 찌릿하고 팔과 온몸의 피부가 민감하게 찌르르하다.

‘내 자식 무릎 까진 게 더 안쓰러워야 하는데 지금이 왜 더 속상하지? 기억이 흐려진 건가?‘

생각하며 기어이 안 해야 될 말까지 나간다.


“아유 그런 얼굴로 무슨 음식을 하고 있어요. 나 안 먹어요 “

억지 말을 뱉는다.

조금 진정이 된다.


엄마도 당신 마음보다 몸이 느린 걸 때때로 느낀다며 박자가 안 맞는 순간이 잦다고 순순히 인정하신다.

다시 속상해진다.


엄마가 예전에 해준 이야기가 떠오른다.

씩씩한 젊은 엄마였던 시절

설탕값이 많이 오를 거라는 뉴스에 엄마는 자전거 뒤에 나를 태우고 설탕을 사러 가셨다.

두 포대를 욕심내어 사서 앞 바구니에 실으니 좀 휘청했지만 페달을 힘껏 밟아 달렸다.

돌이 많은 길이 나오자 내려서 끌어야지라고 생각했다가 순간 마음을 바꿔 속도를 내어 쌩-통과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큰 자갈길에서 설탕 두 포대가 앞쪽에 몰리자 핸들이 휘청하며 자전거가 넘어졌다.

뒤에 앉아 있던 네 살 꼬마도 자전거에서 떨어지며 넘어졌다.

우는 아이 다시 태워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엄마가 웃으며 덧붙이셨다.

“니 신기하데? 그카고 며칠 있다 어디 갈라꼬 자전거 태우니까 ‘이이잉!’ 하미 안 탈라 카대? 그래가 치아뿌지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영문 모르고 돌밭에 고꾸라진 꼬마였던 내가 안 됐다 했는데, 지금 퍼런 입술의 엄마를 보니 살 빠지고 운동 신경 떨어진 노인이 더 안쓰럽고 맘이 안 좋다.


비 오는데 운전 조심하고

천천히 가라고 당부하시는 엄마께

“엄마도 좀 조심해요” 끝까지 타박하고 집으로 왔다.


돌아온 밤에 비는 왜 이리 추적추저억 내리는지

이제 추워지고 또 나이 들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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