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으로 인해 이제야 알게 된 것
신혼 초 남편 퇴근 후 같이 술 한잔 하는 것이 즐거움이었다.
어떤 주말엔 집에서 마시다가 취해서 거실에서 나란히 잠든 적도 있고, 어떤 날은 술이 부족해 아파트 입구 편의점에서 사 와 더 마시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맥주 한 캔만 더 있으면 좋겠다는 둘의 의견이 맞았다.
남편은 내게 사러가라 했다.
"내가 안주 준비하고 있을게 여보가 얼른 사와~”
“여보가 사 와요~”
“난 다 씻었고 여보는 아직 화장도 안 지웠잖아 여보가 얼른 갔다 와~”
”그런가? 알았어요~“
하며 나왔는데 갑자기 서운했다. 편의점에 다녀와서 남편에게 투정하듯 불평했다.
“우리 아빠는 나 열 시 넘으면 집 바로 앞 편의점에 우유 사러 가는 것도 위험하다고 안 된다 했는데 여보는 11시 넘었는데 날 맥주 사러 가게 하고! “
남편은 웃었다.
남편이 회식으로 늦는 날 길 건너 아파트인 친정에서 저녁을 다 먹고도 안 가고 있으면 아빠는 ”그래도 김서방 오기 전에 먼저 가서 있어야지. 가라~” 해서 늦지 않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서니 바로 집 전화가 울린다. 아빠였다.
“어 잘 들어갔재?”
“그럼! ㅋㅋㅋ 바로 길 건너인데 뭐예요!”
“아 니 운동화 신기하데? 베란다 창문으로 플래시 비차 보이까 니 운동화 뒤축이 형광인지 반짝반짝해서 니 가는 거 잘 보이데! 그러다 네가 느그동으로 꺾어지니 안 보이가 해봤다.”
“ㅋㅋ 꺾으면 바로 우리 라인 입구인데 뭘 전화를 해요”
“그래도~ 꺾어지가 현관 드갈때까지 컴컴한데 잘 갔나 해가”
뭉클했다.
그랬던 아빠랑 그 시간에 편의점 가라는 남편이 겹쳐져서 서러웠나 보다.
“여보는 우리 아빠처럼 나 사랑하려면 멀었어!” 했던 것도 같다.
지금 생각하니 나 참 어이없는 여자다.
최근에 고등학생인 둘째와 심하게 싸우고 엄마인 내가 상처를 받았다. 남편한테 하소연하며 “승연이는 거저 키운다고, 내가 어떻게 저런 아들을 낳았을꼬 하면서 입방정 떨었더니 바로 상처받네.” 하였다.
남편은 “자식인데 어쩌겠나 여보가 품어줘야지” 했다.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는지 다음 날이 되어도 아이 보기가 데면데면했다.
3일째 되는 날 아이가 학교에서 톡이 왔다.
“어머니 죄송해요”
“??”
‘얘가 왜 미안해하지??’
하며 생각해 보니 싸웠던 기억은 있는데 상처의 말들이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다.
어떻게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지워질 수가 있는지.
자식이란 존재가 이 정도인가
이런 것이 자식 사랑이란 건가 놀라웠다.
그리고 조금 뒤 다시 깨달았다.
“아! 20여 년 전 남편한테 했던 말 취소해야 하네! 남편과 아빠를 비교하다니”
남편도 딸을 낳았으면 우리 아빠 못지않은 사랑을 주었을 거다.
자식하고 부인하고 어디 같겠나.
그걸 이제 알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