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은 나의 말괄량이 고양이 이름이다. 지금도 자신에게 관심을 달라며, 키보드를 밟아대는 덕에 미칠노릇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내 삶에서 뺄 수 없는 녀석이기도 하다.
무탈은 11월 초에 카페 앞에 버려져있었다.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는 동네 작은 카페였다. 입구를 들어가려는데 주먹만한 것이 꼼지락 거려서 눈길을 빼앗았다. 눈꼽 가득히 매달고 내 발끝에 매달려 애처로운 눈망울을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을 내려다봤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녀석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카페 주인장을 인터뷰하니, 어미 고양이가 버리고 가서 나타나질 않는다고 한다. 내가 관심을 보이니, 데려가서 키워도 된단다. 커피를 마시며, 한참을 고민했다.
다시 보러 나가니, 두 마리인 줄 알았던 고양이는 총 다섯 마리였고, 아까 그 귀엽던 녀석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찬찬히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다들 똥꼬가 아팠다. 속살이 밖으로 나오기도 하고, 엄지 손가락 만한 고름이 흐르는 애도 있었다. 인근 동물병원에 전화를 했다.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길고양이를 데려가면 지원이 되는지.
병원에서는 고양이가 무얼 먹냐고 물었다.
그들 근처에 사료와 물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유추해 답했다. 사료는 아직 먹이면 안된단다.
아마 너무 어린 아이에게 어른용 사료를 먹여서 애들 장이 탈난거 같았다.
탈장의 경우 수술 비용이 50~80만원이란다. 심하게 아픈 녀석들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노릇이었다.
나에게 유독 매달리는 애는 눈꼽만 가득하고, 똥꼬는 말짱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얘를 데려와야겠다고.
카페 주인에게 이르고, 그렇게 데려왔다.
카페 무탈히에서 데려와 무탈이라 이름을 지어줬다. 무탈하라고. 나도 무탈하자고.
절에 갈 때마다 빌던 게 무탈이었는데, 그렇게 나는 무탈을 만났다.
무탈은 벌써 중성화 수술도 한 조숙한 소녀다. 매일 캣타워를 오르내리는 날쌘돌이. 호기심도 탐구심도 많아서 내가 먹는 것을 먼저 냄새 맡는 기미상궁 같은 녀석. 겁쟁이라 무작정 지르는 것도 없다. 탐색 후에야 행동하는 신중이.
무탈이 내게 오기 전의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아무런 계획없이 하고 싶은 것을 즉흥적으로 하는 게 나였다. 워낙 통제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서인지 계획마저 나를 옭아매는 것 같아서, 내 인생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무탈이 오고 나서 내 삶이 변했다.
놀아주고, 똥치우고, 밥과 물을 주고. 빨리 집으로 돌아오는 반복적인 일상. 루틴이 박힌 삶은 답답하리라 생각했는데, 안정적이었다. 무탈이 만들어 준 규칙적인 나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