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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an 31. 2023

내 눈에만 보이는 평생 친구가 생겼다

[노화일지_ 01]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잠에서 깨자마자 안경을 쓰고 화장실에 갔다. 이상한 게 보였다. 거뭇한 먼지 같았다.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안경 렌즈를 닦았다. 그래도 거뭇한 실먼지와 먼지 가루 같은 게 보였다. 눈을 비볐다. 그래도 보였다. 뭔가 이상한 게 눈동자에 낀 것 같아서 안약을 넣었다. 그런데도 먼지가 보였다. 심지어 먼지는 내가 시선을 옮기는 곳마다 따라다녔다. 이건 뭐지? 네이버에서 검색을 했다. “눈에 먼지”, “한 쪽눈에 검은색 실”, “눈에 검은색 가루” 등등의 검색어를 넣었더니 ‘비문증’(飛蚊症)이란 단어가 나왔다 . 네이버 지식백과는 ‘비문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비문증은 실같은 검은 점, 떠다니는 거미줄, 그림자 또는 검은 구름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시신경유두부에 유착되어 있던 신경교조직이나 농축된 유리체 또는 동반된 유리체출혈이 후유리체박리로 인해 자유로이 유리체강내에 떠다니고 환자가 이를 자각하는 것이다.”


이게 내 눈에 찾아온 일종의 안 좋은 증상인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왜 이게 내 눈에 생겨났는지가 궁금했다. 동네 안과에 갔다. 아홉 가지 검사를 한 후 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말한 핵심적인 원인은 ‘노화’였다. 어느 새 40대 중반이 되었으니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유리체 박리가 심하게 진행된 경우면 수술을 해야 할 수 있는 데, 나는 또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했다. 나는 물었다. “이게 루테인을 먹거나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면 나아질 수 있는… 그런 건 아닌 건가요?” 의사는 그런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한 번 더 물었다. “그러면 남은 평생을 이러고 살아야 하는 거라는 말씀인 거죠?”


“네. 그렇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증상이며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대부분 나중에는 자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동네 미장원에 갔고, 하필 그 미장원의 벽은 온통 화이트였다. 그곳에 가니 내 눈 속의 먼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약간 굵은 실마리 하나. 그리고 먼지보다 더 작은 점으로 구성된 필터가 함께 끼어있는 듯 했다. 눈동자의 움직임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걸 보고 있자니, 내가 3D 안경을 쓴 것 같았다.

부산일보 기사에서 본 비문증 환자의 시야. 난 다행히 이 정도는 아니다.

남은 인생을 이 먼지들과 함께 보내야 한다니 아득해졌다. 왼쪽 눈을 감으면 세상은 밝고 깨끗하다. 하지만 양쪽 눈을 함께 뜨고 있으면 왼쪽 눈에만 보이는 먼지가 양쪽 눈에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는 동안 나는 계속 먼지를 주시했다. 비문증을 알게 된 이후의 세상은 그 이전과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다른 차원의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 눈 뒤에 있었던 거 였네.


비문증을 알기 이전의 나는 나와 세상 사이에 ‘눈’(目)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에 일종의 필터 같은 게 끼워지고 나니,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눈’(目)을 새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런 깨달음이 노화의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노화가 없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目)은 내가 아니고, 내가 보는 창문이라는 것을 글이 아닌 몸의 감각으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이제 나에게는 내 눈에만 보이는 먼지가 생겼다. 이렇게 된 거 이름을 지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단번에 ‘스스와타리’(ススワタリ)가 떠올랐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검댕이들을 일컫는 이름이다. 이 스스와타리는 이제 평생 내 눈에만 보일 것이다. 의사의 말대로 언젠가는 인식하지 않게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만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와타리는 내가 나의 노화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한 첫번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무릎이 아플 때도, 흰 머리가 많아질 때도, 평소 보이던 작은 글자가 침침할 때도 인식하지 않았던 노화의 증거. 동시에 ‘나’라는 자아를 느끼게 해준 인식의 계기다. 상상해 본 적 없는 만남이지만, 이렇게라도 만났으니 잘 지내보자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스스와타리야… 이왕이면 좀 늦게 찾아오지 그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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