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다음번에 만날 때도 여전히 아름답기를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게로스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이카리아 왕자 일행의 여행을 준비시켰다. 오늘 당장 출발시키라는 말에 시종장은 황급히 방을 떠났다. 게로스는 테라스에 서서 뤼미에르관을 잠시 바라보다가, 브리엘 부대사를 불러오게 했다.
레이는 게로스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게로스의 거처 안에 있는 응접실이나 집무실, 서재 등은 게로스의 최측근 고위 대신들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세라비는 예외적으로 들어와 봤겠지만.
“브리엘 부대사님.” 레이가 온 것을 보고 게로스가 불렀다. 레이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부대사님, 긴히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 뵙자고 했습니다.”
“오늘 당장 발렌도르로 가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일인가요?” 레이가 물었다.
게로스는 레이를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라마야나가 선택한 유일한 후계자였다. 게다가 코린이 그가 실종되어 있는 동안 브리엘 부대사가 신전 붕괴 현장을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감독했으며 듣도 보도 못한 마법으로 게로스와 세라비를 찾았는지, 그리고 도미니크와 파렌베르크의 마법사들에게 칼같이 냉정한 모습을 보인 것까지 모두 세세하게 보고했기 때문에 그는 레이를 확실하게 믿을 만한 사람으로 이미 마음속에 점찍고 있었다.
“대사님, 플로르 왕자님은 반드시 두 분 대사님들께서 보호해야 합니다. 발렌도르에서 브뤼메 산맥은 멀지 않습니다. 만약 발렌도르가 위험해지면, 대사님들이 오신 길을 따라 다시 브뤼메 산맥으로 들어가 피신해 주십시오.”
레이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게로스를 바라보았다.
“위험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만약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니까 너무 불안해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항상 상황을 주시해 주십시오.”
“전쟁인가요?” 레이가 물었다.
게로스는 레이가 전쟁이라는 단어를 너무 담담하게 꺼낸다고 생각했다.
“만약을 위해서 국빈이신 플로르 왕자님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려고 하는 겁니다.”
“정확한 상황을 알려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상상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로스는 레이가 말을 꽤 날카롭게 한다고 생각하며 간략하지만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레이는 눈을 내리깐 채 듣고만 있었다. 게로스는 설명 끝에 이렇게 말했다.
“세르비카 대사님께 들었습니다. 오시는 길에 템푸스 아르카라는 곳을 들러서 오셨다고요. 만약 위험해진다면, 플로르 왕자님을 모시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서 안전해질 때까지 숨어 계십시오.”
“저희 사신단의 대표는 제가 아니라 세르비카 대사님입니다.” 레이는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왜 세르비카 대사님이 아니라 제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세르비카 대사님께는 발렌도르로 가는 목적은 말씀드렸습니다.” 게로스가 대답했다.
“이제 두 분은 이런 얘기 솔직하게 해도 되는 사이 아니십니까? 왜 저에게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건가요?”
게로스는 레이가 두 사람의 사이를 알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는 바람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레이는 게로스의 눈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했다.
“세라비 님을 아끼긴 하지만, 사실은 못 미더운 게 아닌가요?”
게로스는 그게 아니라 세라비를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왜인지 대답할 수 없었다. 레이는 게로스의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지도에 잠시 눈길을 주고는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레이는 분부하신 대로 하겠다고 대답했다.
레이는 집무실을 나와 뤼미에르관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태우고 갈 마차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윌러드 달튼은 포르 칼레즈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레오폴드는 이미 수 시간 전에 출발했다. 포르 칼레즈 항구에 몇 달째 정박 중인 오스틴의 함선에서는 그들을 귀국시킬 배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그는 창 밖으로 파렌베르크의 거리를 바라보며 풍경을 한 장면 한 장면 자신의 눈에 소중히 담았다. 그는 파렌베르크를 매우 사랑했다. 아침 출근길에 쿠젤 강을 따라 난 길을 걸어가며 맡던 빵 냄새와 커피 냄새 – 그 커피는 오스틴이 유일한 생산지였기 때문에 오스틴과 스칼하븐의 전쟁 이후 파렌베르크 사람들은 커피값이 너무 올라 대신 차를 마시거나 진하게 볶은 보리 등을 끓여 마시고 있었다 – 그리고 꽃이 가득 담긴 철제 화분이 테라스마다 걸린 집들과 돌이 깔린 골목과 사원의 종소리 등이,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번에 그가 다시 방문했을 때에도 그대로 있기를 바랐다.
그는 오스틴 사람이었고 오스틴 역시 사랑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나라가 벌이고 있는 전쟁은 좋아하지 않았다. 오스틴의 전쟁으로 아름다운 파렌베르크가 파괴되지 말기를 바랐다. 오스틴 대사관의 서기관인 그가 나라를 배신하는 짓인 줄을 알면서도 그동안 게로스에게 협력한 것은 그저 그 이유 때문이었다.
윌러드는 파렌베르크에 주재한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번에 집으로 돌아가면 오랜만에 엘더몬트에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큰 참나무와 느릅나무가 길 양쪽을 감싸고, 발코니와 기둥이 달린 현관이 있는 흰 목조 주택들이 늘어서 있는 엘더몬트에는 그의 조부모가 살고 있었다. 엘더몬트 사람들은 현관 앞에 갖다 놓은 흔들의자에 앉아 직접 만든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지나가는 마을 사람에게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곤 했다.
아직도 윌러드를 ‘제라르’라고 부르는, 젊었을 때 칼베르에서 오스틴으로 이주해 온 윌러드의 할머니는 테라코타 타일이 깔리고 천장에 구리 주전자와 구리 냄비와 허브 다발이 걸려 있는 부엌에서 장작과 숯으로 불을 피우며 윌러드가 좋아하는, 버터를 넣고 여러 겹으로 반죽한 초승달 모양의 페스트리를 굽곤 했다. 그는 파렌베르크에서도 그 빵을 매일 먹었지만 솔직히 할머니가 만든 것이 더 맛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커피도.’하고 그는 생각했다. 오스틴에서는 아직 커피 구하기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가 끓여주는, 우유를 넣은 진한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그는 기뻤다. 오스틴에서 태어난 그의 할아버지도 할머니의 커피를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윌러드가 파렌베르크로 발령 났을 때 “너는 거기 가서도 할머니보다 더 맛있게 끓여주는 커피는 못 마실 거다.”라고 했다.
윌러드는 마차가 파렌베르크를 벗어나 포르 칼레즈로 향하는 도로를 달리는 동안 할머니의 커피 향기와 그가 두고 온 파렌베르크의 노천카페에서 맡았던 커피 향기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부디 다음번에 올 때까지 파렌베르크가 그대로 아름답게 있기를 그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원고 기준 여기까지가 2부입니다.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