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트루아벨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

by 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발렌도르로 가는 마차는 그들이 라피드 쉬르쿠젤에서 파렌베르크로 올 때 지나왔던 외곽의 도로를 달렸다. 마차 안의 분위기는 매우 무겁고 뒤숭숭했다. 플로르 왕자는 아직도 세라비에게는 말을 걸지 않고 있었고, 레이는 게로스에게 다녀온 후 무엇 때문인지 표정이 어둡고 말이 없었으며, 세라비는 파렌베르크에 두고 온 게로스 때문에 마음이 착잡했다. 레이첵만 대체 이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멀뚱히 창밖만 보고 있었다.


발렌도르 대공령의 중심 도시인 트루아벨까지 가는 며칠 동안은 길이 꽤 쾌적했다. 그러나 대공령의 입구에 해당하는 첫 도시인 쉐잔느에 도착했을 때 세라비는 사람들이 왠지 매우 어수선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달구지에 어린애들과 살림살이를 싣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세라비는 마차에서 내려 그중 한 명을 붙들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포르 칼레즈가 오스틴에 함락돼서 남쪽으로 피난 중입니다. 여러분도 어서 도망치세요. 엄청나게 큰 배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오스틴이 포르 칼레즈를 무너뜨리고 파렌베르크로 향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잔혹한 놈들이에요. 포르 칼레즈는 잿더미만 남았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아무도 없답니다.”


세라비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손이 떨렸다. 쉐잔느 거리의 가게와 식당에는 이미 먹을 것도 동나고 없었다. 여관에는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로 꽉 차서 묵을 곳도 없었다. 그들은 오스틴이 어마어마하게 큰 대포를 가지고 와서 포르 칼레즈를 방어하던 칼베르 군을 마치 모래성 부수듯이 날려버렸다고 이야기했다.


마차를 몰고 가던 마부와 그들을 따르던 호위대는 쉐잔느에 묵을 곳도 없으니 여기서 말만 교체해서 트루아벨까지 쉬지 않고 가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마부석에 동승했던 하인이 겨우 어디선가 먹을 것을 구해갖고 왔다. 마차는 밤새 달려 이튿날 새벽에 트루아벨에 도착했다.

세리비가 마차 안에서 피난민의 행렬을 바라본다. ⓒ Mabon / AI

트루아벨의 거리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불이 붙은 횃불이 대공저와 대공령 행정청사의 높은 탑과 성벽 여기저기에 세워져 있었다. 돌로 포장된 도로 위로 바쁘게 말발굽 소리들이 울리면서 군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대장간에서는 망치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이곳에는 아직은 피난 행렬이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가게들은 문이 닫혀 있었고 열려 있는 가게에도 물건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트루아벨 사람들도 이미 피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세라비는 쉐잔느에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파렌베르크를 떠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오스틴이 쳐들어왔다고? 포르 칼레즈를 순식간에 함락시키고 파렌베르크로 빠르게 이동 중이라고? 포르 칼레즈는 칼베르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 게로스가 만약 전쟁을 대비 중이라면 포르 칼레즈에 가장 많은 준비를 해 두었을 터였다. 그런 포르 칼레즈가 함락이라니, 오스틴은 얼마나 강한 걸까?


게로스가 세라비와 플로르를 급하게 발렌도르로 보낸 것도 아마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로스는 마치 여기 있으면 답답하니까 발렌도르에 가 있으라는 식으로 말했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스틴이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칼베르는 오스틴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까? 파렌베르크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세라비는 파렌베르크에 남아 있을 게로스를 생각하며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새벽의 대공저 안뜰에서 세라비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오귀스트 대공과 대공비 ⓒ Mabon / AI

오귀스트 대공과 대공비는 새벽인데도 불구하고 일어나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렌베르크보다 남쪽인데도 대공저 안뜰에는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공비의 긴 망토 자락이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였다.


“트루아벨에 잘 오셨습니다. 쉐잔느에서 묵을 곳이 없어서 밤새 달려오셨다고요. 쉬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으니 어서 들어가시지요.”


쉐잔느나 트루아벨 시내와는 대조적으로, 대공 부부가 안내해 준 대공저의 손님용 객실은 바깥세상과 무관한 듯 편안하고 조용했다. 그 대조에 오히려 세라비는 왠지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레이는 여행 내내 무표정이었다. 쉐잔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레이도 같이 있었다. 세라비와 레이첵과 플로르 왕자는 너무나 무서운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레이는 시종일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세라비는 자신이 레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레이의 얼굴이 너무나 어둡고 무서워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오귀스트 대공과 대공비는 이카리아 귀빈들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포르 칼레즈 앞바다에는 이미 오스틴의 함선 하나가 몇 달째 정박 중이었지만, 공격해 온 것은 본토에서 온 대규모 함대였다. 스칼하븐과 아직 싸우는 중인데도 오스틴이 갑자기 함대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전력을 이쪽으로 돌린 것이었다. 스칼하븐과 교착 상태인 오스틴이 왜 갑자기 이쪽으로 향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포르 칼레즈 앞바다는 좁은 해협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함대가 한꺼번에 들어올 수 없었다.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서 함대가 상륙하는 것을 잘 저지하던 칼베르 군은, 오스틴이 소형 함정들에 화약을 싣고 자폭공격을 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더 이상 방어가 어려웠다. 칼베르의 함선들은 차례로 불타며 가라앉았다. 이어서 칼베르의 것보다 사정거리도 더 길고 명중률도 높은 대포들이 사정없이 포격을 가했다. 포르 칼레즈 항구와 성벽은 갈라지고 무너져 내렸다. 오스틴의 함선은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들은 상륙하자마자 도시를 주춧돌 하나라도 남기면 큰일 난다는 듯 모조리 파괴했다. 최후까지 저항하던 병사들은 차례로 시체더미로 변해 갔다.

“이카리아도 혹시 공격당했나요?” 플로르 왕자가 각오한 듯이 물었다.


대공은 모른다고 했다. 플로르도 세라비도, 모두 혹시라도 이카리아 소식을 들려줄까 싶어서 대공이 찾아올 때마다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이삼일 후부터는 손님용 객실에서도 북쪽에서 내려오는 피난민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공이 찾아와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을 전했다.


“오스틴이 포르 칼레즈를 지나 생토네르에서 우리 군과 교전 중이라고 합니다. 생토네르는 지형이 험해서 그놈들도 쉽게 뚫을 수 없을 겁니다.”


레이는 ‘그래도 시간문제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오스틴이 상륙하기 전에 막았으면 모를까, 상륙한 이상 이젠 끝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레이의 비관적인 표정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대공은 조금 더 좋은 소식이라고 그가 생각하는 것을 전했다. “곧 스칼하븐에서도 우리를 지원하러 올 겁니다. 생토네르에서 오스틴을 잡고 있으면 그 사이에 스칼하븐 함대가 도착할 테니 곧 오스틴을 몰아낼 수 있겠죠!”


세라비는 대공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스칼하븐이 왜 우리를 지원하나요? 거기도 적국이 아닌가요?”


플로르는 이카리아 사람인 세라비가 칼베르를 ‘우리’라고 표현하는 것을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공이 대답했다. “폐하께서 군사 지원을 조건으로 스칼하븐과의 국혼을 수락하셨습니다.”


세라비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잠시 동안 아무도 말이 없었다.


“저희는 수년 동안 전쟁을 대비했습니다. 하지만 오스틴의 기습에 결국 패했죠… 그나마 그동안 준비한 덕분에 상륙을 최대한 늦췄고 오스틴 측에도 피해를 많이 입혔습니다. 그러니 생토네르에서도 막아낼 수 있을 겁니다.”


대공은 이카리아 귀빈들께서 충격으로 말을 잃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파렌베르크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된다면 피해가 너무 클 거라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 스칼하븐하고 연대한다면 오스틴을 단방에 몰아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러다가 칼베르가 스칼하븐의 지배를 받게 되면 어떡하나요? 그쪽도 만만치 않게 강하지 않나요?” 레이첵이 물었다.


대공은 자신 있는 미소를 지었다. “폐하는 스칼하븐과 연대하는 것도 고려하고 계셨으니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세라비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물었다. “고려하고 있었다구요? 그러면… 그러면 폐하는 이미 스칼하븐과의 국혼을 생각하고 계셨다는 건가요?”


대공은 세르비카 대사가 왜 갑자기 흥분하는지 의아해하며 대답했다. “스칼하븐만이 아니라 오스틴과도요. 그건 당연한 겁니다. 스칼하븐이 공격했을 때 오스틴과 긴급히 연대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공은 오스틴에는 국혼 대상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덧붙였다. “물론 상대가 오스틴이라면 일단 다섯 명 중 하나를 고르는 게 더 먼저겠군요.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폐하는 그 이후의 일도 이미 다 생각이 있으실 겁니다.”


이 사람들은 게로스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나, 하고 레이는 생각했다. 세라비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트루아벨의 대공저 복도에 세라비가 방문에 손을 얹은 채 서 있다. ⓒ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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