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싸움 구경이라지만,
나에겐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싸움이 따로 있었다.
고부 전쟁.
대부분의 전쟁은
아빠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시작되곤 했다.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어른들의 싸움에서 튄 불똥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
차라리 어른들끼리 다투고, 풀고, 끝냈다면
조금은 마음이 편했을까.
하지만 엄마는 내게 속상한 마음을 쏟아냈다.
“왜 나한테 그래?”
“넌 큰애잖아. 왜 엄마를 이해해 주지 못하니?”
할머니는 말없이 있는 나를 보며
“니 애미 닮아서 그렇다”며 핀잔을 주셨다.
저녁 늦게 퇴근한 아빠는
집 안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불만 속에
어느 쪽 편도 들지 못한 채 무거운 침묵에 잠기곤 했다.
숙제를 하겠다며 방 안에 들어가 있었던 나에게는
“넌 뭐가 중요한지도 모르냐”며 화를 내셨다.
나는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인데.
왜 나만 모든 화살을 맞아야 했을까.
나는 그 전쟁의 포로였고,
난민이었고,
조용히 눈물짓는 희생자였다.
“내가 뭐!”
마음속으로 수없이 외쳤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자물쇠가 달린 내 작은 일기장과 친구가 되어 마음을 털어놨다.
치유되지 못한 그 마음은 그대로 시간 속에 잠들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부모님은 내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로 대해주셨다.
나의 서운함과 원망은 어느새 감사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이제는 엄마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며,
남편의 아내이고,
어른들의 며느리였다.
이 네 가지 이름을 동시에 지닌 삶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버거웠다.
아이에게 사랑만 주겠다고 다짐했지만,
감정의 파도에 휩쓸릴 때면
그 짜증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졌다.
엄마의 삶에 비하면
지금 나는 훨씬 편하게 살고 있음에도
쉽지 않았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의 고단함이 가슴에 와닿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고,
할머니는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이미 ‘할머니’가 되셨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일까.
할머니 생각이 자주 난다.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어
세 남매를 키우셨던 할머니.
그 고생스러운 시간들을
나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어릴 적,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철들었다면
엄마와 할머니는 조금 더 사이좋게 지낼 수 있었을까.
누구의 편도 들지 못했던 아빠를
조금은 덜 힘들게 해 줄 수 있었을까.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
그건 아픈 기억을 꺼내볼 용기가 생긴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었을 때,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그때의 나는 어떤 감정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의 삶도,
아빠의 무게도,
그리고 할머니의 외로움도.
그 시절, 나는 아이였고
지금은,
엄마의 시간을 지나, 할머니의 마음까지 닿고 싶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