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내가 제일 잘했지? “
”할머니~ 내 그림도 봐줘! 내 꺼가 제일 예뻐! “
”할머니~ 나도 나도…!!!”
여기저기 할머니를 부르는 소리로 정신이 없다.
할머니에게는, 그 흔하디 흔한 손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손녀딸만 여섯.
손녀들은 서로 자신의 알록달록 한
공주색칠공부를 들고 와서 서로 자신을 봐달라 애썼다.
”그려~ 걱정 말고, 하나씩 천천히 봐줄 테니께~“
”할머니~ 누가 1등이야?? 나지?? “
”누구야 누구, 빨리 골라줘요~“
“내가 언니니까 1등 맞지? “
손녀들의 시끌시끌한 성화에도
할머니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하나하나 정성껏 살펴보시며 평가를 해주셨다.
우리에게는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발표하는
그 순간보다도 더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건 4학년 중에 1등, 요건 3학년 중에 1등,
이 녀석은 2학년 중에 1등,
마지막은 유치원생 중에 1등……“
정말 누구 하나 섭섭지 않은 공정한 평가였다.
우리는 다음번엔 꼭 1등을 차지하겠다는 마음으로
다음장을 넘겨 더 열심히 알록달록 색을 채워 나갔다.
할머니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만큼
여섯 명의 손녀들은 할머니 곁을 맴돌며
애틋한 사랑을 드렸다.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웃음을 전했고,
재잘재잘 떠들며 할머니의 하루를
웃음으로 가득 채웠다.
가만히 앉아 할머니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려드렸고,
비밀보장 새끼손가락을 걸며
할머니에게만 해주는 특별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할머니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는 연속극이었고
우리에게 할머니는 가장 호응 넘치는 방청객이었다.
함께한 시간들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이었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 마음 어딘가에는 ‘손자’라는 이름의 빈자리가
늘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딸’ 이었던
그 여섯 명의 손녀들은 할머니 곁을
누구보다 보살피고 아꼈다..
필요한 것이 있을까 눈치껏 살피고,
힘든 날이면 말없이 할머니에게 안겼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우리는 늘 곁에 있었다.
그 마음은 사르르 솜사탕 녹듯 스며들었다.
”할머니~ 파마 언제 했어? 나랑 미용실가요“
”할머니~이거 바르면 자글자글 주름살이
쫙 펴질 거야 “
”할머니~ 어디 아파? 나랑 같이 병원 가! “
“할머니~ 꽃분홍 옷 입고 같이 꽃구경 가요!
할머니가 꽃보다 더 예쁘다! “
여섯 명의 손녀들은 할머니 곁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할머니에게 사랑을 전했다.
할머니는 그 사랑을 기꺼이 받아주시고
행복하게 미소 지어주셨다.
할머니 인생에는
일찍 헤어진 남편, 어린 시절 잘 챙겨주지 못한 아들,
그리고 끝내 만나지 못한 손자의 빈자리가
아마 오래도록 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외로우셨을까?
친구하나 없이도 심심할 틈 없던 하루하루…
늘 곁에서 떠들고 웃고 애교 부리며
“할머니, 나를 더 사랑해 주세요”
조잘조잘 귀엽게 매달리던 여섯 명의 손녀딸들…
그런 우리 덕분에 외로울 틈 없이 웃으셨다.
요양원에 계셨던 날들,
마지막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시던 그 시간,
심지어 장례식장까지…
끝까지 할머니 곁을 지킨 건 손녀들이었다.
세상에 나올 때 아무것도 안 달고 나왔다고,
늘 섭섭해하셨던 할머니…
우리는 그런 마음을 아쉬워 하기보다
할머니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나누었다.
사람들은 손자하나 없어 어쩌냐고 물었고
할머니는 그 물음 앞에
아쉬움이 가득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의 손녀들을 향한 마음은
누구보다 크고 따뜻했다.
때로는 기다림으로, 때로는 미소로,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말없는 애정으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어쩌면
할머니가 그렇게 오래도록 기도하셨던 손자를
일부러 주지 않으셨던 건 아닐까…
만약 우리 집에 아들이 있었더라면,
그 아들 하나 귀하게 여기느라
딸들의 소중함은 모르셨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아들을 닮은 그 손자 하나만 바라보며
할머니는 홀로 평생 짝사랑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손녀들 하나하나를 더 많이 사랑하시도록,
그리하신 건 아닐까.
하나님은 할머니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할머니가 더는 외롭지 않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사랑을 혼자 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을 가득 받는 축복받은 사람이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그래서 여섯 명의 손녀딸을 보내셨고,
그 사랑이 할머니 곁에
늘 꽃처럼 피어 있도록 해주신 거라고…
우리는 할머니에게
행복을 주는 아름답고 향긋한 꽃들이었다.
할머니 사랑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할머니를 기억하며,
그 사랑을 함께 나누고 그리워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