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하예레츠

by 서장석


칠장리에서 도화동을 거쳐 용설리로 가면, 저수지가 보이는 삼거리에 다다른다.

길 양쪽으로 저수지를 끼고 한 바퀴 돌 수 있는 길. 나는 습관처럼 오른쪽 길을 택했다. 조금 가다 보면 야외 캠핑장과 낚시터가 나타나고, 낚시꾼들이 던져 놓은 찌도 볼 수 있다. 약 2km쯤 지나면, 저수지를 마주한 카페 하예레츠의 입간판이 보인다. 빨간 벽돌 외벽과 녹색 철제 입구가 주변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입구에는 흰색 간판으로 ‘HaereTz’라 적혀 있다.


안으로 들어가 내가 좋아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아내는 망고 주스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묻자, 아내는 “친구들과 몇 번 와서 차를 마시고 갔던 곳”이라 한다. 아내 고향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다.


넓은 저수지와 가끔 뛰어오르는 물고기들, 산이 비치는 검푸른 물빛. 시골 카페의 풍경은 단순하지만, 의외로 손님이 많다. 눈에 띄는 것은 이제 막 걸어 다니는 사내아이 둘. 어른 의자 높이가 아이들에겐 장벽이 된다. 아이들은 낑낑거리며 올라서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엄마가 올려주면 잠시 앉았다가 금세 내려가길 반복한다. 아이들의 장난을 보며, 나는 모서리에 얼굴을 부딪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창밖으로 40~50cm쯤 되는 큰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물결이 퍼지며 동심원을 그리고 저수지는 햇빛을 받아 눈부시다. 나른한 한낮, 물고기가 짜릿한 장면을 연출하고 물속으로 사라진다. 만약 낚시꾼 바늘에 걸렸다면, 손맛과 주위의 부러움, 시샘을 한꺼번에 받을 만큼 큰 물고기다.


아래층에도 공간이 있다고 안내문이 있어 내려가 보았다. 스님 한 분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위층보다 한적하고 복잡하지 않았다. 통창 아래로는 저수지 물빛이 바로 보였다. 지는 해가 만들어 내는 윤슬은 눈부시고, 햇살이 하루의 끝을 알리며 부챗살 같은 물결을 만든다. 바람과 함께 움직이는 파랑은 부드럽고 아늑하다. 물멍을 즐기기 최상의 조건이다.


이런 감상을 느낄 수 있음은 자동차가 만들어 낸 새로운 문화 덕분이다. 교통의 편리함이 삶의 질을 바꾸었다. 유한한 시간을 차량이 움직여 놀라운 기회로 연결해 준다. 차가 없었다면,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것은 상상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생활 여유가 생기며, 이동이 편리해진 덕에 경치 좋은 곳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누리는 문화가 생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가 밭에 핀 감자꽃이 눈에 들어왔다. 유월 초순이면 감자가 꽃을 피운다고 한다. 흰색과 베이지가 섞인 소박한 꽃은 수줍은 새댁 같다. 감자가 꽃을 피우는 것은 땅속 속살을 키우려는 노력의 일환일까. 밭고랑을 돋우고 잡초를 솎아낸 흔적이 보인다.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라 차에서 내려 자세히 관찰했다. 꽃에 벌이 찾아와 이미 만나고 있다. 방해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달빛 아래서 보면 더 아름다울 것 같다. 달밤 아래에서 본 메밀꽃이 사람을 눈멀게 한다고 들었는데, 감자꽃도 결코 못지않을 듯싶다.


길옆으로 초록 물결이 파도처럼 지나간다. 꽃을 덜어내고 초록 잎을 밀어 올린 벚나무, 시커먼 오디를 달고 바람에 속살을 살짝 보여주는 뽕나무, 열매를 맺기 시작한 길가 배나무가 녹색 물결 속으로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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