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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치앙마이다웠던 숙소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6편

by 최성희

치앙마이답다는 건 뭘까.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모르는데도 가장 치앙마이와 닮아있다고 느낀 숙소가 있었다. 바로 에어비앤비로 예약한 ‘파이얀노이(Pai Yan Noi Guest Home)’이다.


비교적 한적한 동네에 위치해 있는 파이얀노이는 예약할 때부터 제일 기대를 많이 했던 숙소이다. 복잡한 도심보다는 한적한 시골 분위기를 좋아하고, 깔끔하고 세련된 호텔보다는 현지 분위기에 푹 젖을 수 있는 숙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후기가 한결같이 좋았기 때문에 얼마나 좋은 곳일지 상상을 하도 많이 해서 이미 다녀온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 어느 정도의 실망까지 예상하면서 코끼리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파이얀노이로 향했다.


체크인 타임까지 시간이 남았음에도 친절한 사장님께서 나와 짐을 맡아주셨다. 잠깐 들어갔던 파이얀노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 깔끔했다. 좁은 길 위에 오래된 작은 집 몇 채가 모여 있을 거라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앞에 너른 주차공간도 있었고, 가로로 긴 정문이 듬직하게 서 있었다. 지붕에는 기와가 얹어져 있어서 일본풍이 살짝 나기도 하고, 문 밖과 안으로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는 모습이 전체적으로 세련되게 느껴졌다.

사장님께 근처 맛집을 소개받아 점심을 해결하고, 식당 바로 옆에 있던 차 가게 야외 테이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눈에 보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예쁘고 평화로웠으며, 덩달아 아이들의 움직임과 작은 표정까지도 더욱 사랑스러웠다. 체크인 시간이 되어 방에 들어가 보니 파란 바닥의 널찍한 직사각형 공간이 단정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원목으로 만든 깔끔한 더블 침대 2개와 심플한 나무 책상과 의자, 작은 협탁과 2인용 소파가 자기 자리를 잘 찾아 위치해 있다. 위아래로 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유리와 창살, 광목 원단의 커튼까지 통과해 방 안을 비춘다. 그 장면이 어찌나 잔잔하게 아름답고 차분하던지. 투박한 듯하면서도 곳곳에 섬세함이 느껴지던 방의 이름은 ‘블루맵(Blue map)’이었다. 맡겨뒀던 짐은 벌써 방 안으로 깔끔하게 옮겨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손님을 대하는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 숙소에서 문을 열고 나와 계단 3개 정도를 내려온 뒤 건너갈 수 있는 옆방의 이름은 ‘그린테이블(Green table)’이다. 입실한 날 밤늦게 친정 부모님이 오실 예정이라 추가로 잡아둔 곳이다. 이곳에 묵는 4일 동안 아이들은 자유롭게 두 집을 오고 갔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접할 수 없는 구조가 아이들에게는 새롭고 즐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파이얀노이의 꽃은 우리가 조식을 먹었던 야외 공간이었다. 가로로 긴 정문의 뒤편으로 부엌과 식탁, 그리고 쉬어갈 수 있는 소파와 작은 책꽂이가 있던 공간. 우리는 여기서 매일 아침 조식을 먹었다. 메뉴는 늘 바뀌었고, 기가 막히게 예뻤으며 맛까지 놓치지 않아 감동을 자아냈다. 따뜻한 커피와 후식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약속 시간이나 택시 등을 기다리며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했고, 친정엄마는 사장님이 매일 바꿔 꽂아두었던 꽃병의 생화를 감상하는 것도 즐기셨다.

다양한 조식과 디저트
사장님의 손길이 닿은 생화들

밤이 되자 정문 앞으로 줄지어 달려있는 전구가 켜지며 늦게 들어오는 손님에게 빛을 밝혀준다. 밤하늘의 별도 잘 보여서 마지막 날 밤에는 남편과 단 둘이서 한참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그런 낭만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면 닭이 우렁차게 울기 시작한다. 길거리에 닭이 많은 동네여서 우리 숙소에도 일상적으로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 안 협탁 위에는 귀마개가 있었는데, 어디서든 잠을 잘 자는 남편은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잠자리가 예민한 나는 귀마개의 도움을 받아 푹 잘 수 있었다.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단점을 뽑는 후기들도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동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평생을 아파트에서 산 내가 또 언제 닭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깰 수 있을까.

파이얀노이의 밤

파이얀노이가 있는 ‘무앙치앙마이’라는 동네도 참 매력적이다. 무작정 길을 걷다가 너무 조용한가 싶을 때, 구석구석 예쁘고 조용한 식당이나 카페가 튀어나와 괜히 들러보고 싶은 재미가 있는 곳이다. 숙소 바로 뒤편에는 책방이 하나 숨어있었다. 가보니 관광객이 찾는 곳은 아니었고 현지 대학생들이 혼자 책을 읽거나 그룹으로 모여 과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작은 서점이나 북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꿈이라며 사장님께 말을 걸었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셨다. 2주간의 치앙마이 여행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숙소에서 2분만 걸어가면 요가 스튜디오도 있어서 친정 부모님 두 분을 모시고 모닝 요가클래스도 갈 수 있었고, 동굴사원 ‘왓우몽’과 유명한 예술가 마을 ‘반캉왓’ 모두 10분 정도만 걸어서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숙소 근처 식당과 차 가게
숙소 바로 뒤에 있던 책방

처음 치앙마이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상상했던 장면들이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이번 숙소와 동네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기자기하고 한적하고 평화롭고 여유로운 곳. 누군가는 심심한 동네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가장 치앙마이다웠던 동네였다. 다시 치앙마이를 간다면 꼭 파이얀노이에 묵을 것이며 더 길게 그 주변 동네를 느껴보고 싶다.

숙소에서 예쁜 추억 가득 쌓은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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