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흐르는 세상에서 나만 멈춰 서 있는 것 같을 때

feat. 나태주 시, <그냥 멍청이>

by 희온


그냥 멍청히


앉아 있어도 좋은 산 하나


모두 변하고 마는 세상에


변하지 않아서 좋은


돌멩이 하나


모두 흐르는 세상에


흐르지 않아서 좋은


샘물 하나


더러는 시골 담장 밑에 피어 웃음 웃는


일년초처럼


잊혀진 개울의 낡은 다리처럼


나태주 <그냥 멍청히>






'그냥 멍청히 앉아 있어도 좋은 산 하나'

'변하지 않아서 좋은 돌멩이 하나'

'모두 흐르는 세상에 흐르지 않아서 좋은 샘물 하나'

여기까지만 읽으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늘 그 자리에서 변치 않고 서 있는 존재들에 대한 고마움,

변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처럼 들립니다.

여기까지 썼다면 이제까지 제가 봐왔던

'나태주 시인님의 시'다웠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뒷부분에 등장하는

일년초와 잊혀진 개울의 낡은 다리에서

시인의 불안한 마음을 읽어버렸어요.

산, 돌멩이, 샘물...

시인은 이것들이 다 '좋다'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모두 잊혀진 것들,

변화하지 못하는 존재들이지요.

시인은 아마 알았을 거예요.

돌멩이가 자신의 모습과 닮았다는 것을.

자신이 잊혀진 개울의 낡은 다리처럼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세상은 빠르게 흐르고

앞질러 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혼자 멍청히 제자리인 듯한 기분을

시인은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아도 '좋은'

산, 돌멩이, 샘물에게서 위안을 받고 싶어서

그것들을 외웠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나만 뒤처진 건 아닐까?

이대로 머물러도 괜찮을까?

하는 불안과 열등감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맞습니다.

이건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입니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서

저는 느리고 고요한 삶을 선택했거든요.

도시를 떠나

자연에 마음을 두고

일상을 기록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

나만의 가치관을 좇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하는 걱정과 불안이

마음속에 늘 도사리고 있거든요.

멈춰 서 있는 나를 보며

자주 흔들리고 주저하고

때로는 한심하다고 여길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나태주 시인의 <그냥 멍청히>가 말해주었습니다.

"괜찮아,

지금 그냥 멍청히 있어도 좋아.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시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게 될 때

우리는 더욱 깊은 공감을 느낍니다.


오늘 나태주 시인의 <그냥 멍청히>를 읽고

저의 불안을 다독여주었습니다.


나태주 시인님도 이런 시절이 있었어.

나도 그런 시기일 뿐이야.

이 또한 지나갈 거야.

그리고 먼 훗날, 나도 이렇게 말하게 되겠지.

"잊혀진 존재로 적막하게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




IMG_3272.jpeg 나태주 시, <그냥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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