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덤하게 살아도 괜찮아

feat. 나태주 시 <병상일지>

by 희온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커지니까

저는 되도록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으려 해요.

누가 나를 섭섭하게 하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하고 넘기고

때로는 너무 아프지 않기 위해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단칼에 관계를 정리해버리기도 해요.

어떤 일을 대할 때도 그래요.

기대가 크면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칠 때

상처가 너무 크잖아요.

그래서 애초에 큰 기대 없이

무덤덤하게 일을 시작하는 편이에요.

이런 내 모습이

어쩌면 너무 삭막한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보던 찰나에,

나태주 시인의 필사 시집 《필사, 어른이 되는 시간》 중

<병상일지>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해요.



IMG_3367.jpeg 나태주 시 <병상일지> 캘리그라피


여보, 세상에 많은 기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그렇다고 여보, 세상에는 슬픔과 괴로움만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지도 맙시다



그저 덤덤히 사는 거요,


될 수 있는 대로 무덤덤히


그저 사는 거요.


나태주 <병상일지>






나태주 시인은 <병상일지>에서

마치 제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

삶을 향한 큰 기대도

누군가에게 바라는 애정도

조금씩 거두어낸 이유는

사람이나 일 때문이 아니라

제 마음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나태주 시인은 말합니다.

기쁨도, 슬픔도 크게 품지 말고

그저 덤덤하게 살자고.

그 말이 저를 참 편하게 했어요.

내가 너무 냉정한 사람인가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차가워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보호하려 했던 방식이었다는 것을

<병상일지>라는 시가 대신 말해준 것 같았어요.

지나친 긍정도, 부정도 없이

무덤덤하게 산다는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처와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태도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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