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리어에서 교사를 꿈꾸다

한 아이가 바꾼 내 인생

by 티쳐맘

나는 어렸을 때 '호텔리어'라는 드라마를 봤다.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지만 멋졌던 그 유니폼만큼은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 내 꿈은 호텔리어가 됐다. 이유가 좀 유치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멋지게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설레었다.

고등학교 3학년까지 그 꿈은 변함이 없었고, 나는 호텔경영과에 입학했다. 기회가 닿아 호주 리조트에서 근무도 해보고, 열심히 공부해 영국에 교환학생을 가기도 했다. 내 꿈을 향해 한 발 한 발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졸업 후 나는 한국에서 취직을 했다. 꿈에 그리던 유니폼을 입게 됐고, 머리도 싹 올리고 누가 봐도 호텔리어였다. 처음에는 굉장히 행복했다. 내가 꿈꿔왔던 바로 그 모습이었으니까. 앞으로는 매일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현실은 꿈과 조금 달랐다. 매일 고객들의 컴플레인을 대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직장 내 문화였다. 일부 동료들의 성희롱적 발언은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이에 대응했을 때 돌아온 것은 오히려 나를 향한 비난이었다.


왜 그 자리에서 하지 말라고 말 안 하고
일을 이렇게 크게 만들어!


가해자 두 명이 징계를 받았다. 회사 사람들은 징계를 받은 두 명이 불쌍하다며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그들의 말은 상처받은 내 마음에 소금을 뿌리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가짜 웃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출근하는 것이 너무 싫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펑펑 울기도 했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병원에서도 일을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모든 걸 그만두고 꽤 오래 집에만 있었다. 스스로가 루저,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직업이 산산조각 나버린 현실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집에서 계속 있을 수만은 없어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영어 유치원에서 6개월 동안 외국인 선생님과 함께 코티칭 할 기회를 얻었다. 그땐 잠깐 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호텔에서 근무했을 때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이 있었다. 호텔에서는 내가 고객에게 최선을 다했을 때 고객은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단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나에게 고마워하고 몇 배 더 큰 사랑을 돌려주었다. 어른들에게 상처받았던 마음이 아이들의 따뜻한 사랑에 조금씩 치유됨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바꿔 준 아이를 만났다. 우리 반에 적응을 잘 못하고 매일 울던 유준이가 바로 그 아이다. 왠지 유준이를 볼 때면 예전의 나처럼 느껴졌다. 상처받고 위축되었던 그 시절의 내가 보였다. 그래서 더 많이 아껴주고, 사랑을 줬던 것 같다. 처음에는 나를 낯설어하고 거부하던 유준이는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유준이는 우는 날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웃는 날이 하루 이틀 늘어났다. 나중에는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유치원에 등교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졸업식 날이 왔다. 졸업식은 영어 연극을 하는 날이었다. 그날 유준이는 울면서 연극을 겨우겨우 마쳤다. 그래도 나는 와준 게 고마웠다. 어머님께서는 "오늘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포 선생님이 기다린다고 꼭 가야 한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꼭 나를 따로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다.


졸업식이 지난 며칠 후, 어머님과 유준이를 만났다. 어머니는 나에게 솔직히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유준이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첫째는 유치원에서 적응도 잘하고 다 잘하던 아이였는데, 유준이는 매일 울고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걱정이 많았다고 하셨다.


"그런데 선생님을 만나고 아이가 점점 우는 날도 줄어들고 밝아지는 모습을 보며 정말 감사했어요."


그리고는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서 보여주셨다. 종이에는 아이와 아이 옆에 날개 달린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어머님께서는 유준이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셨다. 유준이에게 누굴 그린 건지 물어보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수줍게 대답했다.

유준이랑 내 수호천사 포 선생님


그 말을 듣고 울컥하면서 눈물이 조금 나왔다. 누군가에게 '수호천사'가 된다는 건 살면서 처음 느껴본 큰 감동이었다. 나의 작은 사랑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멍하니 한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이 정리되며 확신이 들었다.


그날, 나는 선생님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수능공부를 해야 하고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정말 내가 원했던 꿈을 찾은 기분이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수호천사가 돼주고 싶었다.


호텔에서의 상처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치유되었다. 어쩌면 내 삶의 모든 굴곡이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