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다시 수능 공부를 시작한 백수의 봄

by 티쳐맘

나는 부모님과 주변 친구들에게 선생님이 되기 위해 다시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다 하지 말라고, 안될 거라고 했다. 지금 하던 일하지 왜 굳이 다시 수능을 보는 힘든 길을 가려하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때 나를 믿어준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한마디만 하셨다.

그래! 한 번 해봐. 엄마가 서포트해 줄게

엄마의 한 마디에 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벌써 수능 본 지 햇수로 7년이 지났다. 막상 시작한다고는 했지만 할 수 있을까 두려움이 앞섰다. 선생님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가 2월이었고 내게 남은 시간은 수능까지 딱 9개월이었다.


우선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 보자는 마음으로 작년 수능 수학 기출문제를 프린트해 책상 앞에 앉았다.

1번, 2번... 그래, 쉽네! 할 수 있다!

그런데 3번부터 문제가 풀리지 않았다. EBS 강의를 켰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다. 그나마 가장 자신 있었던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7년의 공백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학원을 다녀볼까 고민을 잠깐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재수학원은 이미 시작했었고, 사실 재수학원 갈 돈도 없었다.


다들 취업하는 시기에 다시 공부하겠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도 없었고, 그나마 일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수능이 끝날 때까지 문제집 값, 용돈 하면 끝날 거 같았다.


나는 결국 집에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로 집을 나가시니 집 전체가 내 공간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유준이 사진을 붙여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유준이 사진을 보며 다짐했다.

꼭 선생님이 돼서 더 많은 아이들의 수호천사가 되자!


엄마는 매일 아침 출근 전에 내가 저녁까지 먹을 음식을 요리를 해주셨다. 다 커서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딸에게 잔소리 한마디 안 하시고 매일 요리해 주시는 엄마께 감사했다. 정말 지극 정성 서포트였다.

ebs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문제집 가격이 저렴해 부담 없이 문제집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강의는 다 무료였다. 수학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한 강의를 보통 3번씩 봤었다. 덕분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어느덧 6월이 됐다. 6월 모의고사가 있었고 처음으로 내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날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생각보다 모의고사 어려웠다. 시간도 촉박했다. 시험이 끝나고 가채점을 해보니 절대 교대에 갈 수 없는 성적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하필 우산도 없었다. 터덜터덜 그냥 무작정 비를 맞으며 걸었다. 덕분에 흐르는 내 눈물도 숨길 수 있었다. 3시간을 넘게 멍하니 걷기만 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시작한 거 같기도 하고 계속하는 게 맞나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

난 그냥 24살 백수일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음날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서 소주를 정말 많이 마셨다. 수능공부 시작하고 처음으로 먹는 술이었다. 친구가 말했다.

속세에 있다가 다시 고3으로 돌아가니 힘들지? 그래도 멋져! 니 꿈 응원한다!


친구의 응원이 참 고마웠다. 하지만 마음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갑자기 적성검사가 생각이 났다. 그래! 선생님이 내 적성에 맞는지 확인해 보자! 나는 커리어넷 사이트에서 적성검사를 했다.

결과가 나왔고, 다행히 선생님이 나에게 잘 맞는 직업이라 나왔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며 닫으려는데 결과 위에 예전에 고등학교 때 내가 했던 적성검사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걸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결과는…

선생님

정말 소름이 돋았다. 그때도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직업이 선생님이었다니. 돌고 돌아 정말 내게 잘 맞는 직업을 찾았구나. 이게 바로 운명이라는 건가?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아무도 안 만나고 매일 10시간씩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3 때보다 몇 배는 열심히 한 거 같다. 나중에는 엉덩이에 굳은살이 배겼다. 엉덩이에 굳은살이 밸 수 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공부를 하다 마음이 힘들 때면 저녁에 하천 주변을 혼자 조용히 걸으며 묵묵히 견뎠다.


어느덧 9월 모의고사 날이 됐고, 정말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문제를 풀었다. 이번엔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다. 다행히 9월 모의고사에서는 교대에 갈 수 있는 성적이 나왔다. 그날도 정말 많이 울었다.

이제 됐다! 나 이제 교대 갈 수 있고, 선생님도 될 수 있다!


드디어 11월 수능 전날!!!

엄마는 내일 수능 잘 보라며 장어를 푹 고아주셨다. 그리고 좋은 거라며 자연산 생굴도 챙겨주셨다. 내일 힘내야 하니 엄마가 주신 음식들을 몸보신이다 생각하고 잔뜩 먹었다. 마침내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왔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 자연산 생굴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 채 말이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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