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Karma

by 김은채

세상은 열망을 수놓고, 우리는 저마다의 크고 작은 꿈을 향해 살아간다. 방향과 강도에 차이가 있을 뿐, 어떻게든 잘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은 모두 같다.




스스로 ‘될 놈’이라는 확신은 신념에서 기인하고, 신념은 욕망에서 비롯된다. 언어는 나의 기세다. 덕분에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쟁취했고, 마음만 먹으면 반드시 해냈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호불호를 떠나서 적어도 빈말은 안 할 것 같은 사람. 가능한 모두에게 친절하고, 책임질 만큼만 다정한 사람. 언제든 뒤돌아 보면 그때 그 기억 그대로일 것 같은 사람. 이상형이자 이상향이었다.




자유하는 갈망은 그만큼의 절제를 요한다. 속일 바에야 입을 다물고, 치우칠 바에야 정을 허물고, 삐끗할 바에야 선을 지웠다. 들뜸을 잠재우고, 나락을 방지하여 중도를 지켰다.


선악, 흑과 백, 옳고 그름, 가벼움과 무거움 ··· 세상의 양면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타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했다. 나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




이분법적인 지표로 스스로를 재단하고, 양심이라는 이성에 눈이 멀어 감정을 미뤘다. 관용을 본뜨고자 뼈를 깎아냈고, 관대를 본받고자 살갗을 도려냈다. 완벽이라는 허울 아래 언어는 나를 구속했고, 진심을 앗아갔다.


이토록 완전한 생을 꿈꾸었으나 나는 단 한순간도 스스로에게 진실되지도, 떳떳하지도, 일관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지키거나 바꾸어야 할 내가 없다. 직관에 사유를 덧칠하고, 내게 놓인 모순을 사랑한다. 이것은 나의 완벽한 패배이자 완전한 승기 — 나는 그저 존재한다. 그것이 전부이다.







나는 바보처럼 살고 싶다.


종이 한 장에 꽉 채운 노력을 딛고 비상하는 세상에서 쉼표와 말줄임표와 물음표와 느낌표를 달고 추락하고 싶다.


덜어내고 모은 것들을 자랑하는 세상 앞에 잔뜩 풀어헤치고 늘어뜨리며 드러눕고 싶다.


성실함과 꾸준함을 추켜세우는 세상을 나태하고 나른하게 살고 싶다.


기브에 테이크를 헤아리는 세상을 마음껏 헤매고 싶다.


모자라더라도, 삐끗하더라도, 불안하더라도, 완벽하지 않아서 더 괜찮은 청춘으로 남고 싶다.

이전 11화늦여름의 시계를 다시 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