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시간이 뿌리를 내리다 3부
자라나던 나무 위로,
또 다른 계절이 내려앉았다.
익숙해질 무렵 다시 낯선 바람이 불어왔고,
이제 막 펼친 잎사귀는
새로운 하늘 아래서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햇빛을 뒤로하고,
그렇게, 또 한 번의 ‘처음’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익숙해졌다고 믿었던 순간
어느 날 갑자기
그 익숙함 속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햇살도 바람도
이제는 알 것 같았던 그 리듬이
문득 낯설게 스쳐 지나갔다
부딪히고, 갈라지고
때로는 부스러지듯 조용히 무너지는 나날들
시간은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어느새 익숙해졌다고,
조금은 자랐다고 믿게 되었다.
하지만,
처절했던 순간들은
거대한 문들 중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다는 것을
새로운 과제들 앞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거대한 숲 속,
덜 자란 나무 하나.
아직 가지는 연약하고,
잎은 작으며,
뿌리는 깊지 않았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고,
눈이 내려도
멈추지 않고 자라는 나무처럼
성장은 그저 느릴 뿐,
결코 멈추는 법은 없었다.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이미 지나온 문들이
다시 걷게 할 힘이 되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조금씩 짐을 덜며
또 하나의 문을 넘고
또 하나의 벽을 넘었다.
어느 순간,
뒤돌아본 자리에
미처 몰랐던 변화가 피어나 있었다.
성숙한 줄만 알았던 한 마리 병아리는
진정한 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성장하는 듯 보이던 나무는
어느샌가 제자리에 멈춰 선 듯 보였다.
쌓였던 과제들은 흩어졌지만,
눈높이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렸던 탓일까.
바람이 너무 매서웠던 탓일까.
그러다 문득,
다른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곁에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이가 있었고,
성장을 위한 처방이 주어지고 있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쩌면 성장보다 먼저 필요한 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
지친 가지를 쉬게 하고,
무겁게 젖은 뿌리를 말릴 시간.
그리하여,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문.
흩어진 시간들이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가지를 넓혀온 그 형제는
이제 막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작지만 뚜렷한 존재감으로
성장의 중심에 선 나무 하나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몸을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