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위의 나무

흩어진 시간이 뿌리를 내리다 2부

by 나그네

어제도,

일주일 전에도,

한 달 전에도

경주마처럼 달렸다.


정해진 방향,

끝도 없이 이어진 트랙 위에서

숨 돌릴 틈조차 없이

앞만 보며 달리는 나날들.


빙산의 끝에서 조금씩 녹아내리던 감각,

데 크레션도 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어딘가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속도에만 몰두한 채

그 변화는 감지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움직임이 둔해졌다.

고장 난 로봇처럼 기능이 멈췄고,

제자리를 맴돌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왜 멈췄는가…

그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다.

생각은 깊은 곳으로 가라앉았고,

두더지가 어둠 속으로 파고들 듯

정신은 조용히 내부를 향해 스며들었다.


나무의 뿌리 끝처럼

차츰 잠식된 그곳.

흙은 때때로 서늘했고,

어느 순간엔 머리 위로 햇살이 비추는 듯 따스했다.


감각은 오뚝이처럼 흔들렸다.

오른쪽, 왼쪽, 앞으로, 뒤로.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방향을 잃고도 끊임없이 흔들렸다.


시간은 말없이 흘렀다.

겨울잠을 마친 동물들이

땅 위로 고개를 내미는 시기처럼,

깊고 눅진하던 늪이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그 늪은 알처럼 껍질이 깨지고,

그 안에서 낯선 공간 하나가 태어났다.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눈이 떠졌고,

숨이 돌기 시작했다.


기지개를 켜듯 천천히 몸을 세웠다.

무겁게 쌓인 문제들 앞에 섰을 때,

이번엔 피하지 않기로 했다.


애증으로 얽히고설킨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끌어안고,

정면으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끊임없이 부딪히다 보니

그 산은 조금씩 깎여 나갔고,

어느새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모든 걸 지나쳐 돌아본 그 시간.

처절했고,

매 순간이 무너지는 듯했다.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고통의 파편들이

온몸 곳곳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지나

다시 뿌리가 내렸다.

무너졌던 자리 위로,

작은 나무 하나가 조용히 피어올랐다.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자라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