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위의 나무

흩어진 시간이 뿌리를 내리다 1부

by 나그네

처음엔 그저 막연한 설렘과


공기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두려움뿐이었다.


처음 보는 풍경,


처음 밟는 땅,


처음 마주한 언어와 사람들.


익숙한 세계를 떠나 낯선 대륙에 발을 딛는 일.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두려움과 벅참이 뒤섞인 감정이 조용히 요동쳤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흘렀다.


모래시계 속 모래가 차곡차곡 쌓이듯,


텅 빈 마음속에도 서서히 온기가 번져 들었다.


외딴섬 같던 공간 위에


어느새 작은 뿌리 하나가 내려지고 있었다.


두 달쯤 지났을 무렵,


‘학생’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사회인’이라는 문고리를 조심스레 잡아당겼다.


그러나 그 문 너머엔


꿈꾸던 이상과는 전혀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현실, 복잡한 구조,


무표정한 시간들.


배운 언어로 건넨 말들은


텅 빈 벽에 부딪혀 메아리조차 없었고,


마음은 종종 길을 잃었다.


그때 종이와 펜이 손에 쥐어졌다.


말보다 먼저 나아간 건 그림,


그림 뒤를 따라붙은 건 더듬거리는 단어들.


짧은 표현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연결되어


소통의 벽에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벽이 무너지자


일상이 다가왔다.


새로운 일과 역할, 관계의 틀도


천천히 몸에 스며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화롭던 흐름 속에 잔잔한 균열이 생겨났다.


마치 평화로운 숲에 포식자가 나타난 듯,


공간의 균형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했던 문제들이


빛이 닿지 않는 사각의 틈에서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임시로 덮어두었던 틈들이 터지기 시작했고,


공간은 흔들렸다.


누군가는 경찰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녔고,


누군가는 전화기를 붙잡은 채 분주히 움직였다.


그렇게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금이 간 틈을 메우기 시작했다.


침묵하던 공간은


서서히 숨을 되찾으며,


다시 ‘공생의 공간’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


완전히 섞이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이어진 두 세계.


서툴고 낯선 이음새 속에서도


삶은 조용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모래 위에 놓인 한 그루의 나무가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고 있었다.


“모래시계 위의 나무처럼.”


흔들리면서도 서 있는 존재로.


오늘도 천천히 뿌리를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