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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포로, 세 번째 식도락여행

여름의 끝, 마지막 한 숟갈까지 꽉 찬 하루

by 소소한 여행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지막 날엔 꼭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스프카레집으로 향했다.

삿포로 하면 스프카레니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라 괜히 설레고 두근거렸다.


메뉴를 보니 매운맛 단계가 끝도 없이 길었다.

친구가 7단계를 시켰는데 “밍밍하다…”를 외쳐서 조금 당황.

한국인들은 최소 10단계 이상 먹어야 한다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다.

카레가 나오고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왜 유명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국처럼 훌쩍 마셔지는 카레인데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가벼운 매력이 있었다.

야채도 고기도 푹 익어 부드럽고 감칠맛이 깊어서,

“아, 이건 여기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다.” 싶었달까.


배를 채우고 주변을 산책하다 자연스럽게 쇼핑몰로 들어갔다.

가챠 몇 번 돌리는데 친구 돈을 기계가 먹어버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직원분이 빠르게 와서 돈을 꺼내주던 장면이 아직도 웃기다.

지하 매장에서 유명한 카스테라, 당고를 사고

마트에서 주전부리까지 사서 한가득 들고 나온 우리는

오코노미야끼집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아 긴장했지만 다행히 빈자리가 있었다.


문제는… 에어컨이 없다는 사실.

불판 열기가 그대로 올라오는데 땀이 줄줄.

그래도 요리가 나오자마자 모든 불편함이 싹 잊혔다.

바삭하고 촉촉하고, 왜 극찬을 받는지 입안에서 바로 이해되는 맛.

허겁지겁 먹으면서 둘 다 말수가 줄었다.

둘 다 맛있는 음식 앞에선 조용해지는 편이다.

후식은 젤라또.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아는 쫀득한 ‘돈두르마’는 아니고

부드럽고 고소한 젤라또였는데

입안에 남아있던 뜨거움이 싹 내려가서 완벽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작은 고민이 찾아왔다.

배는 너무 부른데… 유명한 빵집을 지금 안 가면 못 간다.

결론은 “지금 가자.”

둘 다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대신 드럭스토어는 들리자…” 하고

뱃속 여유를 조금이라도 만들려고 애썼다.


빵집에서 빵을 사고,

마트에서 멜론과 또 다른 주전부리를 사고.

편의점에서 본 멜론 아이스크림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하나 사서 밤거리에서 바로 먹었다.

삿포로의 반짝이는 거리에 멜론 향이 퍼지는 그 순간은

사진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음악소리가 들려

발길을 돌려보니 한가운데서 맥주 축제가 한창이었다.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춤추는 사람들.

우리도 괜히 신나서 잠깐 구경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빠져나왔다.

방에 들어와서 또다시 펼쳐지는 ‘야식&주전부리 파티’.

세븐의 샌드위치, 컵라면, 빵들, 과자들,

그리고 그날도 어김없이 등장한 멜론.

이쯤 되니 우린 스스로를 ‘멜친놈(멜론의 미친 놈)’이라 부르며 웃었다.

마지막으로 가챠를 깠는데

각자 취향이 묻어나는 작은 피규어들이 줄줄이 나와

바로 테이블 위에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그렇게 우리의 3일 차는 조용하고, 조금 시끌벅적하고,

아주 우리답게 끝났다.


오늘이 삿포로의 마지막 밤이라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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