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 한 입, 멜론 한 입, 여름을 먹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JR을 타고 오타루로 향했다.
기차가 달리는 동안 창밖 풍경이 마치 애니메이션 한 장면 같았다.
부드럽게 피어오르는 구름과 푸른 바다,
그리고 햇살 아래 반짝이는 마을들.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오타루에 도착해 있었다.
내리자마자 향한 곳은 유명한 푸딩 가게.
그곳에는 ‘떡푸딩’이라 불리는, 푸딩이 들어간 찹쌀떡이 있었다.
우리는 떡푸딩 하나, 일반 푸딩 하나를 주문했다.
가게 안에는 자리가 없어 밖으로 나와 먹었는데,
보기만 해도 부드럽고 달콤해 보이던 그 비주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떡은 쫀득했고, 안의 푸딩은 부드럽게 녹았다.
일반 푸딩은 탱글 하면서도 밀도 있는 식감이라
입안에서 천천히 사라지는 느낌이 참 좋았다.
첫 끼부터 이렇게 달콤할 줄이야, 서로 웃으며 감탄했다.
달달하게 입맛을 돋우고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원래 삿포로는 해가 쨍하고 습하지 않다던데,
그날은 비가 조금씩 내려서인지
공기가 묘하게 눅눅했다.
그래도 조용한 골목과 그 안의 잔잔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걷다 보니 사람 한 명 없는 골목 끝에 작은 소바집 하나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에어컨이 없다는 걸 알고
순간 ‘돌아갈까?’ 싶었지만,
가게 안을 가득 채운 현지인들 덕분에 그냥 앉기로 했다.
사장님이 일본어로 뭐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냥 웃으며 “오케이!”만 반복했다.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손짓을 하시길래
‘조금 기다려달라는 뜻이겠지’ 하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소바와 튀김이 나왔다.
입에 넣자마자 깔끔한 국물 맛과 신선한 튀김의 조화가 느껴졌다.
간이 세지 않아 재료 본연의 맛이 그대로 전해졌고,
그게 오히려 더 깊고 정직하게 느껴졌다.
“진짜 맛있다.” 그 말 외엔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르골당으로 향했다.
조용했던 골목과 달리, 그곳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관광객, 특히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세 걸음마다 한국어가 들릴 정도로 반가운 소리들이 이어졌다.
안에는 온갖 모양의 오르골이 가득했고,
맑은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정각이 되면 시계탑에서 오르골 소리가 울린다던데,
그건 아쉽게도 듣지 못했다.
그래도 기념품 가게를 구경하고, 선물도 한가득 샀다.
버스를 타고 다시 삿포로로 돌아가려는데,
비 때문인지, 지도가 잘못된 건지
우리는 엉뚱한 길로 가버렸다.
그때 한 일본인 아주머니가 다가오셨다.
“이쿠요!(가요!)” 하며 손짓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셨다.
우리는 일본어를 몰랐고, 그분은 영어를 몰랐지만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전해졌다.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와 주시고,
우리가 탑승하자 고개를 숙이며 손을 흔들어 주셨다.
그 짧은 순간의 따뜻함이 오래 남았다.
무사히 삿포로로 돌아와 저녁으로 돈카츠를 먹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익은 고기,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식사 후엔 마트에 들러 두유와 간식을 종류별로 사고,
근처 타코야끼 가게에 들러 유명하다는 타코야끼도 사서 들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에 들러 북해도산 멜론도 함께 샀다.
숙소로 돌아와 하나씩 꺼내 먹으며,
그날의 ‘시식회’가 다시 열렸다.
그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는 건 멜론이었다.
그날 이후로 멜론이 보이면 자연스레 손이 갔다.
결국 멜론으로 된 건 전부 싹쓸이하며 다녔고,
서로를 “멜친놈(멜론의 미친놈)”이라 부르며 깔깔 웃었다.
그날의 오타루와 삿포로는
음식보다 사람의 온기가 더 진하게 남은 하루였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은 통한다는 걸,
그 따뜻한 “이쿠요” 한마디가 증명해 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