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

by 보다라

장례식이 끝났지만, 나는 아무것도 끝낸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사람이 없는 세상이 진짜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친구들과 함께 짐을 챙기러 집에 갔을 땐 그 공간 전체가 거대한 공기 덩어리처럼 나를 덮쳤다. 숨이 턱 막혔다. 가구도, 조명도, 식탁 위에 그 사람이 구워놓은 돈가스 까지도 모두 그 사람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 안에 살아갈 수 없었다. 아니, 살고 싶지 않았다.


그날 밤 짐을 챙겨 친구네 집으로 갔다. 작은 방 하나, 포근한 이불, 물끄러미 서서 쳐다보는 눈, 친구의 집은 이상하게 조용했고, 나는 소파 위에서 하루 종일 울었다. 가만히 있다가 울고, 씻다 울고,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울었다.


“네가 괜찮아질 때까지 있어도 돼.”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말이 고마워서. 언젠가 그 집을 나가야 한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장례식 내내 술을 참고 참았다. 내가 나를 놓을까 봐. 정신 줄 하나라도 놓치면 그 자리에서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례 절차는 다 끝이 났고, 나는 친구네 집에서 3일을 있었다. 3일 내내 우리는 술을 마셨다. 넷 이서 모여 하루 종일, 하루 종일 마셨다. 슬픔을 나누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우리는 잔을 들었다. 말을 하면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우리는 그냥 잔을 기울이고 또 기울였다.


술병이 쌓일수록 눈동자는 붉어졌고, 누구도 웃지 않았지만 그 방엔 서로를 놓지 않으려는 힘이 있었다. 누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속 ‘말도 안 돼’를 반복하며 울었고, 누구는 나보다 더 눈이 붓도록 울면서도 내 등을 두드려주었고, 평소 눈물이 없는 한 친구도 계속 나를 따라 울었다.


“여기서 자. 나는 거실에서 잘게.”

방 안엔 친구가 준비해 둔 베개 위에 반듯하게 놓인 수건이 있었다. 그 수건을 보는 순간, 나는 다리가 풀려 이불 위에 주저앉았다.


그 방은 따뜻했다. 그러나 그 온기가 내 안의 찬기를 덮을 수는 없었다. 나는 수건 위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조용히, 깊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 고마워서, 너무 슬퍼서,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어서, 이 모든 게 아직도 현실 같지 않아서.


처음에는 눈물만 흘렀고, 이내 그 사람이 목구멍에서 울컥 올라왔다.


“오빠.”


베개는 금세 젖었다. 나는 소리 내지 않으려 이를 꽉 물었고, 그거 더 아프고 서러웠다. 그 작은 방, 친구가 내게 양보해 준 그 방안이 이 세상에서 내가 잠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친구는 그저 내 곁에 조용히 있어 줬다. 거실 소파에 등을 웅크리고 자면서도, 문득 새벽에 내가 우는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레 숨을 쉬었을 것이다. 달래지도 않았고, 가만히 하루를 건네주었다. 그게 그날 나를 살렸다.


그 사람을 떠나보낸 나를 그 밤, 온전히 안아준 사람은 그 친구였다. 가정이 있는 친구들은 언제나 같이 있어 줄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연락은 왔다.

“좀 괜찮아? 혼자 두지 마.”

그들은 끊임없이 내 안부를 물었다. 나를 향한 걱정들이 끊어지지 않는 줄처럼 이어졌다. 친구들은 내 곁에 있지 않아도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해도 그들은 내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었다. 그 마음들이 나를 겨우겨우 하루씩 데려갔다.


그날 밤, 나는 살아 있었다. 무너졌지만 죽지 않았다. 누군가의 방 안에서, 누군가가 깔아준 수건 위에서, 나는 울 수 있었다.


3일 동안, 나는 그렇게 그들 사이에 살아있었다. 말없이 술을 마시고, 말없이 울고, 때로는 웃고, 또다시 울었다.

그 시간은 치유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내가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그들이 나 대신 기억해 주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속으로는 수백 번 말했다.

“너희가 없었으면, 나는 진작에 끝났어.”


내 세상은 무너졌지만, 나는 살아 있었다.


3일이 지나고 나는 본가로 갔다. 엄마는 나를 안았다. 아빠는 조용히 내 가방을 받아 들었다. 그들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지만, 내 안은 이미 너무 차가웠다.


본가 근처엔 강이 흐른다. 강둑을 따라 잘 닦인 산책길이 있는데, 나는 그 길을 자주 걸었다. 그 길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좋았다. 나는 조용히 걷고, 가끔 멈춰 서고, 가끔은 주저앉아 울었다. 어떤 날은 강물만 뚫어지게 봤다.


“그냥 빠져버릴까, 이대로 사라져 버릴까.”


생각이 강처럼 천천히 흐르다 갑자기 넘쳐흘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땅을 쳤다.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고, 그 길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 길을 가지 못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그 길에서 너무 많은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때의 울음, 그때의 생각, 그때의 무너짐. 그 길 위에 다 흘렸기에 나는 그 길을 외면한다.


그곳에서 난 살아 있으려 애썼다. 누구에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그 길 위에 쏟아졌고, 나는 그걸 흘리는 걸로 그날 하루를 견뎠다.


나는 본가에 ‘머무르지’ 못했다. 그저 스쳐 지나듯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밖에 나가 숨을 쉬어야만 했다. 숨이 턱 막히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땐 무작정 차에 올랐다. 방향도 목적도 없었다. 그냥, 움직여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동네를 벗어나 친구를 만나고, 카페에 앉아 멍하니 책장을 넘기고, 밥을 씹다 말고 멍해지기를 반복했다.

친구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 내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그저 곁에, 조용히 있어 주었다. 그 침묵이 가끔은 말보다 따뜻했고, 그 존재가 내가 스스로를 지우지 않도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들은 질문하지도 않았다. ‘괜찮아?’도, ‘이제 좀 나아졌어?’도 묻지 않았다. 그저 나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걷고, 침묵했다. 함께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한 관계 속에서 나는 겨우 하루씩을 견뎠다.


밤이 되면 다시 본가로 돌아왔다. 작은 방 한 구석에 그 사람의 사진과 꽃이 놓였다. 나는 그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잤다. 잘 자,라는 말을 하고 눈을 감았고, 잠들기 전에는 꼭 그 사람과 대화를 했다.


“여보, 오늘은 카페에 다녀왔어.”

“오늘은 좀 괜찮은 척했는데, 힘들었어.”


그 대화는 간신히 숨을 뱉는 법이었다. 울지 않기 위해 말했지만, 말하다 울어버리는 밤이 많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와 아빠의 마음은 그때 아마 조각조각 찢어지고 있었지 않았을까. 엄마는 밥을 차려놓고 내가 한 숟갈이라도 먹길 기다렸고, 아빠는 말없이 방에서 내가 차에 올라타는 소리를 들으며 한숨 쉬었을지 모른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아니 보지 못했다. 그들은 더 이상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나는 너무 아파서 내 안 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세상에서 나만 망가진 줄 알았다. 내가 제일 많이 사랑했다고, 제일 크게 무너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우리 모두 무너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다만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침묵 속에서. 나는 그걸 몰랐고, 지금에야 조금씩 짐작할 뿐이다.


본가에 머문 지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 사람의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자고, 아침엔 차를 몰고 아무 데나 떠돌고, 강 뚝을 따라 걷다 울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이제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집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내게 밥을 해주고, 말없이 안아주고, 그 사람 이야기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면서도 늘 내 얼굴을 살피는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감당하기 버거웠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해결해 줘.”


그 말들은 다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시간 속에 웅크려 있는 것보다 나가서, 내 삶을 다시 끌고 가고 싶었다.

새로운 집을 찾기 시작했다. 멀리 갈 순 없었다. 너무 달라진 풍경은 감정의 균형을 무너뜨릴 것 같았다. 그 사람과 함께 살던 동네와는 가깝지만 동선은 겹치지 않는 곳, 나는 타협하듯 새로운 집을 골랐다. 이건 도망이 아니라 살기 위한 거리 두기였다.

그 사람과 같이 살던 집은 계약이 6개월이나 남아 있었지만 나는 더는 그 집에서 단 하루도 지낼 수 없었다.

그 집엔 그 사람의 잔상과 내 울음과, 우리의 마지막이 뒤덮여 있었다. 그걸 이겨낼 만큼의 용기는 나에겐 없었다.


짐을 하나하나 싸기에도 용기가 안 났다. 포장 이사 업체를 불러 맡겼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짐들이 옮겨질수록 마음도 무거워졌다. 단순한 이사가 아니라, 한 사람을 흘려보내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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