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데도 왜 말을 못 할까
동아리는 왜 들어가는 걸까?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나는 좋아하는 일이 있어서 동아리에 들어갔어. 어떤 동아리인지는 말하지 않을 거지만.
어쨌든, 어느 날 동아리 선후배 열 명 정도가 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간 일이 있었지. 백 명에 약간 모자랄 정도로 큰 동아리다 보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말이야. 선배 한 명이 먼저 메뉴를 골랐어.
"쌀국수 어때?"
나이가 많은 사람들부터 나와 동기들까지, 차례차례 동의했어.
"좋죠", "저도 좋아요", "쌀국수 괜찮아요", "전 쌀국수 좋아해요", "저도요"...
그렇게 근처 쌀국수 집에 들어갔지.
쌀국수가 나오자마자, 한 동기가 볼멘소리를 했어.
"아... 나 쌀국수 싫어하는데..."
그 동기에게는 안타깝게도 이 집 쌀국수는 고수와 함께 나오는 쪽이었던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고수를 덜어내고도 쌀국수에서 암내가 났는지, 결국 몇 젓가락 못 먹은 채 식당을 나왔어.
뭐, 쌀국수와 고수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도 정말 못 먹어줄 정도로, 해선장과 스리라차를 들이부어야 겨우 먹을 만할 정도로 맛없는 쌀국수기는 했지만, 그날 저녁까지 한참 남았고 이런저런 활동도 많이 해야 했는데 별로 먹지도 못한 그 친구가 참 불쌍했던 기억이야.
그 아이는 왜 쌀국수를 못 먹는다고 말을 못 했을까. 빨리 말했었더라면 메뉴 선정에 영향을 줄 수도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메뉴를 말했고, 어쩌다 보니 나이순대로 가부를 말했기 때문이었을까? 쌀국수는 정말 먹지 못하지만 앞선 예닐곱 명이 한 결정을 뒤집는 것은 그걸 넘어서는 무리였던 걸까?
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나이 순서대로 발언을 했던 걸까.
내 동기 중에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많은 동성의 친한 동기가 있어. 보통 형/언니라고 부를 테지만, 그 사람이 별로 그런 호칭에 집착하는 성격은 아니라서 가끔씩 나는 "너"라고 부르지. 그럴 때마다 나는 뒷목을 따라 약간의 쾌감이 느껴져.
그러다 하루는 그 사람과 크게 싸웠어. 그때 그 사람의 입에서 "나는 너가 나한테 형/언니 안 붙이고 그냥 '너'라고 불러도 뭐라 안 하는데, 너가 나보고 말하는 방식이 맘에 안 든다고 그러냐?"라는 말이 나왔는데,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라는 의문이 들더라고.
싸우게 된 계기는 내가 그 사람의 말하는 방식이 맘에 안 들어서 평소에 쌓여왔던 게 터졌던 거였는데, 그 사람도 내가 가끔씩 '선을 넘는 게' 맘에 안 들었던 걸까? 아니면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튀어나왔던 걸까. 평소에도 이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걸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한테 존댓말을 해야 하는 걸 두고 '나이가 벼슬이야?'라는 불만이 있었어. 물론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해야지. 초면이니까. 이 글은 전에도 말했던 이유 때문에 아니긴 하지만. 이것도 위선인가?
어쨌든, 나는 존댓말을 하는데 상대는 나한테 존댓말을 안 할 때, 내 머릿속에서는 항상 '네가 뭔데'라는 어두운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어. 선생님이나 교수님이라면 가르침을 받는 입장이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낳아주신 분이니까 일방적인 존대를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텐데, 단순한 선배는 '왜?'라는 의문이 들었지.
왜 우리는 단순히 우리보다 몇 년, 몇 달 먼저 태어났다고 상대를 내 가족을 부르는 호칭으로 불러주고 상대에게 일방적인 존대를 해야 하는 걸까. 아니, 존댓말은 표면적인 현상일 뿐, 왜 윗사람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메뉴에 대한 반대를 왜 하지 못하는 걸까.
단순히 많은 사람이 그 메뉴를 골랐기 때문에? 이럴 때엔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 먹는 걸 신경 써서 메뉴를 정하는 게 맞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도? 부담감이 있어서? 뭐에? 먹지도 못하는 쌀국수를 고른 그 아이 생각이 날 때마다 난 사회적 압력이 가시화되는 기분이야.
왜 내가 그런 압력을 직접 겪을 때는 상대를 향한 짜증밖에 안 느껴지다가, 남이 내 눈앞에서 피해를 입어야 똑같이 눌려 사는 남을 향한 연민이 느껴지는지. 스스로가 약간 실망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겨우 남이 억지로 쌀국수를 먹고 하루 배를 곯는 정도로 우리 사회에 팽배한 무언의 압력에 나만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서 다행인 걸까. 참 나도 이기적이네.
"애들이든, 누구든, 다른 사람이랑 모여서 밥을 먹을 때면 맛있는 게 한 조각 남을 때가 있지?"
"그치?"
"그럴 때 난 그냥 먹어 버려. 어차피 그러다 아무도 못 먹고 끝나잖아? 그럴 바에 한 명이라도 더 먹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야, 너 참 똑똑하다!"
"내가 좀?"
이 친구는 누구랑 먹든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챙겨 먹는 친구야. 애들끼리 미묘한 눈치를 볼 때도, 개의치 않고 입으로 가져가지. 자랑스러운 내 친구는 먹는 걸로 장난치면 안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깨워줬어. 그리고 나도 덕분에 눈치가 좀 보이더라도 쓰윽 젓가락을 들고.
왜 쌀국수를 억지로 고른 그 아이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지 못했을까, 난 늘 궁금해.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야. 성격이 물러서 그런 걸까? 하지만 이 친구도 남 말을 굉장히 신경 쓰는 친군데. 아니면 음식에 대한 집착이 적은 걸까?
뭐, 결국 그 아이는 점심을 굶었고, 나는 두고두고 내게 보이지 않는 사회의 억지 규칙을 피부에 느껴질 정도로 체감하게 되는 방법을 얻었지. 나는 그래도 개인주의적인 성격이 있는 건지, 이런 억지 규칙은 눈치 없다는 핑계로 쌩까서 저런 일은 없었지만, 그 아이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고통받는다는 걸 머릿속에 각인할 수 있게 됐어.
아, 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냐고? 뭐, 쌀국수를 못 먹겠다고 한 건 동기들 앞에서였으니까, 선배들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지. 걔도 그걸 원했겠지만. 결국 저 사람들은 자기들도 모른 채 피해자를 낳았고, 원치도 않았는데 가해자가 된 거야. 강제로 한 학생의 점심을 굶게 한 죄인이 된 거지.
그리고 나도, 다른 동기들도.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죄인인 거야. 저 억지 규칙을 떠받들고, 아무렇지 않게 나이 많은 사람이 메뉴를 정해야 한다는 걸 체화해서 한 학생의 점심을 굶게 한 죄인. 그때 암묵적인 순서를 어기고 말을 했더라면, 그 아이가 용기를 내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다른 곳에서 이 억지 규칙을 어기고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면 이런 모습을 보고 그 아이가 용기를 얻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두려움 없이 메뉴 선정에서 순서를 어기고 말을 하고, 싫은 메뉴가 있으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싫다고 말해. 겨우 밥 가지고 뭐 대단한 거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밥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어? 일단 먹어야지. 잘 먹어둬야 다른 상황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떨리지 않고 말할 수 있잖아.
그러니까, 이 글을 읽은 모두가 두려움 없이 자신의 취향을 밝힐 수 있길 바라. 상대가 나보다 나이가 많더라도, 나보다 '윗사람'이더라도, 나보다 머릿수가 많더라도. 각자 먹기 싫은 건 안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다른 좋은 일도 이룰 수 있겠지.
그러니까 고수가 싫으면 고수가 싫다고 말하자. 몇 가닥 정도면 건져내고 먹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들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