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독이 될 때가 있다

헤어디자이너 미용사 에세이

by 이현지




숏컷헤어를 유지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방문해 주셨던 고객님과의 만남은 늘 유쾌하고 새로웠다. 꽤나 털털한 성격에 해외로 유학 보낸 고등학생 따님이 있었던 그분을 보며, 나도 저런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늘 생각하고는 했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우리는 늘 함께했다. 방학의 끝자락에 따님은 항상 우리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출국했고, 그 분주한 개학준비 과정에 내가 속해있는 것 같아 괜히 우쭐한 연결감을 느껴보고는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방문주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고객님의 연락이 뜸해진다. 예고 없는 만남과 헤어짐은 우리 직업의 숙명이라지만 여전히 적응하기가 어렵다.


꾸준한 만남을 이어가다가 어느 순간 연락이 끊긴 고객님들은 일하다가도 문득 생각이 난다. 그날 따님의 앞머리길이 때문에 의견분쟁이 있었던 탓일까, 머리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행여나 서운한 점이 있었을까? 그러다가 또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에 갇혀 생각은 점점 흐릿해져 간다.


자영업의 고충이지만, 우리는 사적인 인연이 아닌 상업관계로 만났기에 먼저 연락해 보기도 어색한감이 있다. 왜 우리 미용실에 안 오세요라고 연락하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고 쑥스럽기 때문이다. 인연이 다한 우리가 다른 곳에서 어쩌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색한 기운이 가장 먼저 엄습하는 씁쓸한 운명을 안고 살아가기도 한다.



정신없는 나날들로 수개월이 흘렀다. 다시 돌아온 방학시즌에 반가운 연락이었다. 따님의 머리를 예약하기 위해 다시 연락을 주신 고객님께 반가운 마음을 연신 숨길 수가 없다. 오시면 온 마음을 다해 맞이해 드려야지.


예약 당일에, 따님과 함께 방문해 주신 고객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씩씩하고 밝은 모습이다. 추운 날씨에 얼굴보다 훨씬 큰 털모자를 쓰고 오신 고객님은 역시나 개성 있고 아름다웠다. 이런저런 안부를 나누고 따님의 머리를 웨이브지게 진행하기로한다. 풍겨오는 아우라만큼이나 긴 머리를 소유하고 있는 그녀의 따님은, 숱이 많고 머리가 긴 탓에, 머리 하는데만 앞으로 3시간 이상이 걸릴 예정이다.


오랜 시간 혼자 대기석에서 기다리고 계실 어머님을 바라본다.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이를 어쩌나... 모자 쓰신 거 보니 머리 안 감으신 것 같아서요. 기다리시는 동안 예쁘게 드라이라도 해드리겠다고 당차게 말했으나 극구 거부하셔서 말았다. 그럼 뭘 해드리지, 모발케어라도 해드릴까 몇 번이나 권유드렸지만 다 괜찮다고 하신다.


지루했을 3시간이 금방 지났다. 따님의 머리가 다 끝나고 다음번 헤어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나에게 보여줄 헤어 사진이 있다고 한다. 얼굴을 맞대고 핸드폰 앨범을 둘러보는 따님의 손가락 사이로, 선명하게 드리우는 사진 몇 장이 나의 뇌리에 깊게 박힌다. 빠르게 지나갔지만 슬로모션처럼 정확하고 선명한 여러 장의 사진들.



대학병원 환자복을 입고, 병동침대위에 누워 온갖 선들이 즐비한 기계를 연결하고 누워계시는, 삭발한 어머니의 투병 사진이었다. 지금 저 쪽에서 큰 모자를 쓰고 따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계신 소중한 나의 고객님이다.



아차...

나만 빼고 모두가 배려 깊은 세상이다. 좁디좁은 바늘구멍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자각하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아프다. 내 기준에서 왜? 를 외치며 내가 해준다니까요? 하고 우기지 말 것을.. 가만히나 있을 것을 그랬다.




"잘 지내셨어요?"


예전에는 인사차 기계적으로 했었던 말들인데, 이제는 쉽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남게 된다. 어쩌면 안 하니만 못한 인사들, 당신의 말에 공감한답시고 선을 넘어버린 리액션들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건 아닌지, 결국 언어가 아닌 표정과 분위기로 이야기하는 법을, 불혹의 나이를 앞둔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달력에 하루하루 그려진 네모칸의 날짜들, 매일 같은 선상을 걷고 있는 우리지만 누구에게나 그날의 깊이는 매우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나에게는 '일상'에 불과했을 날들이 누군가에게는 견디지 못할 고통의 시간일 수 있음을 왜 매 순간 망각하게 되는 것일까. 내 마음 편하자고 일방적으로 전했던 모든 소통들을, 이제는 말하지 않는 법으로 전하게 된다. 세상의 진리를 하나씩 배워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늘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닌, 절제하고 줄여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언어이던 기대이던 욕심이던 말이다.


망각자로 여행하는 이번 삶은, 깨달아도 다시 망각하고 다시 아프고 다시 배우고 다시 깨우침의 반복이지 싶다. 경황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아무 내색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세상에 바랄 수 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오셨을 우리 고객님의 빠른 쾌유를 마음깊이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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