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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7. "튀르키예"(터키) 두 대륙 문명의 전쟁터

by 김장렬


튀르키예 지리

튀르키예(터키) 대지의 절반은 아시아에 발을 딛고 있고, 다른 절반은 유럽을 바라보고 서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동서가 갈리고, 아나톨리아 고원과 발칸의 산맥이 맞닿은 이 땅은 단지 지리적 경계선이 아니라, 문명과 전쟁, 종교와 전략이 충돌한 살아 있는 무대였다.


이 나라의 지형은 바위 같고, 때론 바다처럼 열려 있다. 북쪽엔 *흑해가 짙푸른 장막을 치고 있고, 남쪽엔 **에게해와 ***지중해가 햇살에 반짝이며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그리고 그 해안선을 따라, 수천 년의 시간이 밀물처럼 드나들었다.

*흑해 : 튀르키예 북쪽에 위치한 바다(튀르크 문화 북쪽은 검은색 상징)

**에게해 : 그리스 신화의 아테네 왕 아이게우스(Aegeus)에서 유래

***지중해 : 라틴어(mediterraneus) '지구 한가운데' 로마 중심 관점


튀르키예의 땅은 역사적으로 북상하는 세력의 교차점이었다. 동쪽의 *페르시아 제국, 남쪽의 이집트 왕조, 서쪽의 그리스 도시국가, 북쪽의 **스키타이 유목민까지 이곳을 통과하며 충돌하고, 혼합하고, 결국 새로운 문명을 낳았다. 고대 ***헬레니즘 문화는 알렉산더 대왕(그리스 고대 왕국 마케도니아 26대 왕)의 원정으로 이 지역에 퍼졌고, 그리스와 가까운 에페수스, 페르가몬, 밀레토스 같은 튀르키예 도시에서 그 흔적은 여전히 땅속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 고대 유산은 훗날 ****오스만 제국과의 충돌로 전환된다. 이슬람 세계의 대표적 세력으로 성장한 오스만은 동로마 제국인 비잔틴을 무너뜨리고, 동서 교차점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했다. 튀르키예는 단순히 과거의 유산을 품은 땅이 아니라, 문명의 교체가 일어난 전장 그 자체였다.

*페르시아 : 고대 이란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제국을 서양에서 일컫는 말

**스키타이 유목민 : 중앙아시아, 러시아에서 활동한 이란계 유목민

***헬레니즘 문화 : 그리스와 유럽 동쪽의 문화가 융합하여 형성된 문화

****오스만 제국 : 튀르키예를 중심으로 중동,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남동유럽 지배한 이슬람 제국

튀르키예 주변 세력과 문화

튀르키예의 해안은 전쟁의 출발점이자 결전의 종착지였다. 서부 해안, 지금의 차낙칼레(Çanakkale) 지역엔 전설적인 트로이 전쟁의 유적이 있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하여 데려가면서 명예회복을 위한 10년간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화 속에서 그리스 연합군은 에게해를 건너 압도적인 해양력으로 트로이를 포위했다. 그리고 결국 ‘트로이 목마’라는 기지로 도시를 무너뜨렸다. 그 장소는 신화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도 전술과 해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었다.

트로이 전쟁 격전지

수천 년이 흐른 뒤, 같은 해협에서 또 하나의 전쟁이 펼쳐졌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의 갈리폴리 전투(1915년)다.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병사들로 구성된 연합군은 독일 제국의 동맹국으로 참전한 오스만 제국을 공격하기 위해 이스탄불을 향해 대규모 상륙 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상륙작전 능력은 미숙했고, 오스만 군은 바다와 절벽을 방어선 삼아 맞섰다. 작전결과 양측 모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남겼으며, 연합군은 상륙작전 실패로 전쟁이 장기화를 막지 못했다.

갈리폴리 전투 작전도

반면 오스만 제국은 오스만 제국으로서 마지막 전투의 성공 사례되었고, 작전을 지휘했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튀르키예 공화국 창시자)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기도 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 갈리폴리 전투, 튀르키예 독립전쟁 영웅으로 현대 튀르키예의 국부로 칭송받음.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오스만 제국은 이 해안에서 제해권을 둘러싸고 유럽 열강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특히 지중해의 제해권을 두고 벌어진 수많은 전쟁에서 오스만 해군은 *갤리선(galley)과 화포를 탑재한 함선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확장하던 오스만 제국은 기독교 세력에 위협이 되었다.


1571년 신성 동맹(교황령, 스페인, 베네치아 등)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그리스 근해 레판토(나프팍토스)에서 대규모 해전을 벌렸다. 400여 척이 넘는 갤리선과 10만 명이 넘는 병력이 동원되었다. 전투결과 오스만 함대는 거의 괴멸되며 신성 동맹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레판토 해전으로 오스만 제국은 지중해 영향력을 잃고 서쪽으로의 확장 정책은 저지되었다. 그리고 신성 동맹은 세력의 결속을 강화함으로써 지중해 지역에 대한 유럽의 영향력 확장의 계기가 되었다.

*갤리선 : 노가 3줄로 배치된 형태로 고대, 중세에 걸쳐 지중해를 지배한 범선, 영화 트로이 목마의 범선과 유사

레판토 해전 위치

튀르키예의 내륙은 다층적인 지형으로 이뤄진 아나톨리아 고원이다. 이 고원은 중앙에서 동서남북을 감시하는 요충지이자, 적의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자연 방어선이었다. 이 지형 덕에 튀르키예는 고대부터 전술적 방어에 유리한 조건을 가졌다.


*셀주크 제국은 이 지역에 처음 이슬람 국가를 수립한 세력으로, 말라즈기르트 전투(1071년)에서 셀주크 제국의 성장을 막으려던 동로마 비잔틴 제국을 물리치며 튀르키예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 전투는 비잔티 제국의 결정적인 패배이자 아나톨리아 지역의 역사를 바꾼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아나톨리아를 중심으로 점차 발칸반도(그리스, 알바니아, 불가리아, 튀르키예 등의 유럽 남동부)와 중동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제국의 뿌리는 바로 이 고원에서 뻗어 나갔다.

*셀주크 제국 : 10~12세기, 튀르크계 부족 지배, 이슬람(수니파) 통일

말라즈기르트 위치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도 이 고원의 중심부에 있다. 내륙 방어의 핵심 거점이었던 앙카라는, 공화국 수립 이후 수도로 지정되었다. 앙카라는 주변 산악으로 둘러싸여 방어에 유리하고, 지리적 중심에 위치하여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리고 튀르키예 독립 전쟁 당시 저항군의 중심지로서 군사 전략의 중심으로 재탄생했다. 냉전기에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방전선의 전초기지로 기능했고, 지금도 튀르키예 육군의 작전 사령부가 이곳에 자리한다.

튀르키예 앙카라 성벽 유적

튀르키예의 주요 하천은 유프라테스(Euphrates), 티그리스(Tigris), 예실르마크(Yeşilırmak) 등 동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으며, 내륙 수자원의 핵심이자 국경을 초월한 전략 자산이다. 특히 유프라테스강 상류를 차지한 튀르키예는 댐과 수자원 통제를 통해 시리아, 이라크와의 외교적 균형을 조율하고 있으며, 이는 ‘수자원 외교’의 상징이 되었다.

튀르키예 강

한편,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지구상 가장 중요한 해상 교차점 중 하나다. 이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은 흑해와 지중해를 오가며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을 잇고, 동시에 군사적 이동로로도 활용된다. 이 지역은 국제 해협 협약의 대상이지만, 튀르키예는 독자적인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전략적 주권의 핵심이 된다.

튀르키예 해협

튀르키예 동남부는 *쿠르드족이 밀집한 지역으로, 시리아·이라크 국경과 맞닿아 있다. 이 지대는 험준한 산악과 국경선이 얽힌 복잡한 지역으로,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어왔다. 쿠르드 분리주의는 단순한 민족 문제가 아니다. 튀르키예는 쿠르드족 분리 독립운동을 테러 행위로 간주하면서 영토 안정성과 직결된 전략적 문제로 인식한다. 이 때문에 튀르키예는 국경 외 작전까지 전개하며 강경한 입장을 취해왔다.

*쿠르드족 : 이란계 산악 민족, 쿠르드어 사용, 민족국가 없는 소수 민족

2019년 튀르키예, 쿠르드 반군 공습

튀르키예는 1950년 한국전쟁에도 참전하며 국제사회에서 외교적 지위를 강화했다. 이 참전은 단순한 군사 동맹이 아닌, 서방세계의 일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결단이었다. 이를 통해 터키는 1952년 NATO에 가입, 이후 유럽과의 방위공동체로서 자리를 잡았다. 동서 냉전의 접경지로서, 튀르키예는 군사적 허브로 부상했고, 미군 기지와 레이더 체계가 배치되면서 전략적 가치가 한층 부각되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군

21세기 튀르키예는 단지 내륙 방어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몇 년간 튀르키예는 ‘블루 홈랜드(Blue Homeland)’ 전략을 통해 에게해, 동지중해, 흑해까지 자국 해양 주권을 확대하는 군사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 전략은 해군력 강화, 군함의 자체 생산, 해상 UAV 운용 등 현대적 해양전력의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지중해 에너지 자원과 해양 경계선 분쟁에서 튀르키예의 입지를 공고히 하고자 한다.

튀르키예 군사력

지금 튀르키예는 단지 북쪽과 서쪽을 지키는 나라가 아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기후 변화, 난민 유입, 물 부족, 테러리즘 위협은 튀르키예가 유럽 남방 방어선의 핵심이 되도록 만든다. 특히 시리아 내전 이후 밀려든 난민들과의 인도주의적 대응, 국경 지대의 군사력 운용은 튀르키예의 안보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튀르키예의 지리는 단지 과거의 전쟁터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설계도다. 유럽과 아시아의 길목, 이슬람과 기독교, 동양과 서양의 중간지대. 이곳은 갈등이 아닌 조율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튀르키예는 그 위치 때문에 고통을 겪었지만, 바로 그 지리 때문에 조정자이자 교량, 때론 심판자이자 선도자가 될 수도 있다.


튀르키예의 대지는 묻고 있다. “너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라고.

아나톨리아 고원의 바람은 여전히 바다로, 산으로,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람을 읽어야 한다. 과거의 싸움이 아니라,

미래의 평화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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