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많은 것에는 짝이 있다. 짚신도 짝이 있고 젓가락에도 짝이 있다. 검에는 방패가 있고 힐러에게는 딜러가 있다. 심지어는 아이템에도 세트 옵션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암컷이라는 존재는 정해진 짝이 없다. 그래서 적잖은 것들이 스스로 짝을 자처하기 마련이며, 그 방식은 각양각색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화려한 깃이나 털을 뽐내는 수컷이 암컷에게 선택받는 것이 일반적이나, 인간의 세계는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에게 꼬여드는 그들의 구애는 얼마쯤은 일방적이고 상호성이 결여되어 있으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불변의 법칙은 온라인 속에서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그들은 귀엽거나 예쁘게 꾸며진 아바타 곁에 슬그머니 자리를 잡는다.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레 다가가 친근함을 가장한다. 그 은근한 접근이 곧 의도의 시작이다.
이 세상에 의도 없는 친절은 없는 것이니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한다면 별스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허나 그들은 뼛속까지 본인의 목적만을 좇는 것이니, 그것을 위해서라면 상대를 향한 배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중요한 맥락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마른틈씨가 젊고 아리따운 시절의 이야기다.
마른틈씨가 속한 길드는 유독 *정모와 *보이스톡이 잦았다. 가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녀는 아직 그 분위기에 적응 중이었기에 그들의 정모 권유를 번번이 거절했으나 무려 예닐곱이나 되는 인원이 그 지역까지 찾아오겠다고 하니 더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오래 알고 지내던 여동생도 함께 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어쩔 수 없이 참석한 그 자리는 여러모로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실 길드에 가입한 순간부터 유독 친절하게 구는 이가 있었으나, 마른틈씨는 그가 원래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인 줄 알았더랬다. 그러나 그는 그날 처음 마주한 여동생이 그의 기준에 몹시 차지 않았던 것인지, 그간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못되게 굴었다.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말을 끊거나, 커다란 덩치로 부러 시야를 가려버리는 뻔한 행동들이 그랬다. 마른틈씨는 그 모습을 보며 그에 대한 평가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여럿이 모인 자리는 으레 그렇듯, 방 탈출게임과 보드게임을 즐기다가 음주와 가무로 마무리되었다. 집에 돌아오던 길, 모르는 번호에 연락이 왔다.
“누구세요?”
“나, OO길드 △△△!”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마른틈씨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괜히 두리번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개인 번호를 누구에게도 알린 적이 없는 것이다. 주변을 확인한 그녀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함과 동시에 순간적으로 울컥이는 화를 다스렸다. 우선은, 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아내야 했다.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요?”
“아ㅡ 아까 방 탈출 카페에서 개인정보 동의서 작성할 때 써낸 거 옆에서 보고 외웠다가 헤어질 때 저장했지!”
허,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본인이 허락한 적 없는 정보를 몰래 본 것? 그것을 바로 저장한 것도 아니고 몇 시간 내내 음습하게 되뇌고 있던 집착을? 아니면 스토킹 행위를 당당하게 본인에게 고백하고 있는 멍청한 대가리를?
마른틈씨는 치미는 신물을 삼켜내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아직은 어두운 밤, 혹시라도 근처에 있을지 모르는 얼마쯤은 정상이 아닐 그를 경계해야 했다.
“아… 그랬구나… 피곤하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날 이후 그는 마른틈씨에게 본격적인 플러팅을 시도했다. 말끝마다 “예뻐”를 붙이거나, 길드 활동마다 여자친구를 찾듯 그녀를 불러댔다. 티 나게 부담스러워해도 꿋꿋이 개인적으로 연락해 왔으며, 일정이 있는 척 근처에 오는 시늉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성에 차지 않던 그 여동생을 대놓고 차단하고는 “나 걔 차단해서 채팅 안 보여”라고 말하는 면모를 보이는 것이라, 그 대단한 인성에 차마 말을 이을 수 없던 것이다.
사실 마른틈씨는 그 모임 직후 남자친구가 생겼다. 굳이 그들에게 이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겠으나 눈치가 없는(없는척하는 것인지도 모를) 그를 떼어놓기 위해 남자친구가 생긴 사실을 공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 사실을 알린 직후 그녀는 여동생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180도 변한 그의 태도는 적응할 틈도 없이 쏟아졌다. 그는 가차 없이 마른틈씨를 구박했고, 쌓이던 불신과 혐오에 그녀는 끝내 길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선택하는 과정을 다윈은 ‘성 선택’이라고 불렀다. 그 과정에서 동물은 털과 깃으로, 인간은 외모와 능력 같은 신호로 자신을 드러낸다. 다만 인간의 관계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한 선택을 넘어 친절과 관심이 오가는 순간, 우리는 이미 무언의 교환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베푼 친절은 ‘비용’이 되고, 돌아올 애정이나 호감은 ‘보상’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사회적 교환 이론’이다.
그에게 보상이라는 것은 단순했다. 마른틈씨가 그의 여자친구가 되어주는 것. 그러나 그의 보상 심리는 끝내 충족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비용과 같던 친절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는 적대로 채워졌다. 그의 눈에 마른틈씨는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니라 '배신자'였던 것이다.
[PVP 전투 로그]
플레이어 ‘마른틈’ VS ‘여미새’
▶ 1라운드 : '여미새'의 친절 공격 → '마른틈'의 혼란 상태
▶ 2라운드 : '여미새'의 개인정보열람 스킬 → '마른틈'의 불안 상태
▶ 3라운드 : '여미새'의 집착 연타 → '마른틈'의 회피 발동
결과: ‘마른틈’ 승리!
보상: 자유로운 플레이 / 경계심 +10
*정모: 온라인 게임 인원들이 현실에서 모이는 자리
*보이스톡: 게임 내 음성 채팅 기능으로 목소리를 주고받는 행위
+ 마른틈씨가 예쁜 건 극 중 설정입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