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장미공원과 곰은 없었지만, 베른.
오늘도 집 앞 간이역에서 기차를 잡아 탔다.
인터라켄에서 내려 부모님은 브리엔츠 유람선을 타러 가고, 남편이랑 나는 아이와 함께 베른으로 향했다.
베른 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스타벅스였다.
한국 사람 하면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면 한국 사람. 이탈리아부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간절했지만, 혹시 근처에 더 나은 카페가 있을까 싶어 꾹 참고 발을 돌렸다.
관광이라고는 정말이지 관심이 없는 남편 때문에, 베른에서 가장 유명한 곳들은 가지 않기로 했다. 곳곳을 목적 없이 돌아다녔다.
화분을 잔뜩 파는 플리마켓도 만나고, 공원에서 체스를 두는 노인 분들도 만났지만 맘에 드는 카페는 찾지 못했다. 마침 화장실이 급하기도 해서 결국 익숙한 스타벅스를 찾게 되었다.
급한 일을 해결하고 다시 나와, 늘 그렇듯 목적 없이 걷다가, 내게는 이미 익숙한 시계탑과 상점 거리를 만났다.
나는 대학생 때도 스위스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일요일이라 가게가 다 닫혀있었는데 이번에는 활기를 띠고 있어서 새로웠다. 시계탑은 십여 년 전 그대로였다.
상점가를 돌아다니다 위스키 가게에 들어가 보았다. 다양한 위스키를 시음해 보고 작은 병에 들은 “스위스 싱글몰트 위스키”를 하나 사 왔다. 손글씨 느낌으로 병에 이름이 적혀있는 게 귀여웠다.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늑하고 예쁜 장소를 만났다. 혹여나 사유지일까 봐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으니, 한 아저씨가 퇴근하다 말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봐주셨다.
“안에가 너무 예뻐 보이는데 들어가도 되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하니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이며, 안쪽엔 카페도 있다고 직접 안내를 해주셨다.
스위스는 이런 예상치 못한 친절이 곳곳에 있어 행복하다. 이런 친절한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채워주는 느낌이다.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곤란해 보이는 외국인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줘야지.’ 다짐하게 된다.
따듯한 기억이 남아있는 저 이름 모를 곳을 뒤로하고, 집에 가기 위해 베른역으로 향했다.
역에 도착해 수유실에 들렀다.
기저귀 갈이대 위에 아기들이 뒤집지 않고 집중할 수 있게 미러볼이 있었는데, 이런 세심한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엄마로서 참 와닿고 좋았다.
이렇게 우리의 베른 여행은 끝.
원래 베른은 계획에 없던 여정이었다. 루체른과 베른을 고민하다 루체른을 택했었는데, 내심 스위스의 수도라는 베른을 뺀 게 조금 아쉽기도 했었다. 그런데 결혼 전에 왔던 곳을 우연히 남편, 아기와 다시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게다가 그때는 상점이 다 닫혀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엔 한층 활기찬 베른을 만날 수 있어서, 장미공원과 곰은 없었지만 더욱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