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토스테론 넘치는 여자

불순하게 체육을 전공하면서 시작된, 12년 피트니스 여정

by 체대누나 마리똘

나는 도봉구 창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서울이지만 중심부는 아닌 위치 덕분에 동네엔 나무가 많았는데 봄이면 민들레로 꽃반지 만들고, 철쭉을 진달래인 줄 알고 빨아먹다 날벌레도 몇 마리 같이 먹기도 했다.


여름이면 친구들이랑 도봉산 초입에 가서 올챙이를 떠 와 대야에 넣고 키웠는데 다리 두 개쯤 나면, 그 덜 된 몸으로 자유를 찾아 떠났는지 어쨌는지 올구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했다.


확실히 환경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3학년쯤부터 손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애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보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열리는 자칭 학교 짱들의 맞짱 일정이 또래 아이들에겐 더 큰 이벤트였고 실제로 후까시를 잔뜩 넣은 폭탄머리 교복언니들한테 삥도 많이 뜯기는 동네였다.

스크린샷 2025-06-10 오후 4.53.18.png 두유 노우 후까시?


교육열이 센 동네는 아니었고(나만 그렇게 느낀 걸 수도) 부모님도 초등학생 때까지는 나를 창동역 들판에 방목했기에 매일 칠렐레 팔렐레 넋빼놓고 놀러 다니던 나는 6학년 2학기, 전교 꼴등이라는 꽤 대단한 인생 업적도 달성해 봤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마자 부모님은 갑자기 중랑역 은행사거리 대형 학원가에 나를 꽂아 넣었다. 학원 셔틀 타고 다니며 밤 10시까지 영단어 외우고 수학문제 풀고, 그게 일상이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어느 날 아예 강남으로 이사를 와버렸다.


강남의 다른 친구들은 다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니며 선행이 된 상태였고, 민들레 꽃반지나 만들고 놀던 나는 도무지 달라진 학교분위기에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타고난 머리가 나쁘진 않았던지 국어, 영어, 역사같이 맥락이 있거나 단순 암기로 해결되는 과목들은 금방 잘하게 되었지만 정말 너무 극복할 수 없던 단 한 가지, 바로 수학이었다. 한 문제를 다섯 번 푸는데 다섯 번 다 다른 답이 나오니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내 인생에서 굳이 테스트까지 안 해봐도 정답이 뻔한 자가진단 항목이 딱 두 가지 있었는데 퍼스널컬러, 그리고 MBTI다. 얼굴 밑에 천을 대보지 않아도 나는 가을 웜톤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MBTI는 몇 번을 해도 N과 P는 절대 안 바뀌었다.


이런 성향 때문인지 증명, 사고, 수리 같은 능력치들이 조금(?) 떨어지는 나는 다른 과목은 다 1-2등급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지만 수학은 5등급 심하면 6등급이 나왔다. 나도 부모님도 미칠 노릇이었다. 특히 그 시절의 나는 장래희망이랄 게 없이 뚜렷한 목적의식 없는 그저 살아있으니까 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아빠가 강수를 두었다. 중경외시 이상 급의 학교를 가면 유럽여행을 보내주겠다고 한 것.


아빠도 딸내미를 붙잡고 수학을 가르치려 부단히 노력했다. 주말이면 아빠랑 공부방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고 설명을 해줄수록 동태눈이 되는 나를 보며 화를 삭이던 아빠는 결국 참지 못하고 내 머리를 몇 번 때리기도 했다. 아마 그때 뇌세포를 좀 잃어서 수학을 더 못했던 듯하다.


결국, 채 씨 부녀는 머리를 맞대고 우회로를 선택하기로 했다. 바로 수학을 버리고도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예체능을 선택하는 것. 그중 가장 시간 투자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값싸게 먹히는 게 체대입시였다. 그렇게 운동의 운자도 몰랐고 운동신경도 없던, 주말에 등산 가자 하면 가기 싫어서 자는척하던 나는 이런 불순한 이유로 고3 6월부터 체대입시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오거나,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 회원들이 “코치님은 원래부터 운동 잘했죠? “라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하늘에 맹세코 나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친구랑 뭘 배우러 같이 가도 항상 배움이 늦됐다.


체대입시 학원에 가서 운동을 하는데도 딱히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었다. 실기 종목들은 대체로 키가 작고, 민첩한 체형의 친구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팔다리가 조금 펄럭거리는 나는 뭘 해도 어정쩡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운동이라는 게 참 기특한 점은 내가 시간을 투자할수록 실력이 늘긴 한다는 것이다. 수학은 내 노력을 배신했지만, 체육은 날 배신하지 않았다.


체대 입시 학원에서의 경험은 내 성격에도 꽤 큰 영향을 줬는데,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믿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때 나는 대인기피증,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선생님이 발표를 시키면 목소리가 떨리며 말을 절었고, 학교 복도 맞은편에서 모르는 남자애가 걸어오기만 해도 심박이 오르고 긴장감을 느꼈다.


그런데 또래 남자애들이랑 부대끼면서 운동하고, 약간이라도 성취감을 느끼다 보니 자기 효능감 같은 것도 따라왔다. 수능을 볼 무렵엔 날 작아지게 만들던 그런 증상들은 거의 없어져 있었다.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에 나는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은 전부 운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2013년도 수능은 국영수가 A/B형으로 나뉜 첫 해였다. 출제기관에서 난이도 조절을 실패했는지, B형을 골랐음에도 기대보다 성적이 잘 나왔다.(물론 수학은 여전히 6등급이었다.) 그래서 가군에 실기를 아주 잘 볼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으로 수학성적이 포함되지만 연세대 상향지원, 하향으로 경희대를 쓰기로 했다. 연세대와 경희대 사이에 있는 대학들은 대부분 가군이라, 1 지망과 2 지망 사이의 대학 네임밸류 간극이 꽤 컸다. 체대는 수시로 갈 수 있는 대학 중 아주 좋은 대학은(바꿔말해 나를 유럽에 보내줄 대학은) 몇 없었기 때문에 나는 용감하게 정시로 가나다군 단, 세 개의 총알을 가지고 입시에 뛰어들었다.

18341_4622_3714.png 2014년도 수학능력시험 시험지


예체능 전공자들이라면 으레 알겠지만, 우리의 입시는 수능 이후부터 시작된다. 체대입시학원은 “시즌비”라는 명목으로 월 학원비를 아주 많이 올린다. 대학을 가기 위해 총 12년의 학업을 이어온(?) 우리는 군말 없이 그 돈을 내고 주 6일 학원에서 살며 밥 먹을 때의 짧은 휴식 빼고는, 아침부터 밤까지 운동을 하다 집에 간다. 학원마다 다르겠지만 강사들은 보통 전년도에 대학입학에 성공한 20대 초반의 학생들이라 운동과학적인 요소는 훈련에 딱히 고려되지 않은 채로 말 그대로 무식하게 운동시킨다. 또한 원장님이 어떠한 커리큘럼을 따로 주지 않고 프로그램을 강사 재량에 맡겼기 때문에 해당 시기는 가장 많은 부상이 발생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p179586297246716_524.jpg 밥 먹는 시간 빼고 운동만 하던 시절


당시 연세대 체육교육학과의 입시과정은 매우 까다로웠다. 보통 면접까지는 잘 보지 않는 편인데 연세대는 공통실기+전공실기+면접으로 이루어져 학교를 무려 3일 동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공통실기과정은 공정성이나 시설면에서 매우 실망스러웠는데 자세히 언급하진 않겠다. 지금은 제자리멀리뛰기 판이 흔들거리는 나무판에서 센서식으로 바뀌었길 바라며,,


공통실기도 충격적이었지만, 진짜 아직까지도 자다가 가끔 꿈에 나오는 최악의 전공실기날은 무슨 일이 있었냐면, 우선 해당년도 지원자 수가 많았던지 연세대 구 체육관에서 4시간을 농구공을 튀기며 대기했다. 계속 긴장한 상태로 장시간 대기해서 안그래도 지치는데 전공실기생 중 농구선출이 있어서 현란한 그들의 드리블과 발재간 쇼타임에 이미 기가 죽은 상태로 실기장 입장.


실제 경기장 규격에 맞춰 만들어진 농구장은 위압감이 어마어마했다. 경기장 중간엔 독수리 그림이 있고 그 옆으로 대여섯 명의 교수들이 앉아있었다. 실기 내용은 한쪽 골대에서 반대쪽까지 자유연기 드리블 후 슛하기. 그런데, 하필 내 앞 순서 수험생 생김새가 심상치 않다. 남잔데 키가 190이다. 그는 시작 전, 갑자기 손을 번쩍 들더니 말했다.


“교수님, 혹시 덩크해도 됩니까?”


그의 말에 교수들은 피식 웃으며 할 수 있으며 해보라고 했고 그는 공을 다리사이에 넣어 레그스루를 하기도 하고, 백드리블을 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넓은 농구장의 끝에서 끝까지 단숨에 달려 결국 마지막은 덩크로 림에 대롱대롱 매달려 마무리했다. 그다음 순서였던 난 울고 싶은 심정이었고 한 교수의 입에서 내 번호와 이름이 호명된 이후의 기억이 아직까지도 없다.아마 수치심으로 선택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듯.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연세대 농구부 입학 예정이었던 선수였다. 허허

스크린샷 2025-06-10 오후 5.11.58.png 자신있게 덩크하는 너
58672_1670244716.png 그걸 지켜보는 나

그렇게 실기장에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는채로(아마 나올때 살짝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다음날 면접은 이미 모든걸 망쳐버린 듯한 느낌 & 완치되지 못한 무대공포증의 콜라보로 너무 벌벌거렸기에 썩 잘 보지 못했고, 재수는 꿈도 꾸기 싫었던 나는 얌전히 경희대에 입학금을 입금했다. 그렇게 내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은 체대생 라이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