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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함이 신이 되는 순간 – 미치자네와 텐만궁 이야기

by 다다미 위 해설자

교토의 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곳이 있다.

붉은 도리이 아래,
정갈하게 정돈된 돌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신사.
그곳은 그냥 관광지가 아니다.

억울함이 신이 된 곳,
스가와라 미치자네를 모신 텐만궁(天満宮)이다.

서기 845년, 일본 헤이안 시대.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평민 출신에 가까운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무기는 오직 하나, 공부였다.

어려서부터 한문과 시, 정치, 법률에 능통했고

당대 귀족들이 모여 있던 조정에서도 그의 실력은 빛을 발했다.

학문 하나로 그는 천황의 신임을 얻고, 벼슬길에 올랐다.

요즘 말로 하면
흙수저 출신의 미친 노력파였던 거다.

미치자네가 승승장구하던 그때,
귀족 사회의 질투는 깊어졌다.

특히,
당시 최대 귀족 세력인 후지와라 가문이 그를 시기했다.

정적들은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그의 모든 공적을 뒤엎었다.

결국 미치자네는 죄인으로 몰려,
천황 곁에서 쫓겨나고,
규슈 다자이후(太宰府)로 유배된다.

“나는 죄가 없다.”
“억울하다.”

그의 항변은 외면당했고,
그는 가족과 헤어진 채,
외로운 섬에서 눈을 감았다.

미치자네가 세상을 떠난 뒤,
기묘한 일들이 이어졌다.

번개가 궁궐을 때리고

전염병과 기근이 퍼지고

그를 몰아냈던 귀족들이 줄줄이 죽었다.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의 원혼이 분노하고 있다.”
“억울함이 하늘을 흔들고 있다.”

결국,
정적들도, 천황도 고개를 숙였다.

그를 억울하게 만든 사실을 인정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했다.

그리고,
그를 ‘학문의 신’, 천신(天神)으로 모셨다.

다자이후에 세워진 다자이후 텐만궁,
그리고 일본 전역에 퍼진 텐만궁들은
단순한 학업 기원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억울함을 이겨낸 상징,
끝까지 스스로를 지킨 사람의 흔적이다.

텐만궁 앞에는 소 동상이 있다.
소는 미치자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 동물.
전설에 따르면,
그가 숨을 거둔 뒤, 소가 멈춘 곳에 무덤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속삭인다.

“지혜를 주세요.”
“억울함을 이겨낼 힘을 주세요.”
“노력의 결과가 돌아오게 해 주세요.”

나도 그곳을 걸었다.
수험생들이 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부모들은 간절한 눈으로 소를 바라본다.

그 모습 속에서,
단순한 ‘시험 잘 보게 해 주세요’ 이상의 마음이 느껴졌다.

살다 보면,
노력만으론 해결 안 되는 억울함이 찾아온다.
그럴 때 필요한 건,
끝까지 자신을 믿고 버티는 힘이다.

미치자네가 보여준 것처럼.

결국, 억울함을 딛고 신이 된 남자

스가와라 미치자네.
그는 억울하게 쓰러졌지만,
죽어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켰다.
그리고 결국,
일본 전국에서 그를 모시며 소원을 비는 신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말해준다.

억울해도, 버티면, 결국 세상이 기억한다.
당장은 질 수 있어도, 끝은 내가 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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