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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 한 점이 인생을 말하다

by 다다미 위 해설자

처음엔 그저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한 점이, 제 인생을 멈춰 세웠습니다.

도쿄의 어느 골목, 허름한 초밥집에서 만난 초밥은

그저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말이 없던 장인,

단 한 마디 없이 제 앞에 초밥을 놓고는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죠.

그 순간, 저는 느꼈습니다.


‘이건 누군가의 인생이다.’



우리가 아는 초밥은 보통 고급 이미지입니다.

하지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에도 시대, 초밥은 빠르게 한 점 쥐어주는

서민들의 패스트푸드였습니다.

서서 먹고 바로 가는, 지금의 푸드트럭 같은 존재.


하지만요,

속도는 빨랐어도 정성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게 지금의 초밥 명성을 만들었죠.




초밥 장인은 장갑을 끼지 않습니다.

손으로 밥을 쥐고, 생선을 얹고, 살짝 누릅니다.


왜일까요?


‘손의 온도’까지가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참치는 차가운 손에서,

광어는 따뜻한 손에서 더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이죠.


그러니

장인의 손은 조리도구이자 레시피이며,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도구입니다.



초밥의 밥은 절묘합니다.

모양은 흐트러지지 않지만,

입 안에선 스르르 흩어집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사람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겉은 단단하게, 중심은 부드럽게.

흐트러지지 않되, 고집은 부리지 않는 것.


초밥은 그렇게,

저에게 ‘좋은 사람의 조건’을 말해주었습니다.



참치는 바로 썰지 않습니다.

며칠을 숙성시켜, 가장 부드럽고 고소한 순간을 기다립니다.

문어는 삶은 뒤, 하루를 더 둬야 합니다.

밥도 바로 안 씁니다.

식초와 섞고, 식히고, 손으로 만지며 온도를 맞춥니다.


모든 것이 기다림의 예술입니다.


그 기다림 끝에야

입 안에선 ‘이건 그냥 생선이 아니다’ 싶은 맛이 펼쳐지죠.



초밥 장인은 말이 없습니다.

"어떤 생선 드릴까요?" 묻지 않습니다.

그날 가장 좋은 재료를,

당신의 얼굴을 보고, 감정을 읽고,

그저 조용히 내어놓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느껴지는 배려.

그게 일본이 말하는 ‘오모테나시’,

보이지 않는 손님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환대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초밥을 함부로 먹지 않습니다.

한 점 한 점, 천천히 입에 넣고,

그 안의 시간, 정성, 인내, 마음을 느끼려 애씁니다.


초밥은 말합니다.


“단단하되 부드럽게,

말없이 진심을 담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돼라.”


그 한 점 안에

인생이, 사람됨이, 철학이 들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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