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차 한 잔에 담긴 인생 — 일본 다도문화 이야기

by 다다미 위 해설자

처음엔 그저 차 한 잔이었다.

하지만 그 안엔 ‘삶을 다루는 법’이 들어 있었다.


교토의 한 다도 체험 공간에서였다.

작은 찻집, 단출한 다기, 아무 말 없이 움직이는 주인의 손길.

그 장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는, 차를 마시러 온 것이 아니라

인생의 태도를 배우러 왔구나."



일본 다도에는 한 가지 중요한 정신이 있다.

바로 와비사비(侘寂).


화려하지 않다. 반짝이지도 않는다.

오히려 투박한 찻잔, 닳은 대나무 다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찻상에서

그들은 ‘불완전함 속의 완성’을 본다.


그건 마치,

상처투성이 삶이 더 진실하다는 것을

조용히 말해주는 듯했다.



놀랍게도, 이 다도는

원래 무사들의 수행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적인 차 스승 센노 리큐(千利休).

그는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밑에서

‘차’라는 이름의 철학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가 말한 다도의 핵심은 네 글자였다.


화경청적(和敬清寂)

— 조화, 존경, 청결, 고요.


차를 마시기 전,

상대를 향한 존경을 담아 손을 모으고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며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는 것.

그게 그들의 ‘차 준비’였다.



다도는 공간도 중요하다.

찻집은 보통 다다미 네 장 반,

딱 2평 남짓한 작은 공간이다.


그 안에선 누구도 군림하지 않는다.

무사든 상인이든,

왕족이든 백성이든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평등하다.


지위를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시간을 내려놓고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곳.



오늘날 일본에서도 다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

고등학교엔 다도부가 있고,

외국인들조차 이 다도의 매력에 빠져든다.


왜일까?


빠르게, 편하게, 넘치게 살아가는 시대에

다도는 ‘천천히, 단순하게, 비워내는 삶’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차 한 잔 속엔, 인생이 있다.

그 차를 준비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태도’를 배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작은 매운맛에 담긴 일본의 정성과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