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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없는 운명 and 바꿀 수 있는 운명

뇌경색의 조절 불가능 또는 가능한 원인들

by 허간호사


90을 바라보는 또는 90을 넘기신 고운 할머니 할아버지 환자분들이 계신다. '나도 이분처럼 늙고 싶다~'하는 생각이 드는 그런 분이다. 인상이 선하고 한평생 병원이라고는 모르고 사셨을 정도로 정정하신 분들이다. 병원밥을 오래 먹다 보면 반 점쟁이가 된다. 풍기는 인상을 보면 어느 부위가 아픈 환자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얼굴빛이 까만 사람은 신장이 안 좋고 얼굴빛이 노란 사람은 간이 안 좋고 화를 버럭버럭 잘 내는 사람은 심장이 안 좋다. 평소의 건강습관뿐만 아니라 온화한 성격 또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항상 배우고 반성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인상 좋은 할머니 할아버지분들도 이렇게 뇌경색으로 병원을 입원하시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런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조절 불가능한 유발 원인


신도 어쩌지 못하는 바꿀 수 없는 운명이 있다. 이 부분은 아무리 내가 용을 쓴다고 해도 운명이거니 하고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의사도 막아줄 수 없고 신에게 빌어도 소용없다.


첫째, 나이 (Age): 나이가 들수록 뇌경색 위험이 증가한다. 나이가 들면 온몸의 기관들이 서서히 망가질 수밖에 없는 거처럼 혈관도 늙어진다. 탱탱했던 어린 시절의 피부는 쭈굴쭈굴 주름투성이가 되듯이, 외모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혈관도 늙어져 점점 단단해지고 탄력을 잃게 된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동맥경화성 혈관 변화는 신도 어쩌지 못하는 위험인자다.


둘째, 성별 (Sex): 남성이 여성보다 뇌경색 위험이 약간 더 높다. 이 부분은 체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병동에는 남녀 병상이 반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유독 신경과 병동에서는 남자 병상은 꽉꽉 들어차는데 여자 병상은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통계 자료에서도 남자환자의 비율이 1.2배 정도 높다고 보고되고 있듯이 남자에게 위험 요인이 더 높다. 그렇다고 여자는 안심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문제다. 여자의 경우에는 폐경 후에는 뇌경색이 잘 발생하게 되고 또한, 남녀의 비율이 몇 배로 차이 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안심하긴 이르다.


셋째, 유전 및 가족력 (Genetics and Family History): 가족 중에 뇌졸중이나 심혈관 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에는 위험도가 높아진다. 당연한 말 일 수 있겠지만 유전으로 얻은 부분은 내가 어쩌지 못한다. 특히, 혈액응고장애 또는 모야모야병 같은 가족력이 있는 분이라면 늘 경계해야 될 정도로 유전적인 부분은 무시할 수 없다. 뇌경색 환자분 중 가족 중에 심혈관 질환이 있으신 분들 경우에는 뭔지 모르게 마음 한 켠이 편해 지시기도 한다. 내가 잘못해서 병이 생긴 것이 아니라 조상 탓을 할 수 있게 된 점이 면죄부를 받은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


넷째, 인종 (Race): 이 부분만큼은 한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할 부분이다. 통계에 따르면 흑인> 백인> 아시아인 순으로 뇌경색의 발생률이 높다고 한다. 지금까지 본 부분 중에 제일 마음이 안도되는 부분이다.


앞에서 말한 고령의 인자하신 환자분의 경우에는 나이라는 부분에서 어쩌지 못하신 거다. 고무줄 같았었던 탱탱한 혈관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작은 모세혈관 쪽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런 분들처럼 평소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던 오로지 고령의 문제로만 뇌경색이 발생한 거라면 뇌경색의 증상은 경미한 경우가 많다. 모세혈관이 잠깐 막혔다 한들, 아주 영원히 막혀버린다 한들 뇌에 영향을 미쳐봐야 얼마나 미치겠는가?




조절가능한 유발원인


모든 원인이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한다면 너무 암담한 일 일거다. 하늘만 탓하면 마음은 편할지도 모르겠으나 그러기에는 꽤나 많은 부분이 나의 생활습관과 직결되어 있다. 나 스스로, 병원의 도움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첫째,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뇌경색의 주요 원인들이다. 평소 관심 있게 관리를 한다면 뇌경색뿐만 아니라 많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같은 질환을 진단받게 되면 평생 안고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좋아지면 약도 끊을 수 있는 충분히 완치 가능한 질환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태어났다 생각들 정도로 생활습관을 완전히 교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이 발목을 잡아 꼬리표를 뗀 환자들이 적다 보니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질환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은 나의 노력으로 병원의 도움으로 조절할 수 있다.


둘째, 흡연: 흡연은 나의 노력으로만 바꿀 수 있는 원인이다. 요즘은 각 보건소에 있는 금연센터도 활용할 수 있지만 이용하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는 경우에만 금연에 성공하게 되는 거 같다. 식이관리를 엉터리로 하면 그때마다 약물농도를 올릴 수 있는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다르게 이 부분은 약으로 치료할 수 없다. 1천원으로 로또를 사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맡기는 일이지만, 내 스스로 담배를 부러트리면 건강이라는 확실한 보상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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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음주: 소량의 음주는 오히려 뇌경색을 예방한다는 말도 떠다니곤 한다. 그러나 내가 여러 환자를 대한 결과 의료진이 생각하는 소량과 애주가들이 생각하는 소량의 양이 달랐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아예 드시지 말라고 말한다. 1~2잔의 가벼운 음주라도 장기적으로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이 최근 학회의 주장이기도 하고 '애주가들의 경우에는 1잔이라도 목구멍을 넘기고 나면 제어되지 않는구나'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조절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고 이제는 술은 처다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넷째, 심장질환: 심방세동, 심장 판막 질환 등은 혈전 형성을 유발해 뇌경색 위험을 높인다. 그러나 이러한 질환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너무 낙담할 일은 아니다. 병원의 도움으로 항응고제나 기타 치료로 조절가능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운동과 식이요법 등 건강관리를 병행한다면 내 몸속의 폭탄을 하나씩 제거하는 일이 되니 오늘부터 운동과 식이요법에 박차를 가해보자.


다섯째, 스트레스, 수면 무호흡증: 스트레스받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것은 뇌경색뿐 아니라 만병의 근원이 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특히 수면 무호흡증은 뇌경색과 관련이 높다. 수면무호흡증이 뇌경색의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들어 부각되면서 수면무호흡증을 검사하는 수면다원화검사도 비급여항목에서 2018년 7월 이후로 급여항목으로 전환되었다. 진단을 받게 되면 양압기치료를 통해 개선될 수 있으니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노력으로, 병원의 도움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누군가는 이런 조언을 귀담아듣고 건강관리에 관심을 갖는 계기의 작은 해프닝의 뇌경색이 되고, 누군가는 어떠한 경고도 무시하고 내 운명에 맡긴다면서 하던 대로 사시다가 평생의 후회가 되는 뇌경색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이 글을 찾아 읽으시는 분들은 전자의 경우일 터이니 한 말씀드리고 싶다.



"좋은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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