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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클 샘(연방제국)을 떠나며 두 여행자가 나눈 이야기

자본의 방향을 두고 나눈 긴 대화

by 헬로 보이저


미국에서 ‘빅부라더’라고 불리던 샘과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샘은 홍콩에서 태어난 미국인이다.
50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집을 사고
전형적인 ‘아메리칸드림’의 트랙을 밟아온 사람이다.

그리고 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 가족들과 미국에서만 35년

한국계 미국인이다.

샘은 미국의 꽤 큰 제약회사에서 30년을 일한 제원이었다.
성공한 커리어와 안정적인 삶을 모두 손에 쥐었던 사람.
그래서 샘이 지금, 미국 밖에서 노후를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낯설고 묵직하게 다가왔다.

그 샘이,
미국 집을 팔고, 한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돌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
근데 비자를 안 주잖아.
세 달 살고 나갔다 다시 들어오고,
그렇게 쫓겨 다니듯이 살기엔 나이가 좀 많지.”

샘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웃음 뒤에 피로가 있었다.

우리는 한국 음식점에서 천천히 식사를 마친 뒤,
한강 넘어서 북한이 희미하게 보이는 베이커리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흐렸고, 바람은 얇게 찼다.
둘 다 인생 후반을 어디서 보낼지 고민하는 나이라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묘한 무게가 스며 있었다.

샘이 물었다.
“쥴리, 너는 어떻게 혼자 전 세계를 그렇게 다닌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 계속 걷고 있네요.
근데 샘,
아프리카 끝 남아공에서도 중국이 있고,
남미 끝에서도 중국이 있고,
솔직히 중국 자본이 안 들어간 곳을 아직 못 본 것 같아요.”

샘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리고 자기 얘기를 했다.
미국에서 큰집을 가지고 잘 살았지만 결국 모두 정리했고,
지금은 한국과 다른 나라들을 오가며 살고 있다고.
이제 남은 마지막 자산을 어디에 둘지 생각 중이라고.

나는 그 말이 조금 불안했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물었다.
“샘, 혹시 중국으로 자본을 옮기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해요?
중국은 위험하지 않을까?”

샘은 의외로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이 투자를 많이 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더 잘 살게 하려는 거라고 생각해.
쥴리,
너처럼 미국에서 오래 살았으면 알잖아.
미국이라고 우리가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건 없어.
엉클 샘(연방제국)이 과연 우리 돈을
‘미국에 두는 것’만으로 지켜줄까?”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 말속에 담긴 피로, 체념, 그리고 오래된 현실 감각.
나 역시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열심히 벌어도 세금으로 사라져 버리는 삶이
결국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은 두려웠고,
미국은 지쳐 있었고,
세계는 지금 어디도 완벽하게 안전하지 않았다.
그날의 대화는 그래서 더 무거웠다.

커피를 다 마실 즈음,
카페 창밖에 흐린 겨울빛이 내려앉았다.
샘은 자기 마지막 자산을 어디로 들여보낼지
고민을 계속할 거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조용히 말했다.
“그래도 샘, 중국에 옮기는 건… 조금 더 잘 알아보고 하셔요”

샘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된 여행자가 가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쥴리, 미국이나 중국이나… 생각보다 서로 많이 닮았다.”

그 말이 마음 한복판에 톡 떨어졌다.
씁쓸했고, 묘하게 서늘했다.

우리는 그렇게 일어섰다.
바람은 더 차가워졌고
겨울 햇빛은 길바닥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과연 샘의 자본을 중국으로 옮겨도 괜찮을까.
그 질문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각자의 인생 지도 위에서
우리는 잠시 같은 지점에 서 있었을 뿐.
그의 다음 여정이 어디로 향하든
나는 멀리서 조용히 응원하며
나의 길을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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