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붉은 청춘
엄마는 90세를 훌쩍 넘긴 연세에도 건강하셨다.
나는 엄마에게 100살까지는 사셔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살아도 자식들에게 폐 끼지 않게 건강하게 살아야제”
엄마는 싫다는 말 대신 가벼운 운동과 산책을 즐기셨다.
“이거 언니네 갖다주래”
엄마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 동생이 뜬금없이 화분 두 개를 가져왔다.
“쌈짓돈 50만 원이나 동생에게 배달비 로 쥐여 보내면서까지,
엄마는 왜 그 화분 두 개를 내게 주고 싶어 했을까. 나는 내내 궁금했다.
“아유 엄마도 돌아가실 때가 됐나 봐”
농담처럼 말했고 동생과 마주 보며 웃었다.
우리 집에 온 화분은 엄마 집에 갈 때마다 내가 탐냈던
동백나무와 군자란이었다.
동백은 여름과 가을의 경계선에서 벌써 꽃눈이 동글동글 맺혀있었다.
군자란은 꽃이 진 자리에 아직도 꽃대가 길게 남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다음 해 꽃눈을 달고 온 동백이 꽃을 피울 즈음,
엄마는 유모차를 밀며 혼자 산책길에 나섰다가 넘어져
그만 고관절을 다치고 말았다.
그 화분을 내게 보냈던 엄마는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셨던 걸까?
엄마는 부상 후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라는 말을 나는 잊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90세가 넘으면 언제 떠나도 아쉬울 게 없는
나이라고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잣대로 나이를 말하고 있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우리 집에 온 동백은 몸살을 앓았다.
밖에두면 시들고 안에 들이면 곰팡이가 피었다
쉽게 자리를 잡지 못하는 그 화분을 보며,
엄마가 떠난 뒤의 내 마음도 저랬던가 싶었다.”
이듬해 나의 정성이 통했는지, 비록 가지는 앙상했으나, 제법 많은 꽃망울을
만들어 내더니 피보다 진한 붉은색 꽃을 피웠다.
처음 동백을 키워 본 지라 시들지 않는 꽃송이가 통째로 땅에 떨어져 있을 때마다
애꿎은 고양이들을 혼내곤 했다.
군자란은 번식력은 좋지만 탄저병에 약해 잎사귀를 수시로 잘라내야 했다.
다행히 병을 잘 이겨내어 두 개의 화분에 뿌리를 나눌 만큼 건강하게 자랐다.
마당에서 바라본 거실에 피어있는 군자란 꽃은 넓은 창을 온통 붉게 물들였다
평생 고생만 하신 엄마가 백세까지 사실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나는 당연한 듯 품고 살았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 동백꽃이 통째로
땅에 떨어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동백꽃의 붉음은 슬프고 처연하다"라는 문장에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동백이 붉게 꽃을 피울 때마다. 엄마의 힘들었던 삶을 생각하게 된다. 탐스러운 동백꽃이
땅에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는 그 뒤를 잇듯 군자란의 붉고 탐스러운 꽃들이
꽃대마다 주렁주렁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