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 정서

봄나물

by 인생서점 북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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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하늘에 봄볕이 따스하다. 부드럽고 포근한 햇살 아래,

겨우네 움츠렸던 땅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냉이, 달래, 쑥같은 봄나물은

땅속을 뚫고 힘차게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사월이 오면, 주말마다 우리 집 앞 공터에는 나물을 채취하려는 사람들이

배낭을 메고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공터는 만남의 장소가 되어 북적이고,

잠시 한눈판 사이에 그들은 어느새 썰물처럼 산과 들로 빠져나가 보이지 않는다.

한낮이 지나면 사람들은 배가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마을을 내려간다.

혹시라도 나의 밭에서 자란 나물들을 채취해 가는 건 아닌지.

물론 지천에 깔린 냉이, 달래, 쑥은 자연에서 나는 것이지,

내가 재배하고 키우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써 키운 두릅나물은 자연에서 거저

나는 줄 알고 말도 없이 닥치는 대로 따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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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마음이 분주해진다.

따스한 봄볕과 전날 내린 비로 싹이 얼마만큼 자랐는지 궁금해,

개냥이 쿠키를 앞세워 밭으로 갔다.

집에서 텃밭까지의 거리는 불과 150미터 정도인지라,

촐랑대는 쿠키와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밭둑을 따라 걷는다.

밭 가장자리에서는 아스파라거스가 봄의 기운을 받아 삐죽삐죽 올라오고 있다.

밭둑 한켠에는 가시 없는 두릅나무의 연한 순들이 쑥쑥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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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 길고양이가 이따금 몸을 낮추고 지나가는 길섶에는

온통 가시가 촘촘히 박힌 엄나무 네 그루가 서 있다. 혹시라도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 해가 될까 싶어

“저놈의 가시나무, 베어 버리고 말겠어.”

볼 때마다 나는 가시 많은 나무를 저주했다.

얼마 전에서야 지인을 통해 엄나무가 개두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봄나물 중 으뜸이라는 말을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다.


비온뒤, 일찍 퇴근한 나는 목장갑을 끼고 엄나무순을 따러 밭으로 갔다.

“아뿔사!” 손이 닿는 곳에는 순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손이 닿지 않는 위쪽에는 아직 남아 있었다.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봄의 명품 엄나무순을 몰라보다니,

“세상을 헛살았군!”

엄나무는 자연에서 스스로 자란 것이다. 다만 나의 밭둑에 서 있을 뿐.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편에게 부탁해 사다리를 챙겨 함께 밭으로 갔다.

사다리를 나무에 걸쳐놓고 높은 곳에 남아 있는 순들을 채취했다.

서너 끼는 족히 먹고도 남을 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끓는 물에 40초 정도 데친 다음, 쌈장, 된장에 참기름과

깨소금을 뿌려 조물조물 무쳐 밥상에 올리고 가족들과 맛 평가를 했다.

개두릅은 참두릅에 비해 향이 더 강하고 식감은 쌉싸름하며

약간 더 질겼다. 참두릅은 부드럽고 연하며 순하고 은은한 향이 난다.

딸은 개두릅에, 남편과 나는 참두릅에 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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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봄나물도 과하면 탈이 난다.

두릅, 고사리, 원추리 등은 자연독성인 알칼로이드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많이 먹으면 배탈이나 두통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식이섬유가 풍부해 적당히 먹으면 장에 좋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이 섭취하면 복부 팽만, 가스,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봄, 두릅과 엄나무순까지 지나치게 많이 섭취해

설사를 일으켰는데, 역시나 원인은 봄나물이었다.

몸에 좋은 것도 적당히 즐길 때 제맛이고 제 역할을 한다.

요즘은 비닐하우스 재배로 계절과 상관없이 나오다 보니,

예전에는 귀했던 봄나물도 지금은 수시로 밥상에 오른다.


사월의 봄이 끝나갈 무렵, 쑥을 뜯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동네는 또다시 분주해졌다.

단군신화에서는 곰이 쑥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듯,

쑥은 오랫동안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생명력이 강한 쑥은 폐허가 된 땅에서도 잘 자라 '쑥대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도 한다. 쑥은 활용도가 높다. 된장국으로 끓여 먹거나,

말려서 뜸을 뜨기도 하고, 약용으로도 쓰인다.

나는 봄마다 우리 집 뒤뜰이나 앞 공터에서 자란 쑥을 뜯어

깨끗하게 씻은 다음, 냄비에 물을 붓고 데쳐서

동네 방앗간에서 쑥설기를 만들어 이웃에게 돌린다.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쑥으로 만든 떡은,

그동안 소원했던 이웃과의 정을 나누기에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 없어 좋다.

봄나물, 귀하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고, 흔하다고 해서 가볍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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