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서울대 입시 다 해놓고 제주대를 갔어?(제정신이야?)
홍콩의 아시아 최대 규모 아트페어 아트바젤 홍콩에서 올해의 신진 작가를 선정했다. 영광스럽게도 그 작가는 한국 사람, 이름은 신민이었고, 85년생이었다.
‘신진’ 작가. 얼핏 들으면 연예계에서의 신인처럼 20대의 나이 어린 사람들일 것 같지만 선정된 분들은 대부분 80년대 초반 생으로, 40세를 넘어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과연 예술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일까?
나는 이제 겨우 20대 초의 나이지만 그림을 그린 경력은 9년을 넘어 10년을 향한다. 외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예술계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다. 나 또한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우리끼리는 고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고 늦게 시작해서 소위 우리가 말하는 ‘높은’ 대학은 힘들다고 말한다. 아니, 나처럼 초등학생 때부터 그림을 그려도 목표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재수, 삼수하는 학생들이 셀 수도 없이 많다. 나 또한 삼수까지 입시를 해 중학교 입시 한번, 고등학교 입시 한번, 대학 입시 세 번으로 총 다섯 번의 입시를 했다.
‘높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였다.
내게는 똑같이 예술을 하는 오빠가 있었다. 나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예고에 나오고, 나는 가지 않았고, 가지 못했지만 멋지게 현역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대학 미대에 진학한 오빠가. 그리고 그 오빠의 동문인 아는 언니오빠들이 참 많다. 똑같이 예술에 종사하고, 10년은 가뿐히 넘게 예술을 공부했으며, 우리나라의 ‘높은’ 미대를 졸업하고서도 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도 가고, ‘예술가’가 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공부하고 작업하는 언니오빠들이.
이들은 ‘예술가’ 인가?
누군가는 방구석에서 본인만 알게 작업하는 사람도 예술가라 한다. 또 누군가는 예술가는 본질적으로 가난하고 본인만 아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근데 그러면 내가, 우리가, 이렇게 모두에게 인정받는 대학에 진학해서 공부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외국의 인정받는 대학에 진학하려 다시 애를 쓰고, 가서 다시 기를 쓰며 공부하는 것일까? 과연 나 혼자 만족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입시를 했던 것일까?
물론 입시의 그 연습들이 전부 헛된 것들은 아닐 것이다.
비록 합격을 위해서 시간 안에 그림을 제출해야 하니 너무 천천히 그리면 혼나고,
너무 나의 개성을 담아 ‘잘’ 그린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담아도 못 알아볼 여지가 있으니 혼나고,
학교마다 선호하는 그림체에 맞춘 그림의 순서가 있는데 그것을 못 따라가도 혼나고,
시간 안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매우 촉박하니 그 사이에 화장실을 갔다 와도 혼나고,
그냥 ‘못’ 그려도 혼나고,
학원에 성실히 나왔지만 그 학교의 그림 요구 조건을 못 맞춰 떨어지고,
학원은 그냥 놀러 왔지만 그림 요구 조건에 우연히 딱 맞아 합격하고,
학원에서 원하는 것들을 전부 완수했는데 그 학원이 학교의 요구 분석을 잘못해서 떨어지고,
그림은 어디다 내놔도 제일 ‘잘’ 그리는데 수능 성적이 또는 내신 성적이 ‘부족’해서 떨어지고,
혹은 학원에서 성적 때문에 떨어질 테니까 지원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나보다 부족한 것이 빤히 보이는 친구가 그 학교에 지원해 합격하는 것을 보게 되고,
어떨 때는 학원 말을 거역하고 지원했다가 붙는 친구를 보는 일도 있지만 말이다.
전부 내가 총 다섯 번의 입시를 하면서 겪은 일이다. 지나고 나서 보면 약간 누군가의 군대 이야기처럼 뭔가 내게 도움이 되었을까 싶은 일도 있고, 어른이 되는 과정 같기도 하고 그렇다. 뭐, 입시를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더하면 더했지 덜한 경험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언니오빠들은 지금, 그 입시를 전부 겪고 목표한 학교에서 공부를 충분히 한 후 졸업하고 나서도, ‘예술가’가 되지 못했다.
아니, ‘예술’이란 것을 찾기 위해서 다시 처음부터 공부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현역 때 전공하던 디자인을 때려치우고 재수 때부터 순수 회화의 길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공을 바꿀 때만 해도 내가 열심히 한두 해 입시를 하고 ‘높은’ 미대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다. 가지 못할 거라, 아니 가지 ‘않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다시 시작한 순수 회화는 쉽지 않았다. 당연히, 디자인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다른 경쟁자들은 내가 디자인을 할 때도 순수 회화를 했으니 실력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그래도 좋았던 점은, 디자인 입시는 공부가 7-8할 정도이고 나머지가 실기여서 실기의 점수 반영 비중은 그대로여도 중요도는 떨어져서 수능 전까지 실기 공부를 거의 하지 않고 수능 이후 흔히 말하는 정시 특강 기간에도 프린트하듯이 그림을 외우는 실기밖에 하지 않아 재미가 없었는데, 순수 회화는 포트폴리오라는 평소 내 작품 15점을 제출해야 했기에 마치 내가 예술가가 된 양 작업을 연구하고 천천히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는 입시에 유리한 그림만을 그리라 배우고 공부했는데, 다시 배우는 순수 회화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예술가가 되어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원래 준비하던 ‘최고’의 대학에서 저 멀리 제주도의 대학으로 지망을 바꾼 이유가 나온다.
내 작업을 공부하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많이 보는 것’이다. 많이 보면 볼수록 내 안목도 높아지고, 그 안목을 내 작업에 적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회화 작업뿐만이 아니라 모든 창작물을 많이 보면 볼수록 좋다. 나도 그 바쁜 입시라 하는데 중간중간 전시회도 정말 많이 가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중 제일 보기 쉬운 인스타그램으로 작업을 올리는 선배들, 작가들, 같은 고등학교 동기지만 먼저 대학을 간 친구들 작업을 제일 많이 봤던 것 같다. 내가 목표하는 대학의 학생들도 볼 수 있으면 다 찾아서 봤다.
그리고 내가 이 입시에 성공해서 그 대학에서 공부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나는 말로 뱉을수록, 상상할수록 그 일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 의도적으로 더 많이 생각했다.
가서 어떤 작업을 하게 될까, 어떤 일상을 가지게 될까.
그렇게 상상을 하던 내게,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공부, 지금 하고 있었다. 작업이란 게 어느 수준 이상부터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 공부해야 해서, 대학에 간다 해도 내 질문에 대답해 줄 교수가 없다는 것도, 나 또한 그렇게 답을 찾고 싶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고 싶은 작업을 찾고 그에 관하여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 지금 하고 있었다. 대학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 밖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이 많고, 나는 이미 혼자 외부의 갤러리에서 전시했던 경험, 외부 공모전에 참가해서 상을 타거나 혹은 떨어진 경험으로 그 사람들과 이어지는 법을 알고 있었다. 또 주변에 전부 대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기에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제일 쉬웠다.
인스타나 친구들의 소식 속 본인 작업도 열심히 하며 천천히 공부를 해 나가고, 동아리로 취미도 본업만큼이나 잘해 나가는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사람들은 보기에 전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대학을 보낸 사람의 현재를 알았다.
꼭 같진 않겠지만, 오빠와의 나이 터울 4살을 생각하면 그 사람들의 졸업 후를 볼 수 있었다. 언니오빠들의 현재를 보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행복한 학교 생활 좋은데, 그렇게 행복만 하게 순식간에 학교를 졸업하게 될까 두려웠다.
당연히 학교에서 하기 나름이지만, 나는 나를 안다. 대학에서 그동안 못 본 친구들과, 그동안 못 한 취미들과, 함께 흘러 흘러 대학에 다닐 것을 알았다.
나는 내가 지금 가진 이 작업에 대한 생각을, ‘예술가’가 되고자 하는 이 강한 마음이 언제까지나 식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다시 처음부터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작업은 무엇이지? 내가 그 작업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지? 내가 지금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이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내가 나름 반평생 몸담았던 예술계를, 서울을, 주변 지인들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생각이 확고해졌을 때부터 경기권에서도 먼, 이왕이면 국립대를, 글을 많이 공부하고 세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과에, 아마도 내가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있지 않은 곳을 찾았다.
그게 제주대 인문대였다.
그렇게 나는 1월 중순 실기 시험에 1월 1일까지 원서접수인, 내가 적어도 한 해를 꼬박 바친 입시를 버리고 12월 마지막 날 제주대에 원서를 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