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체류 사이
까만 긴 생머리를 한 필리핀 여자가 방문했다.
목소리가 맑고 차분한 어조였다.
나의 시선이 그녀의 혀끝에 머물며
잠시 집중력을 잃었다.
그곳에는 작은 수호신 같은 방울이 박혀 있었다.
분리에 위태로움을 느꼈지만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5분 후 키 큰 남자가 들어와 그녀 옆에 앉았다.
잘생긴 한국 남자였다.
추정과 편견이 다시 발작한다.
피어싱을 한 배꼽티 필리핀 아가씨와
키가 크고 준수한 젊은 한국 남자
부조화에 왠지 모를 슬픔이 올라왔다.
남녀관계에 의문을 품고
사실관계에 들어가면서
의뢰인과 비자 관계 파악에
나의 감정은 중심을 잡아간다.
그녀는 필리핀에서 F-6 예술흥행 취업 비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로 초청되었다.
한국에 입국하면 바로 체류자격 등록증을
소지해야 한다.
하지만 길 잃은 뜨내기가 되어 떠돌다
연인의 도움으로 그녀의 증표를 만들기 위해 찾아왔다.
그들은 필리핀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다.
그녀는 몇 년 전 싱가포르에서의 행복했던
싱어 활동을 추억하며
싱어 활동과 사랑을 설렘으로 미래를 기약했고
남자는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그녀에게 낯선 대한민국은
이 땅을 밟기 전까지의 미래는 아름다웠지만
현실은 복잡했고, 모든 것이 뿌옇고 흐려졌다.
증거 자료용으로 받은 공항 입국 사진 속의
그녀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해맑고 아름다운 미소가
내 마음을 자꾸 웅클거리게 했다.
그녀의 노래와 삶, 그리고 사진 속 미소를
다시 찾게 해주고 싶었다.
그녀는 엔터테인먼트의 소개로 먼 섬에 있는
공연장에 취업했고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녀를 어둠으로 몰고 갔다.
쉴 틈 없는 장시간 노동, 남성과의 술자리 강요,
부당하게 계산된 월급 체계
그녀 앞에는 계약서 대신 점수제가 적힌 장부가
놓여있었다.
구멍 난 계약서는 약속을 허공으로 흩어지게 하고
그녀에게서 꿈과 웃음을 사라지게 했다.
바다와 낭만은 사라지고 단절된 커다란 섬이
그녀를 외톨이로 가두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짐을 쌌다.
노래는 버릴 수 있었지만
그녀가 마음에 품은 남자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녀의 소리 없는 울음은
조금씩 목소리를 찾기 시작했다.
혀끝의 은방울이 더 이상 참지 말라고
그녀에게 속삭였던 것 같다.
타국에서 그녀를 지켜주는 은방울은
연인에게 그녀의 숨결을 전해 주었다.
파도보다 거칠어진 호흡과
바다 염도보다 짙은 눈물이
바닷바람을 타고 그에게로 흘러갔다.
노동청에 제출할 진정서를 작성했다.
그것이 그녀를 앞으로 보호해 줄 방패이다.
한때 그녀를 수호했던 은방울은
이제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리라.
"〈연인의 나라 2〉는 연재 4화(월)에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