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남자 이야기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일까? 바로 지식인이다. 이 말은 시대를 꿰뚫는 통찰이다.
‘양원근의 철학아카데미’에서도 이 말은 깊이 논의되었고, 최진석 교수 역시 이 주장을 일관되게 펼쳐왔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은 흔히 떠올리는 '지식만 가득한 사람'이 아니다. 이론만 쌓아 올린 인간이 아니다. 진짜 지식인이란, 끊임없이 배우고, 사유하며, 마침내 깨달음의 세계 너머로 건너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건너감을 가능케 하는 단 하나의 조건이 지성을 갖춘 지식인이다.
최근 나는 세 사람을 만났다. 한 사람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고, 한 사람은 책 속에서 살아 있으며, 마지막 한 사람은 몇 백 년 전 이 땅에 살다 간 분이다. 세 사람 모두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닮아 있었다.
“지식 없이 인간답게 살 수는 없다.”
첫 번째 사람은 ‘양원근의 철학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양원근 작가님이다. 그는 강의에서 이렇게 물었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수강생 한 명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저 자신 아닐까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은 결국 지식인이 지배합니다.”
그의 말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만약 내가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지식을 채우는 데 내 모든 생을 바칠 것입니다.”
그의 말엔 삶 전체를 거는 듯한 절실함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식인’은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가분수 인간이 아니다. 배우고 깨달아서 삶으로 실현하는 사람이다.
두 번째 사람은 최진석 교수님이다.
나는 그분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매일 만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인간으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그는 말뿐인 삶, 정치적 구호에 휩쓸리며 사는 삶을 경계한다.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한 도구이며, 우리는 그 도구를 들고 스스로를 갈고닦으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맹렬한 지식욕이 필요합니다.”
그의 말은 지식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 존재의 무게를 견디기 위한 치열한 정신적 수행이다. 그는 지혜의 세계 너머로 나아가는 ‘지식인’이, 비로소 깨달음의 강을 건너는 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세 번째 사람은 구도장원 율곡 이이 선생이다. 그는 500여 년 전의 인물이지만, 그의 사상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말했다.
“人生斯世 非人間 無以爲人” 인생사세 비인간 무이 위인 이라.
–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학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답게 살 수 없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말씀을 묵상해 왔다. 윤회에 입각한 죽음과 삶. 현생의 덕이 축생이 되기도 하고 인간이 되기도 한다. 여러 생을 반복해서 태어날 때, 사람으로 태어나면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학문'이다.
여기서 인간은 아주 어렵게 수만 년의 덕을 쌓은 결과물로서의 인간이다. 윤회의 거대한 바퀴에서 간신히 얻은 기회로써의 인간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학문에 정진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학문 없는 인간은 껍데기일 뿐이다.
이 그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른 언어로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식을 탐닉하라. 인간으로 완성되어라.”
누구는 다시 태어난다면 지식을 채우는 데 모든 생을 바치겠다고 말하고, 누구는 깨달음의 세계로 건너가야 한다고 말하며, 또 누구는 학문을 하지 않으면 인간일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나는 이들의 말을 곱씹는다.
나는 지금 강렬한 지식욕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건너가고 싶어 하는가?
나는 지식으로 삶을 채우고, 삶으로 지식을 증명하고 있는가?
나는 인간으로 완성되고 있는가?
모든 사람이 공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비로소 움직일 때, 나는 이미 공이 도착할 그 자리에 서서 공을 기다리고자 한다. 남보다 먼저 사유하고, 준비하는 것. 그것이 지식인이 걸어야 할 길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