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 하나로 버텨낸 이야기
"안녕하세요. 자신이 없어 도움을 하도 받고자 단톡방 만들어요."
오타투성이 첫 메시지로 시작된 우리 통장모임 중 인구조사 알바방.
지금 생각하면 그 어색한 시작이 참 웃긴다.
"태블릿에 빨리 적응해야겠어요" "종이 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다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요즘 세상에 태블릿 하나 못 다루겠어?
근데 웬걸. 첫날부터 어깨가 천근만근. 이게 종이보다 무겁다고? 누가 좀 들어줬으면...
"태블릿이 무거워서 어깨가 아프네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같은 고통을 겪는 전우를 발견하는 순간의 그 위로감이란.
"근데 하루에 20 가구는 할 수 있을까요." "듣기론 총 200가구 정도 배정 된다는데~"
"난 180가구 조사받았어"
계산기 두드려보니 하루 20가구씩 10일이면... 어? 안 끝나는데?
단톡방에 숫자가 올라올 때마다 다들 한숨부터 나왔다.
"우린 인터넷 참여가 없네 발로 뛰어야겠어"
인터넷으로 미리 응답하는 착한 집은 우리 동네엔 없나 보다.
전부 발품 팔아야 하는 현실.
"외국인 1명 했네요 번역기 써가며" "아일랜드 사람이요 한국말 하나도 못해요"
이 메시지 뜨자마자 단톡방이 난리 났다. 어떻게 했어요? 영어로요? 뭐라고 물어봤어요?
질문 세례. 번역기 돌려가며 조사하는 그 상황 상상하니 다들 웃으면서도 대단하다고 엄지 척.
"빈방 빈집은 누구에게 물어봐야? 공인중개사?" "부동산한테 물어보라고 답변받았습니다"
혼자였으면 한참 헤맸을 텐데, 누군가 먼저 물어보고 답 찾아서 공유해 주니까 나머지는 편하다.
이게 바로 집단지성?
"난 관리자가 부진하다고 분발하라고... 협택 우선 해결하려니 진도가 안 나가네.... 협택 24%"
누가 이런 얘기 올리면 바로 반응 온다.
"난 오피스텔 돌아 50% 채워야지~~" "다들 진행율 올리까요? ㅎ"
서로 진행률 공유하면서 '나만 느린 게 아니구나' 안심되고, 누가 50% 찍었다 하면 '오, 대단!' 하면서 힘도 난다.
"오, 협택 대면조사 하나했어요"
이런 작은 성공담 하나에도 다들 축하 댓글. 혼자 일했으면 그냥 묵묵히 지나갔을 일인데, 누군가와 나누니 성취감이 배가 된다.
"쉬운 일이 없네요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줘요~~"
"네 다들 처음이라 서로 도우며 일해 보아요~"
처음 만들어진 이 단톡방, 솔직히 별 기대 안 했다.
그냥 형식적으로 만드나 보다 했는데, 지금은 이게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태블릿은 여전히 무겁고, 빈집은 여전히 찾기 어렵고, 200 가구는 여전히 많고, 협조 안 되는 집은 여전히 많다.
하지만 단톡방 알림 뜰 때마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우리 같이 해내고 있구나' 싶어서 좀 더 버틸 수 있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이 한 줄이면 내일도 태블릿 들고나갈 힘이 생긴다.
아르바이트 끝나고 단톡방 보니까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ㅎㅎ"
"내일 날씨 좋대요, 파이팅!"
혼자였으면 벌써 때려치웠을 일.
같이라서 견딜 만하다.
이게 바로 알바계의 찐 동료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