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 오면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하저리, 그곳에는 외가의 폐가가 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무도 돌보지 않아 허물어져가는 오래된 집.
그 텃밭에 시아버님이 고구마를 심기 시작하신 게 벌써 20년 전이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시던 시부모님은 아들들이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함께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런데 시아버님은 취미로 시작한 고구마 농사가 점점 커지시더니,
이제는 아예 그 폐가에 텐트를 치고 사신다.
강아지도 키우시고 친구분들도 만나시며, 농부로 사는 삶에 진짜 행복을 느끼신다.
당신 땅이 아닌 곳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아쉬움이 있으실 텐데도, 묵묵히 배추, 고추, 김장거리를 키우시고
밭에서 직접 김장까지 하신다.
형님댁 언니들도 오셔서 함께 김장을 하신다.
하지만 나는 하저리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서 그곳에 가는 게 내키지 않는다.
게다가 시댁 김치가 내 입맛에는 잘 맞지 않아서, 굳이 형님네 언니들과 함께하는 김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은 다르다.
시골에서 농부의 아들로 자라서 그런지, 하저리 땅을 사고 싶어 한다.
큰삼촌 장남의 소유로 남겨진 그 땅, 시아버님이 농사를 지으시는 그곳.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얽혀 있다.
모기에 물리고 화장실도 제대로 없는 폐가가 누군가에게는 궁전처럼 소중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허름한 폐가로만 느껴진다.
오늘도 오전에는 내 볼일을 보고 있었다.
점심때쯤 남편이 데리러 와서 김장하는 곳으로 갔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형님 좋아하시는 아메리카노 사갈까요?"
시골이라 조금 돌아서 커피숍에 들러 커피 세 잔을 샀다.
밭에 도착하니 나보다 어린 형님이 언니들과 재미있게 김장을 담그고 계셨다.
처음에는 한참 어린 분을 '형님'이라 부르기가 어색했다.
하지만 형님은 일도 잘하시고 사람됨도 좋으셔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바로 간 터라, 김장 후에 먹는 수육도 먹지 않았다.
김치 뚜껑 닫는 일만 했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간이 흘렀다.
철없는 둘째 며느리. 김장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댁 김치 맛도 잘 모르는 며느리.
하저리 밭에 가는 것도 내키지 않아 하는 며느리.
하지만 오늘만큼은 알았다.
부모님이 건강하시기에 이렇게 밭에서 김장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텐트를 치고 폐가에서 사시는 시아버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그 낡은 집이,
오늘따라 조금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그곳은 시아버님의 작은 왕국이고,
우리는 그저 그 왕국의 행복을 함께 나누러 온 손님들 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