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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환유의 미래 언어학에 대한 고찰

너를 먹고 싶다는 말은 언제부터 칭찬이 되었는가

by 박참치

#T-R-Δ41031-N


성적 환유의 미래 언어학에 대한 고찰

—포만과 발기를 한 문장에 우겨넣는 기술에 대하여


“너를 먹고 싶다는 말은 언제부터 칭찬이 되었는가?”


작성일: 20XX-10-31

저자: 박참치

적용 학제: 성욕언어학 × 식욕기호학 × 심리역학적 메타언어 연구



초록(Abstract)


인간은 식욕과 성욕을 분리된 본능으로 인식하지만, 일상 언어에는 이 두 욕망의 교차 흔적이 깊이 박혀 있다. 본 논문은 “먹고 싶다”, “맛있다”, “탐스럽다” 등 본래 식욕에서 기원한 문장들이 성적 환유로 사용되는 사회적 흐름을 중심으로, 성욕과 식욕의 교차점에 존재하는 언어적 이중구조를 분석한다. 인간의 욕망은 왜 말의 가장자리를 선호하며, 환유적 발화는 어떤 쾌락의 회로를 구성하는가. 본 논문은 기호학, 심리역학, 인공지능 언어모델의 언어습득 과정까지 횡단하며, 미래의 욕망언어가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를 예측한다.



Ⅰ. 서론 — 욕망은 말보다 먼저 침을 흘린다


“너 정말 맛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당신은 당황했는가, 아니면 야릇했는가? 우리는 지금 ‘식욕의 언어’를 통해 성적 욕망이 우회적으로 발화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실하다”, “야들야들하다”, “잘 익었다”, “쫀득하다” 같은 말들은 분명 음식에 쓰이던 형용사였으나, 어느새 ‘몸’을 수식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본 논문은 그 교차점에 주목한다. 특히 ‘먹다’라는 행위가 왜, 언제부터, 어떻게 섹슈얼한 언어가 되었는지를 추적하고자 한다.


본 논문의 문제의식은 명료하다. 성적 표현이 직접화되기 어려운 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먹는다’는 말을 성욕의 메타포로 삼게 되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누구의 혀 아래에서, 욕망을 씹고 삼키기 시작했는가.



Ⅱ. 성욕의 환유화 과정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환유(metonymy)는 상징의 우회다. ‘먹고 싶다’는 말은 실제 식사에 대한 욕망일 수도 있으나, 맥락에 따라선 ‘성적 소유욕’ 혹은 ‘감각적 탐닉’의 의미를 지닌다. 이 말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강력한 은유적 공모 관계를 전제한다.


한 예로, 역사적으로 ‘여성의 육체’는 사회적 언어 구조 속에서 과일과의 환유적 연결 고리를 강하게 형성해왔다. “탐스럽다”는 표현은 과일에 쓰인다. 복숭아, 체리, 수박. 그러나, ‘즙이 많다’, ‘물컹하다’, ‘터질 것 같다’는 감각적 형용사들이 육체에 붙는 순간, 식욕과 성욕의 경계는 무너진다. 이와 같은 표현의 작동방식은 인간이 금기를 우회하기 위한 언어적 도착의 증거다. 성욕은 금지될수록, 더욱 은밀하고 유희적인 언어로 분화되며, ‘식(食)’이라는 개념은 그 은폐의 핵심 통로가 된다.


(※ 본 예시는 성욕의 언어적 환유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일례일 뿐, 특정 성별을 환유의 대상으로 지시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Ⅲ. 심리역학적 해석 — 욕망의 이중투사


식욕은 생존을 위한 본능이며, 성욕은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 둘을 혼동한다. 왜냐하면 ‘입’이라는 동일 기관을 통해 두 욕망 모두 표현되기 때문이다. 입술은 말하고, 삼키며, 키스하고, 베어문다. 프로이트의 구강기(libidinal oral stage)는 이 접점을 일찍이 지적했지만, 오늘날 환유의 언어는 이 이론을 더욱 세밀하게 증명한다.


욕망은 직접 말하지 못할 때 가장 강렬하다. 그 순간 우리는 ‘맛있겠다’고 말하며, 혀끝의 쾌락을 빌려 성적 감탄을 흘린다. 이는 단순한 언어유희가 아니다. 그것은 죄책감을 최소화한 쾌락의 공식이며, 성적 욕망의 사회적 필터링 장치다.



Ⅳ. 실험 언어 모델과 미래 언어의 시사점


AI 언어모델이 트위터, 틱톡, 레딧, 나무위키, 각종 커뮤니티에서 학습하는 언어데이터에는 ‘맛있다’의 성적 환유가 수없이 포함되어 있다. 딥러닝 언어모델은 ‘너 정말 맛있어’가 반드시 음식에 대한 말이 아님을 알고 있다. 이는 결국 언어모델도 인간처럼 금기를 환유로 학습한다는 뜻이다. 미래의 언어는 점점 더 이중적이고, 더 유희적이며, 더 대담해질 것이다. ‘먹는다’는 말은 섹스를 지칭하는 가장 널리 퍼진 은유가 되었고, 그 방향성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가령 2050년의 욕망 언어 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신조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식성맞다’: 성적 취향이 잘 맞음

‘저열식사’: 감정 없는 섹스를 비하하는 신조어

‘침샘우애’: 서로를 보고 침이 고일 정도의 침밀감 또는 성적 긴장이 존재하는 사이

‘자연산주의자’: 시술, 보형물 없는 자연 신체에 끌리는 성향

‘1인구이’: 혼자 끓고 혼자 식는 감정적 또는 성적 자기소모 상태

‘야식감각’: 낮에는 평범하지만, 늦은 밤에만 활성화되는 성욕적 센서리

‘소화불량관계’: 욕망은 넘쳤지만 정서적 동기화가 안 되어 체한 연애



Ⅴ. 결론 —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을 삼키듯 말한다


욕망은 언어의 뒷면에서 웃고 있다. ‘너를 먹고 싶다’는 말은 원시적이고도 진화된 표현이다. 이는 쾌락과 금기, 허용과 금지, 직접과 간접의 경계를 넘어선 언어의 반란이며, 사회가 욕망을 어떻게 길들이는지 보여주는 감각적 사례다.


그리고 결국, 박참치의 이 한 마디로 귀결된다:

“말이 먼저 입을 벌리면, 욕망은 혀로 미끄러진다.”



후주


“입에 넣는 것과 집어삼키고 싶은 것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욕망은 새로운 문장을 발명한다.
그리고 욕망은 은유 뒤에 숨는다.
때로, 그 은유는 너무 맛있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문헌


Kim, H. (20XX). When Hunger Meets Lust: A Linguistic Fusion. Seoul: Carnal Semiotics Press.

Nakamura, Y. (20XX). You Taste Like a Metaphor. Tokyo: Edible Metonymy Institute.

감정열역학비상대책회의 (20XX). 음식을 통해 본 사회적 금기 표현의 변천사. 보고서 No.22-088, 국립비언어표현연구소.

박참치 (20XX). 말하지 말고 삼켜줘. Seoul: Language of Mouth.

프랑스자수 (20XX). 식욕을 핑계로 성욕을 말하는 법. Journal of Deviant Semantics, 9(4), 123–144.



후속 연구 필요


『“복숭아 같은 엉덩이”는 흐뭇하지만 “엉덩이 같은 복숭아”는 왜 괴기인가?』

『야식과 야한 식욕의 시간대 상관성』





“맛있다”는 말에는 혀보다 먼저 젖은 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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