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당신은 넷플릭스를, 나는 쇼팽을 들으러 간다

: 취미의 교집합을 강요하지 않을 때 비로소 열리는, 평화로운 평행우주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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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취미가 같아야 행복하다"는 오만한 착각


결혼 전, 많은 연인들이 꿈꾸는 로망 중 하나는 '취미를 공유하는 부부'가 되는 것이다. 주말 아침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리거나, 같은 취향의 인디 영화를 보며 감상을 나누고, 취침 전 나란히 누워 같은 책을 읽는 삶. 미디어에서 끊임없이 주입하는 이 '이상적인 부부상'은 우리에게 아주 무서운 강박을 하나 심어준다. 바로 "부부는 무조건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이다.


하지만 현실의 뚜껑을 열어보면 어떨까. 우리 집 주말 풍경은 이상주의자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쇼윈도 부부' 혹은 '소 닭 보듯 하는 부부'에 가깝다. 거실 소파에 누운 남편의 시선은 넷플릭스의 화려한 액션 스릴러물이나 게임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다. 그 시간, 나는 방에서 조용히 클래식 음악을 튼다. 남편의 스피커에서는 총소리와 폭발음이 빵빵 터지는데, 나의 에어팟 너머로는 브람스와 쇼팽의 우아한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가끔 나는 예쁘게 차려입고 홀로 집을 나선다.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장에 가기 위해서다. 남편은 묻지 않고, 나 역시 같이 가자고 조르지 않는다. 누군가는 묻는다.


"어머, 부부가 주말에 같이 안 다니고 혼자 다녀요? 안 외로워요?"


오늘은 그 오지랖 넓은 질문에 대한 나의 우아하고도 단호한 대답이자, 취미가 전혀 다른 두 남녀가 한 지붕 아래서 서로의 영혼을 파괴하지 않고 공존하는 '건강한 개인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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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공유'가 아니라 '고문'이다


신혼 초, 나 역시 '함께하는 로망'에 빠져 남편의 손을 이끌고 내가 좋아하는 전시회나 공연장에 간 적이 있었다. 나는 예술이 주는 벅찬 감동을 남편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의 표정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온 소 같았다. 내 귀에는 천상의 목소리인 클래식 선율이, 남편에게는 지독하게 지루하고 비싼 수면제일 뿐이었다. 하품을 억지로 참으며 시계를 힐끗거리는 남편을 볼 때마다 내 감동마저 와장창 깨져버렸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푹 빠져 있는 게임이나 영화에 나를 동참시키려 할 때, 나는 10분도 지나지 않아 흥미를 잃고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렸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해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었다.

나에게 좋은 것이 상대방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배우자를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공연장에 억지로 2시간 동안 앉혀놓는 것은 낭만이 아니라 고문이다. 진정한 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걸 너도 같이 해!"라고 멱살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그걸 좋아해? 그럼 당신은 그거 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거 할게"라며 상대의 기호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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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홀로 걷는 시간, 내 영혼의 산소 호흡기


나는 혼자 피아노 리사이틀에 가는 시간을 지독하게 사랑한다. 결혼을 하고 누군가의 아내이자 수빈이, 다빈이의 엄마로 살아가다 보면, '나'라는 개인은 철저하게 지워진다. 내 시간, 내 감정, 내 고요함은 늘 타인(가족)의 필요에 의해 침해당하기 일쑤다.


하지만 공연장의 푹신한 벨벳 의자에 홀로 앉아, 조명이 꺼지고 피아니스트의 손끝에서 첫음이 건반을 때리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비로소 모든 역할의 굴레를 벗고 온전한 '유다람'이라는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온다. 오로지 선율에만 집중하며 내면의 감정 밑바닥까지 훅 침전하는 그 2시간은, 일상에서 고갈된 나의 예민하고 섬세한 영혼을 충전시키는 유일한 '산소 호흡기'와 같다.


만약 옆자리에 클래식을 지루해하는 남편이 앉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남편이 너무 재미없어하지는 않을까? 졸고 있는 건 아닐까?' 계속 눈치를 보느라, 나는 온전히 음악에 빠져들지 못했을 것이다. 취미의 독립은 나에게 '완벽한 고독의 사치'를 허락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직 내 심장의 파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그 자유로움. 홀로 걷는 그 시간 덕분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에게 웃어줄 수 있는 에너지를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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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집 안의 평화로운 평행우주


남편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밖에서 치열하게 돈을 벌고 가장의 무게를 견뎌낸 그는,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보거나 게임의 세계로 접속할 때 비로소 무장해제된다. 나에게 브람스의 소나타가 위로라면, 그에게는 게임 속 몬스터를 처치할 때 터지는 도파민이 위로인 셈이다.


우리 집 거실에는 서로 교차하지 않는 평행우주가 존재한다. 하지만 이 평행선은 차갑고 단절된 선이 아니다. 서로의 궤도를 침범하지 않기에 어떠한 마찰열도 발생시키지 않는, 가장 안전하고 평화로운 선이다.

부부가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는 순간, 놀라운 평화가 찾아온다. 남편이 게임을 켤 때 나는 잔소리하지 않는다. "또 게임해?"라는 비난 대신, 내 방으로 들어가 내가 읽고 싶었던 미술사 책을 펼치거나 이어폰을 꽂는다. 내가 홀로 리사이틀에 갈 때 남편 역시 "가족 놔두고 혼자 어딜 가?"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잘 다녀와, 밥 먹고 천천히 와"라며 흔쾌히 나의 외출을 배웅한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취향이 다른 것은 부부의 위기가 아니다. 그저 짬뽕을 좋아하는 사람과 짜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그릇을 비우며 행복해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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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존중의 진짜 의미 : 무관심이 아니라 '안전한 방목'


어떤 이들은 "그렇게 각자 놀 거면 뭐 하러 결혼했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들은 취미를 함께하지 않으면 부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고 멀어질 것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부부의 세계는 그 반대였다.

각자의 세계에서 충분히 에너지를 채우고 돌아온 두 사람은, 오히려 서로에게 더 관대하고 다정해진다. 공연을 보고 돌아온 나는 벅찬 감동으로 한껏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남편에게 묻는다.


"여보, 넷플릭스 다 봤어? 재미있었어?"


남편 역시 꿀 같은 휴식을 즐긴 후 환해진 얼굴로 묻는다.


"공연은 좋았어? 피아노 잘 치더라?"


우리는 서로의 취미 내용(클래식이 어떻고, 게임 스토리가 어떻고)을 깊이 공유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서로가 그 시간을 통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그 감정의 결과물은 완벽하게 공유한다. 존중이란, 상대방의 취미에 억지로 동참해 주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그 취미에 몰두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것. 간섭하지 않고 안전하게 울타리를 쳐주는 '따뜻한 방목'이야말로 진짜 어른의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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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집합이 적어도 합집합은 크고 단단하다


수학 시간에 배운 집합을 떠올려본다. 우리의 벤 다이어그램을 그려보면, 취향과 취미라는 영역에서 남편과 나의 '교집합'은 놀라울 만큼 작다. 음악, 영화, 여가 생활 등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취향이 엇갈린다.

하지만 교집합이 작다고 해서 우리가 그리는 원 전체의 크기가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부부'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서로의 독립된 원을 온전히 지켜주며 거대한 '합집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 내 원의 크기가 커질수록, 남편의 원이 단단해질수록 우리 가족의 전체 면적은 더욱 광활하고 풍성해진다.


오늘 주말, 남편은 넷플릭스 리모컨을 손에 쥐었고, 나는 쇼팽의 녹턴을 재생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전혀 다른 주파수에 주파수를 맞추고 있지만, 이 집안에 흐르는 공기는 세상 그 어느 곳보다 평온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 '서로가 각자의 방식대로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완벽하게 함께하고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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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만의 '방공호'를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남편이 낚시를 너무 좋아해서 주말마다 혼자 가요. 화가 납니다."


"아내가 자꾸 주말에 같이 등산 가자고 조르는데 전 집에서 쉬고 싶어요."


취미 문제로 갈등을 겪는 수많은 부부에게, 저는 과감하게 "따로 노십시오"라고 조언합니다.

결혼은 서로를 거울처럼 똑같이 복제하는 과정이 아닙니다. 두 개의 다르고 고유한 우주가 만나, 부딪히지 않고 공전하는 궤도를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배우자가 나와 같은 취미를 가져주길 바라는 통제 욕구를 내려놓으세요.

대신, 배우자의 등쌀에 밀려 포기했던 당신만의 진짜 취미를 다시 찾아 나서세요.

혼자 미술관을 가고, 혼자 콘서트를 가고, 혼자 카페에 앉아 책을 읽으세요.


가족의 아내, 남편, 부모이기 이전에 당신은 고유한 취향을 가진 한 명의 독립된 인간입니다.

당신이 당신만의 세계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해질 때,

당신의 배우자와 아이들에게도 그 행복한 에너지가 고스란히 흘러갑니다.

당신이 넷플릭스를 보든 쇼팽을 듣든,

그 각자의 시간은 당신의 가정을 지키는 가장 튼튼한 방공호가 되어줄 것입니다.


쇼팽의 선율 속에서 홀로 완전해지는 아내, 유다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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