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표의 무게

: 역할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두 명의 온전한 우주로 마주 서는 법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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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고 얻은 새로운 직함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직함이 존재한다. 사장, 팀장, 실장... 이런 사회적 직함들은 대개 나의 능력과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무겁고도 영원한 직함은, 구청 창구에서 종이 한 장에 도장을 찍는 순간 너무나도 싱겁게 주어졌다.


바로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표다.


2011년 6월, 6살 연하의 풋풋했던 남자와 웨딩마치를 올리던 날. 하객들의 박수 속에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서로의 아내와 남편이 되었다. 연애 시절 그토록 장난스럽고 가벼웠던 우리의 호칭은, 결혼이라는 제도의 문을 통과하자마자 묘한 무게감을 지니기 시작했다.


처음 누군가에게 "제 남편입니다"라고 소개할 때 혀끝에 맴돌던 그 간질거리면서도 묵직한 이물감을 기억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호칭이 바뀐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내 인생의 조수석에 이 사람을 영원히 태웠으며, 이 사람이 치는 사고와 이 사람이 지는 빚, 그리고 이 사람의 생로병사를 내가 온전히 책임지겠다는 무서운 '연대보증'의 선언이었다.


오늘은 우리가 평생을 입고 살아가야 할 이 흔하고도 거룩한 두 단어, '남편'과 '아내'라는 호칭이 가진 심리학적 무게와 그 속에 감춰진 우리의 진짜 이름에 대해 깊이 사유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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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편'이라서 남편인가, '남의 편'이라서 남편인가?


대한민국 기혼 여성들 사이에서 뼈 있는 농담처럼 도는 말이 있다.


"왜 남편(男便)인 줄 알아? 평생 내 편은 안 들어주고 '남의 편'만 들어서 남편이야."


시댁 문제로 서운하게 할 때, 육아에 지쳐 쓰러질 것 같은데 눈치 없이 회식하고 늦게 들어올 때, 남편이라는 존재는 정말이지 지구상에서 가장 얄미운 타인처럼 느껴진다. 그럴 때면 저 농담이 진리처럼 가슴에 꽂힌다.


하지만 남편이라는 단어의 진짜 본질은, 우리가 등을 돌리고 싸울 때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함께 칼을 뽑아 들어야 할 때 드러난다.


수빈이와 다빈이를 키우며 피 말리는 응급실을 뛰어다녔던 밤, 대출 이자를 막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던 날들. 내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무력해져 무릎이 꺾일 때, 언제나 내 옆에서 단단한 바위처럼 버텨준 사람은 결국 그 '남의 편'이라 욕하던 나의 남편이었다.


6살이나 어린 나이에 덜컥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버렸던 그는, '남편'이라는 그 무거운 호칭을 견뎌내기 위해 자신의 빛나던 20대의 자유를 기꺼이 반납했다. 내 앞에서는 한없이 무던하고 철없는 소년 같지만,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그는 나와 내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맹수가 된다.


결국 남편이라는 호칭은, '세상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마지막까지 내 옆에 서 있을 유일한 내 편'이라는 가장 처절하고도 로맨틱한 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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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내, '집 안의 해'가 된다는 것의 무거움


그렇다면 '아내'라는 단어는 어떨까. 어원적으로 아내는 '안사람(집 안에 있는 사람)'에서 파생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 어원 때문인지 몰라도, 수천 년간 아내라는 직함에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아내라면 모름지기 내조를 잘해야지."


"집안이 편안하려면 아내가 참아야 해."


나 역시 과거, 내 이름 석 자만으로도 억대 연봉을 만들어내던 잘 나가는 웨딩홀 총괄 실장이었다. 하지만 출산과 함께 그 화려했던 커리어의 왕관을 내려놓고 전업주부, 즉 '아내'이자 '엄마'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내가 느꼈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사회의 최전선에서 호령하던 내가, 매일 아침 남편의 출근길을 배웅하고 아이들의 밥을 차리는 백그라운드의 존재로 밀려났다는 자괴감. '아내'라는 호칭이 마치 내 날개를 꺾어버린 감옥처럼 느껴지던 우울한 밤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는 '아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아내는 갇혀 있는 안사람이 아니라, '집 안의 온도와 날씨를 결정하는 태양(안의 해)'이라는 사실을.


내가 우울하고 화가 나 있으면 온 집안에 먹구름이 끼고 빙하기가 찾아온다. 반대로 내가 콧노래를 부르고 웃으면, 남편과 두 딸의 얼굴에도 봄꽃이 핀다.


아내라는 자리는 남편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수동적인 그림자가 아니었다. 한 가정의 정서적 주춧돌을 세우고, 가족 구성원들의 영혼을 먹여 살리는 가장 강력하고 권위 있는 '태양'의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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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호칭이 삼켜버린 나의 이름, '유다람'을 찾아서


결혼 생활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마법에 걸린다.


"여보", "당신", "수빈 아빠", "다빈 엄마".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이 대명사들은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조금씩 지워나간다.


어느 날 관공서에 가서 서류를 떼다가, 서명란에 덩그러니 적힌 '유다람'이라는 내 이름 석 자를 보고 묘한 기시감을 느낀 적이 있다.


'아, 맞다. 나 유다람이 었지.'


누군가의 아내로, 누군가의 엄마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예민하며 가끔은 혼자만의 고독을 즐기던 원래의 '유다람'이 낯설게 느껴진 것이다. 남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도 한때는 누구누구의 남편이 아니라, 꿈 많고 장난기 넘치던 빛나는 청춘의 이름이 있었을 테니까.


호칭은 훌륭한 껍데기지만, 그 껍데기에 영혼까지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나는 아내니까 이래야 해",


"나는 가장(남편)이니까 참아야 해"라는 강박은 결국 서로를 지치게 만들고 결혼 생활을 숨 막히는 역할극으로 전락시킨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이기 이전에, 각자의 결핍과 욕망을 가진 불완전한 두 명의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의도적으로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유다람, 오늘 진짜 고생 많았어."


"ㅇㅇㅇ(남편 이름), 오늘 당신 모습 참 멋지더라."


나의 이름이 배우자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올 때, 우리는 역할의 굴레에서 잠시 벗어나 2011년 서로의 눈동자에 반해 기꺼이 평생을 약속했던 그 두 명의 남녀로 온전히 마주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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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 흔한 직함은, 오직 한 사람만이 줄 수 있는 'VIP 프리패스'다


길거리에 나가면 수백만 명의 아내와 남편들이 걸어 다닌다. 너무나 흔하고 평범한 이름표다.


하지만 이 호칭이 가지는 진짜 권력은 그것의 '희소성'에 있다.


이 세상 80억 명의 인구 중에서, 당신을 '남편'이라고, '아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내 옆에 있는 단 한 사람뿐이다. 대통령이나 세계 최고의 갑부라 할지라도, 내 배우자에게 나 대신 '남편' 혹은 '아내'로 불릴 수는 없다. 이것은 오직 나만이 가진, 그 어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독점적인 'VIP 프리패스'다.


나의 과거 트라우마와 상처를 보듬어주고, 두 아이의 부모가 되어 함께 밤을 새우고, 내 늙어가는 주름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할 유일한 목격자.


나에게 '아내'라는 영광스러운 직함을 달아주기 위해, 자신의 '남편'이라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진 나의 6살 연하 전우.


우리는 이 호칭을 너무 가볍게, 때로는 너무 원망스럽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숨이 멎는 그 마지막 순간, 내 병상 곁을 지키며 나의 굳어가는 손을 꽉 쥐고 울어줄 사람은 직장 상사도, 절친한 동네 친구도 아니다. 오직 낡고 빛바랜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표를 달고 평생의 풍파를 함께 견뎌낸 내 앞의 이 사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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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아갈수록 깊어지는 이름표를 달고


옷장에 걸린 오래된 코트처럼, '남편'과 '아내'라는 호칭도 세월이 흐르며 점점 우리 몸에 맞게 부드러워진다.


신혼 초에는 그 직함이 주는 책임감이 버거워 서로에게 완벽한 아내, 완벽한 남편이 되라고 강요하며 상처를 주기도 했다.


하지만 수빈이와 다빈이를 키워내며 15년이라는 시간의 지층을 통과한 지금.

우리는 안다. 완벽한 남편과 완벽한 아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저 찌그러진 치약을 조용히 밀어 올려주는 아내와, 아내가 지쳐 있을 때 묵묵히 설거지를 해주는 남편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불완전한 두 사람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주며, 매일매일 조금씩 '진짜 부부'로 낡아갈 뿐이다.


오늘 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나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아내'라 불러주는 남자.


나는 조용히 다가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내가 가장 나답게 존재할 수 있는 곳,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내 편'의 어깨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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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역할 뒤에 숨겨진 '진짜 이름'을 쓰다듬어 주세요


가끔 부부싸움을 할 때, 우리는 무심코 서로를 향해 날 선 비수를 던집니다.


"당신이 남편으로서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네가 아내로서 제대로 하는 게 뭐냐!"


이토록 잔인한 말들이 튀어나오는 이유는, 우리가 상대방을 '인간'이 아니라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역할)'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콜라가 나와야 하듯, 남편과 아내라는 자리에 마땅히 기대하는 바를 채워 넣으라며 서로의 목을 조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잣대를 거두어 보세요.


당신의 남편도 밖에서는 상사에게 고개 숙이고 눈물 참아내는 여린 소년이고, 당신의 아내도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지쳐 누군가에게 기대어 엉엉 울고 싶은 연약한 소녀입니다.


오늘 저녁, 마주 앉은 밥상에서 서로의 '진짜 이름'을 한 번 불러보는 건 어떨까요?


"ㅇㅇ아, 오늘 하루도 참 고생 많았다."


호칭의 무거운 짐을 잠시 벗어던지고, 나의 상처받고 헐떡이는 영혼을 그대로 안아주는 단 한 사람. 그 위대한 사랑의 기적을 확인하는 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대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유다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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