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이라는 변명 뒤에 숨지 않고, 의도적인 낯섦을 창조하는 법
우리는 언제부터 무성(無性)의 전우가 되었을까
어느 주말 오후, 소파의 양 끝에 각자 누워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남편과 나의 모습을 거울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본 적이 있다.
무릎이 늘어난 수면 바지, 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 그리고 서로의 발가락이 닿아도 아무런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지 않는 무감각한 육체들.
문득 서글픈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이유 없이 입을 맞췄지?
언제 마지막으로 아이들 이야기가 아닌, 오직 서로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우리는 혹독한 전투를 치러냈다. 수빈이와 다빈이를 번듯하게 키워내고, 대출금을 갚으며, 양가 부모님을 챙기는 이 거대한 '가족 주식회사'를 운영하느라 우리는 '남자와 여자'라는 본연의 성별을 거세당한 채, 가장 훌륭하고 충직한 '동업자'이자 '전우'로 진화해 버렸다.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하면 다 가족애로 사는 거지, 무슨 연애야. 가족끼리 스킨십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부부 관계를 방치한 사람들의 가장 비겁한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이름은 낭만을 포기해도 되는 면죄부가 아니다.
오늘은 무채색으로 변해버린 부부의 일상에 다시 선명한 핑크빛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리는, 아주 치열하고도 의도적인 '부부의 연애 복원술'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우리가 연애 시절을 그토록 그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는 젊었고, 예뻤고, 도파민이 넘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심리학적으로 가장 큰 이유는 '긴장감'과 '노력'에 있다.
연애할 때 우리는 상대에게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기꺼이 에너지를 썼다. 데이트 전날 밤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했고, 상대가 좋아하는 식당을 검색했으며, 피곤해도 다정한 목소리를 꾸며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적 안전망에 들어오는 순간, 우리는 '노력의 스위치'를 꺼버린다. "가족이니까 편하게 해도 다 이해해 주겠지"라는 오만함이 자리 잡는 것이다.
화장실 문을 열어두고 볼일을 보거나, 트림과 방귀를 서슴없이 트는 생리적 편안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배우자의 외모 변화에 무감각해지며, 밖에서는 깍듯하게 지키는 예의를 집 안에서는 내던져버리는 '감정적 나태함'이 문제다.
다시 연애하듯 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 '가족이라는 핑계'부터 쓰레기통에 던져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의를 갖추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할 대상은 직장 상사나 동네 지인이 아니라, 내 인생의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내 배우자다. 연애 세포를 깨우는 첫걸음은, 상대를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귀한 타인'으로 대우하는 그 적당한 긴장감을 회복하는 데서 시작된다.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부부가 연인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호칭에 있다.
"수빈 아빠, 이것 좀 치워."
"다빈 엄마, 오늘 저녁 뭐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이름은 사라지고, 오직 아이들의 부모라는 '역할'만 남는다.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매일 서로를 '엄마 아빠'라고 부르면서, 어떻게 그 안에서 섹슈얼한 남녀의 감정이 싹틀 수 있겠는가.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싶다면, 의식적으로 역할극에서 빠져나오는 훈련이 필요하다.
한 달에 단 하루, 혹은 일주일에 단 몇 시간이라도 아이들을 조부모님이나 돌봄 서비스에 맡기고 온전한 물리적 분리를 시도해 보라. 만약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아이들이 깊이 잠든 밤 11시 이후의 거실을 철저히 두 사람만의 '역할 해방 구역'으로 선포해야 한다.
그 시간만큼은 아이들의 학교생활, 학원비, 집안일 이야기는 철저히 금지된다.
대신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자기야, 오늘 회사에서 안 힘들었어?"
"유다람, 오늘 당신 립스틱 색깔 예쁘더라."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한때 누군가의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만들었던 매력적인 여자 '유다람'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 나의 6살 연하 남편이 배 나온 아저씨가 아니라,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던 풋풋한 남자라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
호칭을 바꾸고 시선을 나에게로 돌리는 순간, 먼지 쌓인 연애 세포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연애 시절의 데이트가 설렜던 이유는, 언제나 집 밖의 '낯선 공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카페의 은은한 조명, 레스토랑의 근사한 음악, 극장의 어두운 분위기. 공간이 주는 무드는 감정을 증폭시킨다.
하지만 부부는 매일 똑같은 형광등 아래서, 밥 냄새와 찌든 빨래가 있는 생활 반경 안에서 마주친다. 이런 익숙함 속에서는 제아무리 장동건, 김태희가 와도 로맨스가 피어날 수 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동선을 비틀어 의도적인 낯섦을 창조하는 것이다.
가끔 남편과 나는 휴가를 맞추어 아이들이 학교에 간 평일 낮에 밖에서 만난다.
집에서 같이 나가는 것이 아니다. 각자 볼일을 보고 오후 1시에 광화문 네거리의 특정 카페에서 '조우'하는 것이다.
저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남편을 볼 때의 기분은 집 거실에서 마주칠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어라? 저 남자, 밖에서 보니까 어깨도 넓고 제법 훤칠하네?' 하는 새로운 발견.
우리는 낯선 식당에서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손을 잡고 삼청동 길을 걷는다. 생활의 때가 묻지 않은 낯선 공간에 서로를 뚝 떼어다 놓으면, 우리는 마법처럼 2011년의 그 설레던 연인으로 돌아간다.
퇴근길에 각자 집으로 가는 대신, 중간 지점의 예쁜 와인바에서 만나 한 잔을 걸치고 대리기사를 불러 함께 들어가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익숙한 상대를 낯선 프레임 안에 가두는 것, 그것이 부부 데이트의 핵심 기술이다.
연애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는 '질문의 양'에 있다.
연애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점심은 뭐 먹었어?"
"오늘 기분은 어때?"
"무슨 영화 좋아해?"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우리는 질문을 멈춘다.
"내가 저 인간을 10년 겪어봐서 아는데, 안 봐도 뻔하지 뭐."라는 거만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매일 변한다. 20대 때 웨딩홀 실장으로 날아다니던 나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삶의 깊이를 알아가는 40대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나의 6살 연하 남편 역시, 풋풋했던 소년에서 풍파를 견뎌낸 단단한 어른으로 변했다.
과거의 데이터로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는 순간, 관계는 박제된 미라가 되어버린다.
다시 연애하고 싶다면, 내 옆에 누운 이 사람을 '내가 잘 모르는 흥미로운 타인'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은 요즘 뭐가 제일 힘들어?"
"우리가 로또에 당첨되면, 당장 내일 뭐부터 하고 싶어?"
"요즘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야?"
내가 다 안다고 생각했던 남편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낯선 대답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상대방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호기심을 먹고 자란다. 배우자에 대한 지적, 감정적 호기심의 스위치를 다시 켜는 순간, 메말랐던 대화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연애 시절 우리는 상대방에게 완벽하고 매력적인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부부의 연애는 결이 다르다. 부부의 연애는, 서로의 가장 찌질하고 연약한 바닥까지 다 목격한 두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좋아"라고 말해주는 아주 깊고 차원 높은 로맨스다.
뱃살이 좀 나오면 어떻고, 머리숱이 좀 줄어들면 어떤가.
우리는 함께 세월의 직격탄을 맞으며, 전우애라는 단단한 밧줄로 서로를 묶은 사이가 아닌가.
"여보, 당신 눈가에 주름이 또 늘었네. 나 먹여 살리느라 고생해서 그렇지?"
"당신도 흰머리 났어. 근데 내 눈엔 지금이 옛날보다 훨씬 더 예뻐."
서로의 늙어감을 연민과 애정으로 쓰다듬어 주는 이 대화야말로, 20대의 치기 어린 연애에서는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중년 부부만의 고품격 로맨스다.
'다시 연애하듯 산다는 것'은 20대의 그 불타오르던 도파민의 노예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내 곁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이 사람의 가치를 의식적으로 닦고 조여서, 다시 반짝이게 만드는 숭고한 영혼의 작업이다.
사랑은 저절로 피어나는 들꽃이 아니다. 사랑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주어야 하는 온실 속의 난초와 같다.
오늘 밤,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장난감을 한쪽으로 밀어두고 조명을 낮춰보자.
그리고 쑥스러움을 꾹 참고, 남편의 뺨에 뜬금없는 입맞춤을 건네보자.
"우리, 이번 주말에 애들 맡기고 영화 보러 갈래? 데이트하자."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남편의 얼굴에 번지는 옅은 미소.
그 순간, 우리 집 거실은 순식간에 2011년의 어느 찬란했던 봄날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결혼은 한 사람과 한 번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과 매일매일 새롭게 사랑에 빠지기로 결단하는 위대한 서약이니까.
: 사랑이라는 근육은 쓰지 않으면 퇴화합니다
"가족끼리 너무 어색해요. 지금 와서 무슨 연애입니까."
가끔 강연이나 상담을 하다 보면, 손을 잡거나 데이트를 하라는 조언에 손사래를 치는 부부들이 참 많습니다.
이해합니다. 10년, 20년 묵혀둔 연애 세포를 하루아침에 꺼내려면 민망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우리의 감정은 근육과 같아서, 쓰지 않으면 금세 퇴화해 버립니다. 어색하다고 피하기만 하면, 우리는 결국 서로에게 소 닭 보듯 하는 차가운 룸메이트로 늙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헬스장에 가서 무거운 바벨을 들 때 근육통이 오듯,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초기에는 민망함이라는 근육통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민망함을 이 꽉 깨물고 몇 번만 돌파해 보세요.
아이들 없이 손을 잡고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카페에 앉아 실없는 농담을 나누어 보세요.
어느새 그 민망함은 묘한 쾌감과 설렘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성비 좋고, 안전하며, 내 영혼의 바닥까지 이해해 주는 완벽한 연애 상대가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습니다.
당신의 두 번째 연애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남편과 오늘도 썸을 타는 중인, 유다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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