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뒤덮은 '패스트 패션'의 거대한 묘지
지구상에서 가장 메마른 땅, 화성의 표면과 가장 닮았다는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Atacama) 사막. 수천 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적막한 모래 언덕 위로, 지금 기괴하고도 소름 끼치는 풍경이 펼쳐져 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을 뒤덮고 있는 것은 모래바람이나 선인장이 아니다. 새빨간 파티 드레스, 유행이 지
난 크롭티, 상표표조차 떼지 않은 청바지와 반짝이는 스팽글 블라우스들이다. 마치 거대한 괴물이 화려한 색깔의 구토물을 토해낸 듯, 수만 톤의 옷가지들이 산맥을 이루며 썩어가는 악취를 내뿜고 있다.
이 거대한 '옷 쓰레기 산'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미국,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부유한 선진국 사람들이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한두 번 입고 쉽게 내다 버린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잔해들이다. 우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헌 옷 수거함에 옷을 넣으며 "누군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부되겠지"라며 얄팍한 도덕적 위안을 얻는다. 하지만 그 옷들의 종착지는 누군가의 따뜻한 옷장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숨 막히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오늘의 비망록은 무한한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달콤한 최면 속에서, 지구의 숨통을 조이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비대해진 '패스트 패션'의 잔혹한 민낯에 대한 기록이다.
◆ 유행이라는 이름의 맹독, 속도전이 낳은 일회용 옷의 재앙
과거에 옷은 귀한 것이었다. 옷 한 벌을 지어 오래도록 입고, 해지면 꿰매어 입었으며, 동생들에게 물려주었다. 하지만 패스트 패션 브랜드들이 등장하면서 옷의 개념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들은 1년에 두 번 나오던 시즌 신상품의 개념을 파괴하고, 매주, 심지어 매일 수천 개의 새로운 디자인을 쏟아낸다.
"이 옷은 이번 주에만 유행하는 스타일입니다.
가격은 커피 두 잔 값이니, 부담 없이 사서 몇 번 입고 버리세요."
그들은 옷을 종이컵이나 나무젓가락 같은 철저한 '일회용 소모품'으로 전락시켰다. 싼값에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비 패턴에 중독된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쇼핑백을 채운다. 결과는 어떠한가?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1,000억 벌의 옷이 만들어지고, 그중 33%는 생산된 지 1년 이내에 쓰레기장으로 직행한다. 우리가 인스타그램에 '오늘의 룩(OOTD)'을 올리기 위해 한 번 입고 던져버린 그 옷들이,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혈관을 막는 치명적인 혈전이 되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피눈물 위에서 돌아가는 재봉틀
저렴한 가격표 뒤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눈물과 착취가 숨어 있다.
커피 두 잔 값의 티셔츠 한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어야 한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 다카 외곽의 8층짜리 의류 공장 '라나 플라자(Rana Plaza)'가 붕괴했다. 벽에 심각한 금이 간 것을 알고도, 서구 유명 브랜드의 납품 기일을 맞추기 위해 억지로 재봉틀 앞에 앉아야 했던 1,134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압사했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증언했다.
"우리는 죽어가는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피 묻은 천 조각을 꿰매야 했습니다."
이 끔찍한 비극은 패스트 패션 산업이 딛고 서 있는 토대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의 빈민가 공장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과 어린아이들이 환기구조차 없는 먼지 구덩이 속에서 하루 1달러의 일당을 받으며 재봉틀을 돌린다. 우리가 매장에서 무심코 집어 드는 9,900원짜리 화려한 원피스에는,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화장실을 참아가며 기계처럼 일해야 했던 10대 소녀들의 잃어버린 청춘과 피눈물이 촘촘히 박음질되어 있다. 옷의 가격이 싸진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목숨값'을 후려쳤을 뿐이다.
◆ 썩지 않는 플라스틱 수의(壽衣), 대지를 질식시키다
사막에 버려진 옷들이 유독 치명적인 재앙인 이유는 그 옷들의 '성분' 때문이다. 패스트 패션 의류의 60% 이상은 폴리에스테르, 나일론, 아크릴 같은 합성섬유로 만들어진다. 이름만 '섬유'일뿐, 사실상 원유에서 뽑아낸 '플라스틱'이다.
아타카마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버려진 이 플라스틱 옷들은 자연 분해되는 데 무려 200년이 넘게 걸린다. 썩지 않은 채 서서히 바스러지며 치명적인 미세 플라스틱과 독성 화학 염료를 모래 속으로 뿜어낸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이라 다행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지하로 스며든 독성 물질은 결국 인근 주민들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완전히 교란시킨다.
게다가 산처럼 쌓인 옷 더미에서 자연 발화로 화재가 발생하면, 거대한 유독가스 기둥이 하늘을 뒤덮으며 주변 마을 사람들의 폐를 새카맣게 망가뜨린다. 면화 한 벌을 재배하고 염색하는 데 2,700리터(한 사람이 2년 반 동안 마실 물)의 물을 낭비하여 가뭄을 초래하고, 버려진 후에는 대지를 중독시키는 끔찍한 악순환. 패스트 패션 산업은 석유 산업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환경을 파괴하는 거대한 환경 학살자(Ecocider)다.
◆ 선진국의 '깨끗한 옷장'이 만들어낸 제3세계의 쓰레기장
선진국의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윤리적이라고 착각한다. 안 입는 옷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거나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서, 자신은 자원 순환에 동참하는 '착한 소비자'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그 기부된 옷들의 진실은 잔혹하다. 헌 옷 수거함에 모인 옷 중 실제로 자국 내에서 재판매되거나 기부되는 비율은 극히 미미하다. 대부분은 분류 작업을 거쳐 아프리카의 가나, 케냐, 그리고 남미의 칠레 등 제3세계 국가로 '수출'이라는 명목하에 돈을 받고 떠넘겨진다.
아타카마 사막의 항구 도시 이키케(Iquique)에는 매년 5만 9천 톤의 헌 옷이 밀려든다. 상인들은 쓸만한 옷을 고르지만, 패스트 패션 특유의 조잡한 품질 때문에 무려 3만 9천 톤의 옷이 그대로 사막에 무단 투기된다. 이것은 기부나 재활용이 아니다. 선진국들이 자신들의 옷장을 깨끗하게 비우기 위해, 자신들이 싼 똥을 가난한 나라의 앞마당에 돈을 주고 버리는 명백한 '쓰레기 식민주의(Waste Colonialism)'다. 가난한 나라는 썩어가는 선진국의 쓰레기를 처리하다 그 무게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다.
유행을 벗고 존엄을 입어야 할 시간
매일같이 스마트폰으로 쏟아지는 화려한 쇼핑몰의 광고 푸시 알림.
"시즌 오프 최대 80% 할인!"
"지금 안 사면 후회할 최신 트렌드!"
자본주의의 거대한 마이크는 우리 귀에 대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당신이 지금 불행한 이유는 저 새 옷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 화려한 옷을 걸치면 당신의 평범한 삶도 특별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 거짓된 속삭임에 홀려 클릭 버튼을 누르기 전, 우리는 한 번쯤 지구 반대편의 그 붉고 건조한 사막을 떠올려야 한다. 내가 무심코 장바구니에 담은 그 저렴한 티셔츠 한 장이, 사막을 썩게 만드는 독성 쓰레기
산의 가장 꼭대기를 장식하게 될 것임을 뼈아프게 직시해야 한다.
진정한 멋은 이번 주 유행하는 신상품을 빠르게 걸치는 데 있지 않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는 낡은 옷을 꺼내어 소중히 꿰매 입고, 한 벌의 옷이 나에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땀방울과 자원이 소모되었는지 그 보이지 않는 무게를 온전히 가늠할 줄 아는 성찰. 그것이 진짜 품격 있는 인간의 옷매무새다.
지구는 결코 무한한 쓰레기통이 아니다. 더 이상 입지 않는 옷들을 태워버릴 곳도, 숨길 사막도 우리에게는 얼마 남지 않았다. 욕망의 속도를 늦추고, 더 적게 사고, 더 오래 입는 것. 그것만이 사막에 버려진 거대한 옷 무덤의 저주를 풀고, 탐욕에 짓눌린 이 병든 지구의 숨통을 다시 트이게 할 유일한 해독제다.
글을 마무리하며 제 방의 옷장 문을 열어보았습니다. 한두 번 입고 구석에 밀어둔 채 존재조차 잊고 있었던 옷들, 싸다는 이유로 색깔별로 사들인 조잡한 티셔츠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어차피 몇 번 입고 버릴 건데 뭐 어때."
저 역시 그 오만하고 무책임한 생각으로 소비의 쾌락을 누렸음을,
아타카마 사막의 모래바람 앞에 부끄럽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피와 눈물, 그리고 썩지 않는 화학 물질을 몸에 두르고 살아갑니다. 9,900원짜리 영수증에는 기록되지 않은 누군가의 착취와 대지의 죽음이 이 얇은 천 조각에 무겁게 배어 있다는 사실을 왜 그토록 오래 외면해 왔을까요.
소비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새 옷을 샀을 때의 그 찰나의 짜릿함보다, 낡은 옷을 소중히 다루어 입으며 환경과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는 그 깊고 단단한 마음이 우리를 훨씬 더 빛나게 해 줄 것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쇼핑앱을 지우고, 옷장의 안쪽을 찬찬히 정리해 보시기를.
그 작은 멈춤이, 무너져가는 저 먼 사막에 심는 가장 아름다운 초록빛 희망이 될 테니까요.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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