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의 장작더미 위로 내던져진 여성의 비극
인도의 어느 메마른 평원, 붉은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 거대한 장작더미 위로 싸늘하게 식은 남성의 시신이 뉘어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장 화려한 붉은색의 전통 사리(Sari)를 입고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젊은 여인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앉아 있다. 그녀는 방금 남편을 잃은 미망인(未亡人)이다.
곧이어 횃불이 장작에 던져지고, 시뻘건 불길이 매캐한 연기와 함께 두 사람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살이 타들어 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불길 밖으로 뛰쳐나오려 몸부림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싼 수백 명의 군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길다란 대나무 장대로 여인의 몸을 무자비하게 찔러 다시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다. 여인의 처절한 비명은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지는 전통 북소리와 군중들의 종교적 찬가에 완벽하게 파묻힌다.
불길이 잦아들고 두 구의 시신이 한 줌의 재로 변했을 때, 사람들은 그 재를 향해 엎드려 절을 하며 여인을 '여신'으로 추앙한다.
이 지옥도(地獄圖)와 같은 끔찍한 풍경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수백 년간 인도 전역에서 버젓이 자행되었던 최악의 여성 인권 유린, '사티(Sati)'의 실제 모습이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산 채로 화장 장작더미에 함께 올려 태워 죽이는 이 엽기적인 풍습은, 어떻게 '성스러운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었을까.
오늘의 비망록은 종교적 헌신이라는 아름다운 가면 뒤에 숨겨진 가부장제의 가장 잔혹한 살인극, 그리고 불길 속에서 재로 변해버린 수많은 여성들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피 끓는 애도사(哀悼辭)다.
◆ 신화와 미화의 덫, 자발적 헌신이라는 거대한 거짓말
'사티(Sati)'라는 단어는 본래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시바 신의 아내, 여신 사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신화 속에서 사티는 자신의 남편이 모욕당하자 그 명예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불 속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 이 신화는 힌두 사회에서 '파티브라타(Pativrata, 남편에게 헌신하는 지고지순한 아내)'라는 기형적인 여성상을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작동했다.
가부장제 사회는 이 신화를 교묘하게 비틀어, 현실의 여성들에게 강요했다. "남편이 죽었을 때 불길에 뛰어드는 아내만이 진정으로 남편을 사랑한 것이며, 그녀의 헌신으로 남편과 시댁, 그리고 친정 가문 전체가 대대로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사티를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세상 그 어떤 인간이 산 채로 불에 타 죽는 끔찍한 고통을 스스로 선택한단 말인가. 여인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체념한 듯 장작더미에 올랐던 이유는, 대마초나 아편 같은 마약에 강제로 취해 이성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만약 약기운에서 깨어나 도망치려 하면, 시댁 식구들과 마을 사람들은 '가문의 수치'라며 몽둥이와 대나무 장대로 그녀의 뼈를 부러뜨려서라도 다시 불길 속으로 던져 넣었다.
이것은 헌신이 아니다. 종교와 가문의 명예라는 거대한 흉기로, 한 개인의 생명에 대한 의지를 무참히 짓밟은 명백한 '타살'이며 '공개 처형'일 뿐이다.
◆ 불꽃 속에 숨겨진 추악한 민낯, 재산과 탐욕의 경제학
그렇다면 왜 남편의 가족들은 며느리를, 형수를 그토록 잔인하게 불태워 죽여야만 했을까? 그 타오르는 불꽃의 가장 깊은 중심에는 종교적 신앙이 아닌, 인간의 가장 추악하고 세속적인 '탐욕'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티가 가장 빈번하게, 그리고 대규모로 일어났던 인도 벵골(Bengal) 지역의 특수한 상속법을 살펴보면 그 소름 끼치는 진실이 드러난다. 당시 벵골 지역의 힌두 법전인 '다야바가(Dayabhaga)'에 따르면, 남편이 아들 없이 사망할 경우 남편의 재산은 미망인인 아내에게 상속될 수 있었다.
시댁 식구들의 입장에서 며느리는 가문의 막대한 재산을 차지할 눈엣가시이자, 평생 밥을 먹여 살려야 하는 경제적 골칫덩어리였다. 그들에게 가장 완벽하고 깔끔한 해결책은 바로 며느리를 '성스러운 사티'로 만들어 죽여버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를 불태우면 남편의 재산은 고스란히 시동생이나 시댁 식구들의 차지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여신을 배출한 훌륭한 가문이라며 우러러보았다.
결국 사티는 미망인의 재산을 강탈하고 부양의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종교적 신성함을 핑계로 저지른, 아주 교활하고 계획적인 '가족 내 청부 살인'이었던 것이다. 사람을 태우는 매캐한 연기 속에서, 그들은 가문의 부를 축적하며 탐욕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죽음보다 가혹한 생존, '하얀 과부'들의 지옥
물론 사티를 거부하고 살아남은 미망인들도 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는 불길에서 도망친 그녀들에게 죽음보다 더 잔혹하고 기나긴 '사회적 사형 선고'를 내렸다.
인도 사회에서 남편을 잃은 여성은 곧 '불길한 존재', '남편을 잡아먹은 죄인'으로 취급받았다. 살아남은 과부들은 여성으로서의 모든 매력을 강제로 거세당해야 했다. 탐스러운 머리카락은 박박 깎였고, 화려한 사리와 보석은 모두 압수당했으며, 평생 상복을 의미하는 칙칙한 하얀색 사리(White Sari)만을 입어야 했다. 향신료가 들어간 맛있는 음식은 금지되었고, 하루 한 끼 남은 찌꺼기로 연명하며 구석진 방에서 그림자처럼 지내야 했다.
심지어 결혼식이나 축제 같은 경사스러운 자리에는 그림자조차 비쳐서는 안 되는, 접촉조차 꺼려지는 '불가촉천민'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했다. 시댁 식구들의 학대와 모욕, 때로는 성적인 착취를 견디다 못한 수만 명의 과부들이 집을 쫓겨나 힌두교 성지인 '브린다반(Vrindavan)' 같은 과부들의 도시로 흘러들어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죽는 날까지 길거리에서 구걸을 하며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 지독한 생지옥을 두 눈으로 보며 자란 인도의 여성들에게, 어쩌면 사티는 '강요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평생을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굶어 죽어가느니, 차라리 한순간의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여신'으로 추앙받으며 죽는 것이 낫다고 세뇌당한 것이다. 가부장제는 여성들의 퇴로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그들을 불기둥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 '미망인(未亡人)', 그 단어에 서린 섬뜩한 폭력성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단어의 어원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남편을 잃은 여성을 칭하는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단어. 그 한자 뜻을 풀이하면 '아직(未) 따라 죽지 못한(亡) 사람(人)'이라는 섬뜩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 단어는 비단 인도뿐만 아니라, 동양의 유교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내린 여성 혐오와 생명 경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의 생존 가치도 함께 소멸한다는 전제. 아내의 목숨은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 종속된 부속품에 불과하다는 오만함. 이 단어 안에는 보이지 않는 사티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다.
'남편을 따라 죽어야 마땅하나 모진 목숨을 끊지 못해 아직 살아있는 죄인'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이 언어의 폭력성은, 불타는 장작더미만큼이나 여성의 정신을 잔혹하게 옭아매고 질식시켜 왔다.
◆ 끝나지 않은 망령, 21세기에도 타오르는 보이지 않는 불꽃
1829년, 영국의 식민 통치 시절 사티는 법으로 전면 금지되었다. 인도가 독립한 후에도 강력한 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이 수백 년 된 야만의 맹신은 법의 잣대만으로 쉽게 진화되지 않았다.
비교적 현대인 1987년, 인도 라자스탄 주에서 겨우 18살이었던 소녀 룹 칸와르(Roop Kanwar)가 남편의 장작더미에서 불태워진 사건은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수천 명의 군중이 그녀가 타죽는 것을 지켜보며 환호했고, 이후 그곳은 '사티 마타(사티 여신)'를 숭배하는 거대한 성지가 되어 막대한 헌금과 관광 수입을 벌어들였다. 살인 방조범들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고, 지역 정치인들은 표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사티를 찬양했다.
비록 지금은 물리적인 불꽃으로 여성을 태워 죽이는 일은 거의 사라졌지만, 사티의 망령은 여전히 21세기의 현대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남성의 성취를 위해 여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시선, 결혼과 남편의 존재 유무로 여성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낡은 관습, 그리고 과부나 이혼녀를 바라보는 우리 내면의 은밀한 편견들. 여성을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누군가의 소유물로 여기는 모든 가부장적 억압은, 보이지 않는 장작더미가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여성들의 자아를 산 채로 불태우고 있다.
재가 되어버린 영혼들 앞에 참회의 눈물을 바치며
장작더미 위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던 그녀들의 검게 탄 두 손은, 신을 향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불태우는 세상을 향한 처절한 저주이자 살려달라는 비명이었다.
북소리에 파묻혀 끝내 세상에 닿지 못했던 그 목소리들을, 우리는 지금이라도 잿더미 속에서 건져내어 똑똑히 들어야 한다. 종교라는 이름의 마취제, 전통이라는 이름의 족쇄, 명예라는 이름의 살인 무기가 어떻게 한 인간의 존엄을 숯덩이로 만들어 버렸는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미망인이 아니라, 그저 태어난 그 자체로 온전하고 찬란한 고유의 생명이었던 그녀들.
여성의 존재 가치는 결코 타인의 죽음과 함께 소멸하지 않는다. 사티의 불꽃에 희생된 수십만 명의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그 잔혹한 고통의 무게를 가늠하며, 이제는 무지몽매한 미신과 가부장제의 망령을 우리 세대에서 영원히 불태워 없애야 할 때다.
뜨거운 불길 속에서 재로 흩어져버린 그 무고한 영혼들이, 이제는 서늘하고 평화로운 대지 위에서 뜨겁지 않은 바람으로 자유롭게 쉬기를, 피 끓는 슬픔을 담아 간절히 애도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모니터 앞에서도 제 등줄기에는 서늘한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만으로도 이미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픈 여인들에게,
위로 대신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을 내어준 야만의 시대.
뜨거운 불길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연약한 몸을 긴 대나무 장대로 찌르며 다시 불구덩이로 밀어 넣었던
가족과 이웃들의 그 악마적인 환호성을 떠올리면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수치스럽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을 불태운 것은 한 줌의 불씨가 아니라,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만 여기고 재산을 탐냈던
지독한 가부장제의 오만과 자본주의의 탐욕이었습니다.
"미망인(未亡人), 아직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한 자."
이 단어의 섬뜩한 어원 속에 숨겨진 폭력성을 생각하며, 우리 안의 보이지 않는 낡은 잣대와 편견들 또한
함께 불태워버려야 함을 다짐합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부속품이 아닌, 스스로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의 온전한 우주로서
모든 여성들의 삶이 존중받는 세상을 뜨겁게 기도합니다.
잿더미로 스러져간 그 수많은 억울한 영혼들에게 이 비망록이 작은 위로의 헌화(獻花)가 되기를 바랍니다.
Written By Yooda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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