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세상의 차가운 기준이 너무 일찍 닿아버린 날이 있다.
그날을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마음 한편이 서늘해진다.
큰아이가 일곱 살이던 해였다.
마침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기였고, 우리는 새 동네로 이사를 왔다.
낯선 지역에서 유치원을 알아보는 일은 생각보다 힘겨웠다.
결국, 여러 조건을 따질 겨를도 없이 집 앞 병설유치원에 원서를 넣었다.
사립과 병설에는 분명 각자의 장단점이 있었지만,
그땐 첫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그런 판단조차 여유롭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문득 물었다.
“엄마, 우리 몇 단지예요?”
나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2단지야. 왜?”
혹시 길이라도 잃을까 걱정되는 마음에서 묻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는 잠시 머뭇이다 이렇게 말했다.
“1단지 친구들끼리만 자꾸 모여서 놀아요… 엄마, 1단지가 우리 집보다 더 넓어요?”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수빈아, 그래서 마음이 아팠어?”
아이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네… 엄마, 우리도 1단지로 이사가요…”
세상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질서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아이에게 평수라는 개념조차 가르친 적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디선가 그런 말을 아이 앞에서 한 것이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수빈아, 아무리 넓고 예쁜 집이라도 그 안에 착하지 않은 사람이 살고,
마음이 불행한 사람이 산다면, 그건 넓은 집도 예쁜 집도 아니야.
만약에 그 집에 도둑이 살고 있다면, 그 집이 좋아 보일까?”
수빈이는 단호히 말했다.
“아니요. 그런 집은 싫어요.”
나는 이어서 설명해주었다.
“1단지에도 넓은 집이 있고, 2단지에도 더 넓은 집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엄마는 그 집에 ‘누가’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수빈이처럼 착하고 따뜻한 아이가 사는 집은,
그 자체로 이미 예쁜 집이고 넓은 집이야.”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집을 단지나 평수로 나누는 어른들의 말은,
엄마가 보기엔 절대로 좋은 집 이야기가 아니야.”
다행히도, 아이는 내 말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인 듯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도 누군가가
“몇 단지야?”, “너희 집 넓어?”라고 물으면,
그때 내가 해준 말을 똑같이 전했다고 했다.
“그 친구들이 이해하던가?” 하고 묻자,
아이의 대답은 이랬다.
“엄마, 더 이상 나한테 따지지 않더라구.”
나는 그 친구들이 이해해준 것이 기쁜 게 아니라,
내 아이가 그 말을 마음에 새기고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참 고맙고 대견했다.
나는 늘 말한다.
아이를 내 소유물이라 생각해선 안 된다고.
내 뜻을 받아들여 주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가끔은 서로 충돌도 생긴다.
나도 82년생이니, 낡은 사고방식을 다 떨쳐내지 못할 때가 있다.
요즘의 젊은 친구들에게 오히려 배워가는 일도 많다.
특히, 큰 딸 수빈이와 나는 성향이 정반대다.
그러다 보니 싸우기도 자주 싸우지만,
서로의 다름 덕분에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바라보게 된다.
요즘은 오히려 내가 고민이 있을 때면
딸에게 슬쩍 묻곤 한다.
나와 너무 달라서, 때론 내가 하지 못하는 결정을
시원하게 내려줄 때가 있다.
아이들은 내 딸이지만, 때론 친구 같고, 때론 내 스승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이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
이 아이들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배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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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아이들을 보호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아이가 겪지 않았으면 하는 장면들을
너무도 빨리 들이민다.
그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심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고,
세상이 놓친 따뜻함을 전해주는 것뿐이다.
이 글이, 누군가의 ‘그날’을 떠올리게 하길 바라며.
오늘도 아이와 함께 배우는 삶을 살아가는
한 엄마의 기록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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