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부적응자

나는 우울증 환자입니다

by 서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이 막연하게 원망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치료 시기의 골든타임을 놓쳐 만성화가 돼버린 우울은, 내게 때때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줍니다. '절대'라는 말은 틀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수차례 재발하고 또 재발한 우울증의 치료는, 전문가들부터 평생 관리할 것을 권하죠.


약을 끊어본 적이 있습니다. 자의로 말이에요. 약을 먹고 잠에 들면 낮 동안의 생활이 힘들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몽롱하고, 에너지가 생기지 않고, 무기력함만 지속되었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그래도 일상을 버틸만한 컨디션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 세상에 빛이 보이지 않았어요.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현실조차 검게만 보이는 듯했습니다. 후회했어요. 나는 역시 약이 없으면 안 되는구나 하고. 왜 의사 선생님과 상의하지 않았을까 하고.


다시 약물치료를 재개했습니다. 상담을 받아보기도 했어요. 그렇게 다시 괜찮아지는 줄 알았는데, 또 우울해져 버렸습니다. 이제 우울은 저와 같이 나아가야만 하는, 일종의 '동료'가 돼버린 셈이죠. 이제는 사실, 우울에서 빠져나가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꽤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도요.


우울은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아이가 잘못을 했다고 다그치고 혼내기만 하면 더욱 비뚤어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처럼, 우울도 그렇습니다. 우울이 절대 잘못은 아니나, 우울해진 나를 공격하거나, 자책을 하면, 우울은 더욱 몸집을 키워 옵니다. 그럴 때일수록, 어르고 달래주는 시간이 필요하죠. 나를 돌보아주고, 위로해 주고, 칭찬해 주는 시간. 남이 해주면 좋겠지만, 나라도 해줘야 해요.


당연히 방법을 알고 있다고 우울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조그마한 일에도 쉽게 잠식당해요. 제는 익숙해졌을 만도 한데, 익숙해지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우울이 지속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어요. 조금 무던해지기도 하거든요.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이는 거죠. 그런데 며칠 괜찮다가 우울해지면 그 감정이 또 너무 새로워요.


우울과 함께하는 삶, 그러려니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원망스럽습니다. 나는 왜 삶이 이리도 아프기만 할까요. '사회 부적응자'처럼 저는 '인생 부적응자'인가 봅니다. 삶이 항상 재미있지는 않더라도, 삶을 살아보고 싶다고라도 생각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 살아있는 걸 보면, 조금이나마 삶을 살아보고 싶긴 한가 봅니다.


그래도 일상은 나름 평탄합니다. 자주 지치고, 가끔 행복하고, 나름 무언가를 열심히도 해보는 삶. 충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거면 된 것 같아요. 적당히 살아있을 만은 하더라고요.


오늘은 이렇게 적어두려 합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나는 살아가고 있다고.


언젠가는, 이렇게라도 살아보길 잘했다고 느낄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당신의 오늘은 안녕하셨나요?